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코시 공장 피해자들 19년 법정투쟁, 8일 항소심 판결… 현재 5명만 생존
"눈을 감기 전에 한(恨)을 풀어야 하는데…."
5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태평양 전쟁 당시 10대의 꽃다운 소녀로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전옥남(81), 안희수(81), 유찬이(83), 최희순(80) 할머니 등 강제징용 피해자(근로정신대)들의 눈물 어린 호소가 메아리 쳤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4년 군수업체인 일본의 토야마(富山)시 후지코시(不二越) 공장으로 끌려가 중노동의 고통을 겪었던 할머니들은 8일로 예정된 일본고등재판소의 "후지코시 강제노동 손해배상 청구소송"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이날 일본 정부와 재판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이들 할머니들을 비롯한 후지코시 강제노역 피해자 23명은 지난 1992년 일본 토야마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한 이후 19년 동안 힘든 법정투쟁을 벌여왔다. 그간 일본 법원의 기각과 피해자들의 항소가 반복됐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 강제노역 후유증과 근로정신대를 위안부로 여기는 주변의 인식으로 인한 가정파탄 등 한 많은 삶을 산 강제노동 피해자 23명 중 생존자는 이제 이들 5명뿐이다.
"그때만 생각하면 치가 떨려 잠조차 오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 고향친구인 전옥남 할머니와 안희수 할머니가 "중학교도 가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일본인 담임교사의 말만 믿고 토야마행 인력수송선을 탄 때는 1944년 4월. 당시 만 13세로 경남 마산 성호초등학교 6학년 때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린 것은 하루 10시간이 넘는 중노동과 참을 수 없는 배고픔에 시달리는 노예 같은 삶뿐이었다. 군함, 전차 등 군수장비의 부품을 생산하던 후지코시 공장에 배치된 소녀들은 입으로 공작기계의 베어링에 기름을 붓는 등 감당하기 힘든 노동을 견뎌내야만 했다.
하지만 후지코지사는 이들에게 한 푼의 임금도 지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에서 가져간 용돈마저 빼앗았다. 철조망으로 둘러 쌓인 공장 기숙사에서 철저하게 사생활을 통제 받고 매도 맞았다.
전옥남 할머니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길가의 풀을 뜯어 먹고 배탈이 나는 처참한 생활의 연속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광복과 함께 조국에 돌아온 할머니들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할머니들 모두 심한 노역으로 인해 손가락과 발이 떨리고 온몸이 쑤시는 후유증에 시달렸다.
12세 때 부산에서 끌려간 최희순 할머니는 "당시 작업 중에 다리가 기계에 끼어 지금까지도 거동이 불편해 지금도 고생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와 후지코시사의 사죄를 받아내는 게 죽기 전 이뤄져야 할 마지막 소원"이라고 울먹였다.
일본은 정말로 전범 국가입니다.
일본의 만행은 수도 없이 많다
변명,합리화,정당화는 사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