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전라도(호남)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을 두고 정치학자나 평론가들은 종종 "전략적 투표(Strategic Voting)"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경상도(영남) 지역의 투표 성향과 비교했을 때 호남이 상대적으로 더 전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역사적 환경과 인구 구조, 그리고 실제 선거에서 보여준 선택의 궤적에서 비롯됩니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소수자(Minority)로서의 생존과 권력 획득 전략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인구 구조의 비대칭성에 있습니다. 영남은 호남에 비해 인구가 대략 2배 이상 많습니다.
인구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선택: 호남 유권자들은 영남 중심의 주류 정치 구도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지분과 권익을 지키기 위해 결집할 뿐만 아니라, 영남 유권자층을 분열시키거나 타 지역과 연대할 수 있는 후보를 철저하게 계산하여 선택해 왔습니다.
외연 확장성이 높은 후보 지지: 호남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지역 출신 후보만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2002년 대선 당시 호남 유권자들은 영남(부산) 출신인 노무현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하여 당선시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는 호남 출신 후보로는 인구수 대결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영남 표를 갈라올 수 있는 후보에게 전략적으로 몰표를 준 사례입니다.
2. 정당과 인물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교체
호남이 무조건 특정 정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점을 대변하지 못하거나 무능하다고 판단되면 정당을 과감하게 교체하는 역동성을 보여왔습니다.
2016년 제20대 총선의 대변혁: 당시 호남 유권자들은 오랫동안 호남의 맹주 역할을 하던 민주당 계열 정당에 경고를 보내며, 안철수 후보가 이끌던 신생 정당인 국민의당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영남 지역이 상대적으로 보수 정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에게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지지를 보내는 경향이 강한 반면, 호남은 주류 정당이라 할지라도 전략적 판단에 따라 회초리를 들 수 있음을 증명한 사건입니다.
타 지역 후보에 대한 포용력: 호남은 개혁과 민주화라는 가치에 부합한다면 후보의 출신 지역을 따지지 않고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정서로 묶이기 쉬운 영남의 정서적 결집에 비해, 정치적 목표 달성을 최우선으로 두는 실리적이고 전략적인 태도로 해석됩니다.
3. "DJP 연합"으로 증명된 고도의 정치적 타협
호남 정치의 정점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은 호남 유권자들의 전략적 수용성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입니다.
5·18 민주화운동과 정권의 핍박을 겪은 호남 유권자들에게 보수 군부 세력의 핵심이었던 김종필 후보와의 연합은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호남 유권자들은 정권 교체라는 대의와 권력 획득이라는 실리를 위해 이념과 역사적 앙금을 뒤로하고 DJP 연합을 전폭적으로 지지했습니다. 감정적 정서보다 정치적 유불리와 승리 가능성을 우선시한 고도의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요약
경상도의 투표 성향이 오랫동안 주류 권력을 유지하거나 방어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정서적·안정적 결집"에 가깝다면, 전라도의 투표 성향은 비주류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 발전해 온 "목적 지향적·전략적 선택"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대 진영의 헛점(지역주의 프레임)을 깨기 위해 타 지역 출신 후보를 과감하게 수용하는 유연성이 바로 호남 정치가 경상도에 비해 전략적이라고 평가받는 핵심 요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