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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입성 삼일만에 처녀를 바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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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숭배도 모자라 미군 위해 매춘 굴까지....

 

 

광복 64주년, 다시 보는 일본·일제


패배를 껴안고
존 다우어 지음, 최은석 옮김
민음사, 860쪽, 4만5000원

 

64년 전인 1945년 8월15일 정오, 일본 국민들도 일왕 히로히토의 항복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알아듣기 쉽지 않았는데, 잡음 탓만이 아니었다. ‘항복’ ‘패배’ 등의 똑 부러진 어휘 대신 빙빙 말을 돌리는 고약한 수사(修辭) 때문이다. “전쟁은 일본에 유리하지 않았으며, 세계의 대세 또한 불리하다.… 견디기 힘듦을 견디고 참을 수 없음을 참으라.” 이어 등장한 아나운서가 그게 항복 선언이며, “무장 해제된 일본군이 곧 귀국한다”고 말했다.

지은이에 따르면, 항복방송은 일왕 자신의 아이디어였다. 원고는 전날 자정에 완성됐고, 군부의 시선이 두려워 철통보안을 유지했다. 조선에 악몽을 남겼고, 일본군 174여만 명을 죽인 태평양 전쟁은 그렇게 끝났다. 이 책은 패전 이후 1952년까지, 즉 맥아더사령부의 점령 기간을 추적한다. 한국전쟁 특수(特需)로 주가가 90% 뛰고, 도요타 차 생산이 40% 느는 등 일본이 기사회생하는 과정이자, 현대일본의 얼굴을 만든 굵직한 틀인 평화헌법 제정, 전범재판이 이뤄진 시기이기도 하다.

역사학자 존 다우어(미 MIT 교수)가 1999년 쓴 이 책은 점령군의 국외자적인 시선을 배제한 게 특징이다. 내내 패배를 껴안았던(embracing defeat) 일본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맥아더를 “일본의 새 군주”라고 비판하거나, 그의 점령정책에는 백인의 의무(white’s burden)를 거들먹이는 제국주의적 오만함이 들어있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오지만, 당시 보통사람들의 절망과 한숨이 켜켜이 묻어난다.

한국 독자가 읽으면 어떨까? 일본인 시각을 살렸다는 게 전후 일본에 대한 옹호라서 꺼림칙하지 않을까? 그건 아니다. 매우 중립적이다. 때문에 전쟁을 저질렀던 저들의 인과응보와 고통을 복기(復碁)해볼 좋은 기회인데, 우리의 큰 의문 하나-. 왜 일왕은 전쟁 책임을 인정해 퇴위(退位)를 하거나, 자결하지 않았을까? 왕실 내부에서까지 퇴위 얘기가 흘러나왔고, 연합국측에서도 그를 전범(戰犯)으로 기소하자는 주장이 나왔었는데….

일본 정부는 항복 사흘 만에 점령군 전용의 ‘특수 위안시설’ 설치에 착수했다. 1945년 8월 31일 요코하마에서 젊은 여성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미군 병사들의 모습. [민음사 제공]

히로히토 체제 유지는 맥아더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일왕은 군국주의자들의 로봇일뿐이라며 전쟁책임을 벗겨주고, 전후 질서유지에 활용하자는 계산이었다. 맥아더사령부는 45년 봄 마닐라에서 열린 영·미 합동군사회의에서 그 방향을 이미 정해놓았다.(364쪽) ‘제정(帝政) 민주주의’라는 일본 특유의 기형적 체제의 탄생과, 이후 ‘절반의 민주주의’란 그 부산물일 것이다.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는 훗날 맥아더를 ‘위대한 은인’이라며 거품을 물었지만, 일본인들은 아예 그를 숭배했다. 12만 명이 한 땀 한 땀 수놓은 맥아더 초상화 자수 작품을 진상했을 정도다. 점령군사령관에게 기꺼이 선물을 바치는 패전국민의 집단심리란 가히 사회병리학 차원의 연구대상인데, 가관은 따로 있었다. 미군병사용 위안부를 정부 차원에서 모집한 것이다. 도쿄 시내 한 복판에 내걸린 내무성의 공고가 이렇게 알듯 모를 듯 거창했다. “국가적 긴급시설의 일환에 참가할 신일본 여성들의 솔선수범을 청한다.”

도쿄에서만 1360명이 몰렸고, 이후 국가 매춘굴은 30곳으로 확대됐다. 물 만난 매춘업자들이 황궁 앞에 모여 “폐하 만세!”를 외쳤고, 촉망 받던 한 관료는 “다른 여성의 정조를 지키는 방파제”라며 흐뭇해했다. 하지만 미군들은 담배 한 갑의 반값(1달러)으로 산 젊은 여성의 팔짱을 낀 채 거리를 활보했고, 그걸 보는 일본남성의 자존심을 뭉개버렸다. 못지않게 힘든 것이 굶주림이었다. 거물 도조 히데키의 남동생이 노숙자로 산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사회에 큰 충격을 줬던 것이 당시의 궁핍을 상징한다.

뿐인가? 암시장이 판치고 흥청망청하는 한켠에 식량배급제를 지키던 고지식한 판사 한 명이 47년 봄 굶어죽은 사실도 있었다. 배고픈 사람들은 쥐약을 넣은 미끼까지 먹어치우는 바람에 사망자가 속출하기도 했던 가혹한 시절이었다. 그러던 일본의 재기는 한국전쟁 특수 때문이지만, 저자는 맥아더사령부가 재건의 기초를 닦아줬다는 통설에 정면에서 반대한다. 일본인 그들 스스로 일궈냈던 승리라며 감싸 안아주는데, 승자의 너그러운 시선일 게다.

아무리 왜인이 자신의 역사를 미화해도 이것이 비참한 일본의 역사. kk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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米軍入城三一ぶりに娘を捧げた日本....

マッカーサー崇拜も足りなくて米軍ために売春洞窟まで....

 

 

光復 64周年, また見る日本・日製


敗北を抱えこんで
ゾーンらしくて作, ツェウンソック翻訳
閔淫事, 860ページ, 4万5000ウォン

 

64年前の 1945年 8月15日正午, 日本国民も日王ヒロヒトの降参放送に耳を傾けた. 聞き分けやすくなかったが, 雑音のせいだけではなかった. ‘降参’ ‘敗北’ などのぽきっと折れた語彙代わりにぐるぐると話題を変えるひどい捜査(修辞) のためだ. “戦争は日本に有利ではなかったし, 世界の大勢も不利だ.… 耐えるヒムドムを耐えて堪えることができないことを堪えなさい.” であって登場したアナウンサーがそれが降参宣言であり, “武将解除された日本軍がすぐ帰国する”と言った.

著者によれば, 降参放送は日王自分のアイディアだった. 原稿は前日夜の十二時に完成されたし, 軍部の視線が恐ろしくて鉄桶保安を維持した. 朝鮮に悪夢を残したし, 日本軍 174余万人を殺した太平さん戦争はそれほど終わった. この本は敗戦以後 1952年まで, すなわちマッカーサー司令部の占領期間を追跡する. 朝鮮戦争特殊(特需)で株価が 90% 走って, 豊田車生産が 40% 増えるなど日本が起死回生する過程と同時に, 現代日本の顔を作った太めなフレームである平和憲法制定, 戦犯裁判が成り立った時期でもある.

歴史学者ゾーンらしくて(米 MIT 教授)が 1999年書いたこの本は占領軍の国外自適な視線を排除したのが特徴だ. 始終敗北を抱えこんだ(embracing defeat) 日本の視線で描かれる. マッカーサーを “日本の新しい君主”と批判するとか, 彼の占領政策には白人の義務(white’s burden)をガードルえさは帝国主義的傲慢さが入っているという指摘もそれで出るが, 当時常人たちの絶望とため息がキョキョイ付け出す.

韓国読者が読めばどうかな? 日本人視覚をいかしたというのが前後日本に対する擁護なので忌まわしくないか? そうではない. 非常に中立的だ. だから戦争をやらかした彼らの因果応報と苦痛を復碁(復碁)して見る良い機会なのに, 私たちの大きい疑問するが-. どうして日王は戦争責任を認めて退位(退位)をするとか, 自決しなかっただろうか? 王室内部でまで退位の話が流れ出たし, 連合国側でも彼を戦犯(戦犯)で起訴しようという主張が出たが….

日本政府は降参三日ぶりに占領軍専用の ‘特殊慰安施設’ 設置に取り掛かった. 1945年 8月 31日横浜で若い女性たちに声を掛けている米軍兵士らの姿. [閔淫事提供]

ヒロヒト体制維持はマッカーサーの戦略的選択だった. 日王は軍国主義者たちのロボッイルプンと言いながら戦争責任をむいてくれて, 前後秩序維持に活用しようという計算だった. マッカーサー司令部は 45年春マニラで開かれた英・米合同軍事会議でその方向をもう決めて置いた.(364ページ) ‘制定(帝政) デモクラシー’という日本特有の奇形的体制の誕生と, 以後 ‘半分のデモクラシー’と言う(のは)その副産物であるでしょう.

吉田茂前総理は後日マッカーサーを ‘偉い恩人’と言いながら泡を聞いたが, 日本人たちは初めから彼を崇拜した. 12万人が一汗一汗刺繍したマッカーサー肖像画刺繍作品を進上した位だ. 占領軍司令官に喜んで贈り物を捧げる敗戦国民の集団心理と言う(のは)優に社会病理学次元の研究対象なのに, 不様な様子は別にあった. 米軍兵士用慰安婦を政府次元で募集したのだ. 東京市内一真ん中に掛かった内務省の公告がこんなに分かるように分からなそうに雄大だった. “国家的緊急施設の一環に参加する新日本女性たちの率先垂範を請ずる.”

東京だけでも 1360人が殺到したし, 以後国家メツングルは 30ヶ所で拡がった. 水会った売春業者たちが皇宮の前に集まって “陛下万歳!”を叫んだし, 嘱望された一官僚は “他の女性の貞操を守る防波堤”と言いながら嬉しがった. しかし米軍たちはタバコ一箱の半額(1ドル)で山若い女性の腕組みをしたまま通りを歩き回ったし, それを見る日本男性の自尊心を崩し潰してしまった. 劣らず大変なのが飢えだった. 大物東條英機の弟が路宿者で生きるという事実が報道されながら社会に大きい衝撃を与えたことが当時の窮乏を象徴する.

だけか? 暗市場が幅を利かせてフングチォングマングチォングする一方に食糧配給制を守った生真面目な判事一人が 47年春飢え死にした事実もあった. お腹がすいている人々は猫要らずを入れた餌まで全部食べるせいで死亡者が続出したりした苛酷な時代だった. そうした日本の再起は朝鮮戦争特殊のためだが, 著者はマッカーサー司令部が再建の基礎を修めてくれたという通説に正面で反対する. 日本人彼ら自ら遂げた勝利と言いながらくるんで抱いてやるのに, 勝者の寛大な視線であるだろう.

いくら倭人が自分の歴史を美化してもこれが惨めな日本の歴史. kk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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