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정말 심각하다 ww
교토와 오사카의 백제 문화를 보거라 미개인 w
현재 일본 국내에서도 별로 생명력이 없는 임라일본부설의 근거 중 하나가 송서의 기록이다.
중국 남북조시대 남송(南宋 : 420~479)의 역사를 담고 있는 송서에는 5세기에 남송에 조공을 바친 왜의 5왕이 등장한다.
이 가운데 무왕(武王)이 스스로 왜·백제·신라·임나·가라(가야)·진한·모한 등 7국의 왕을 칭하면서 남송의 황제에게 이를 인정해 줄 것을 요청하자 남송의 황제가 그에게 "사지절도독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6국제군사안동대장군왜국왕(使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國王)"이라는 관작을 수여했다.
이 관작이 사실을 반영한 것이라 한다면 5세기 경의 왜왕은 일본열도는 물론 백제·신라·가야까지도 지배한 것이 되고 따라서 임나일본부설은 사실로 입증된다.
그러나 임나와 가라가 모두 가야를 가리키는 것인데 왜 중복되어 나타나는지, 또 이미 예전에 멸망한 진한과 마한이 왜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무왕이 받은 관작이 사실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허구적인 명예직이었음을 시사한다.
예컨대 남제(南齊 : 479~502)에서는 백제의 중신들에게 조선태수, 대방태수의 관직과 아울러, 당시 북위에 의해 지배되고 있던 북중국의 지명이 붙은 광양태수, 청하태수 등의 관직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또한 왜왕이 요구한 7국의 관작에서 백제가 제외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송의 입장에서는 왜왕이 이미 사라진 진한·마한의 왕을 칭하든,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신라·가야의 왕을 칭하든 문제삼을 필요가 없었지만, 백제와는 이미 외교관계가 수립되어 있었으므로 백제의 왕을 칭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