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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가 김도 훔쳐 갔는가?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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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시킨 김

 

건조시킨 김
김은 해조류를 말려서 먹는 음식이다. 마치 종이처럼 일정한 크기의 얇은 낱장 형태로 말려서 그냥 먹거나 소금을 치거나 참기름을 발라서 구워 먹는다. 주로 요리의 부재료로 쓰이며 흔히 김밥으로 말아 먹거나, 잘게 썰어 국이나 탕 위에 고명으로 뿌려 먹기도 한다. 해우, 해의(海衣), 해태(海苔)라고도 부르며 한국, 일본 사람에게 인기 있는 음식재료이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먹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진상품과 무역품으로 귀하게 여겨졌다. 17세기부터 양식되었으며 한국에서는 주로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지역에서 만든다.

 

어원 [편집]
1650년경 전라남도의 광양의 김여익(金汝翼 : 1606∼1660)이 처음으로 양식법을 찾아내서 보급했으며 이때 특별히 부를 이름이 없어서 김여익의 성을 따서 "김"이라 부르게 되었다.

김여익은 전남 영암출신으로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나 조정이 항복하자 태인도에 숨어살던 중에 소나무와 밤나무 가지를 이용한 김 양식 방법을 창안하여 보급하였다.

이후 광양 김은 왕실에 바치는 특산물로 인기가 높았는데, 하루는 임금이 광양 김을 반찬삼아 수라를 맛있게 드신 후 음식의 이름을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어 한 신하가 "광양 땅에 사는 김 아무개가 만든 음식입니다."고 아뢰자, 임금이 "그럼 앞으로 이 바다풀을 그 사람의 성을 따서 김으로 부르도록 하여라"라고 분부하여 김이라고 했다고 전해 내려온다.

또한 전라남도 광양시 태인동에는 김여익을 기리는 유지가 있다. 전남기념물 제113호로 1987년에 지정되었다.

생물학적 의미 [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김속입니다.
김은 홍조식물 보라털목 보라털과 김속에 속하는 해조의 총칭으로 한국, 일본, 중국의 바다에서 암초 위에 자라난다. 마치 이끼처럼 자라나며 길이는 14~25cm 너비 5~12cm 정도이다. 긴 타원 모양이며 가장자리에 주름이 있고 윗부분은 갈색 아랫부분은 푸른 녹색이다. 10월 무렵부터 보이기 시작하여 겨울에서 봄을 거치는 동안 자라나고 날이 따뜻해지면 보이지 않는다.

김 만들기 [편집]
처음에는 바닷가의 암초에 붙은 돌김을 뜯어서 말려 먹기 시작하였으며 이후에는 개펄에 섶을 꽂아 포자를 붙게 하여 채취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후 대나무로 발을 짜서 바다에 말뚝을 박아 고정하여 양식을 하였다. 1960년대에 인공포자 배양기술이 개발되고 그물발이 보급되면서 김양식의 생산성이 높아졌다.

김 양식장은 해안마을에서 허가된 구역안에서 김발을 설치한 곳이다. 추석전후로 설치하고 종자용 포자를 부착한 김발과 보통 김발 여러 개를 한꺼번에 바다에 넣고 포자가 붙도록 1주일 쯤 놔둔 다음 정식으로 설치한다. 설치한 지 한 달이 지나면 채취가 가능하며 이듬해 4월까지 7~8회 정도 채취한다.

채취된 김은 민물로 세척한 다음 잘게 자르고 물통에 넣고 풀어 김발장에 뿌린다. 규격에 맞는 크기를 만들기 위해 김틀을 발장 위에 올리고 작업을 한다. 너무 두껍거나 얇지 않도록 풀어진 김을 올린 다음 양지바른 건조장에서 말린다. 건조된 김은 40장을 한 톳으로 묶으며 20톳을 한 통, 20통을 한 척이라고 한다.

한편 바위에서 채취하는 자연산 돌김은 썰물 때 긁어 모아서 말려 먹는다.

한국의 김 [편집]
김은 《삼국유사》에 처음 나와 신라시대 때부터 먹은 것으로 보이며 이 밖에 《경상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에서 김을 토산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1429년 《세종실록》에 명나라에 보낼 물건 중 하나로 해의(海衣)가 있는데, 김을 부르는 말이다.[1] 조선시대 동안에는 충청도 태안군, 경상도 울산군, 동래현, 영덕현과 전라도 일부지역에서 김을 만들어 서울로 올리는 진상품의 하나였다. 이렇듯 귀한 먹거리여서 1650년에는 1첩의 값이 목면 20필까지 오른 적도 있었다.[2] 인조18년(1640년)에 전라남도 광양 태인도의 김여익이 처음 김을 양식하는 데 성공하였다고 전해 내려온다. 김의 양식법은 완도, 조약도의 김유봉, 완도 고금면의 정시원에 의해서도 시작되었다.

주석 [편집]
↑ [h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_king.jsp?id=kda_11205004_001&tabid=k 세종 48권, 12년 5월 4일 1번째 기사]
↑ 효종 3권, 1년 3월 23일 1번째 기사

번역문보기

倭寇が長さも盗んだのか? k

src=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6/60/Korean_laver-Gim-01.jpg/180px-Korean_laver-Gim-01.jpg src=http://bits.wikimedia.org/skins-1.5/common/images/magnify-clip.png乾燥させたついで

 

乾燥させたついで
のりは海藻を乾かして食べる食べ物だ. まるで紙のように決まった大きさの薄ら一杖一杖形態で乾かしてそのまま食べるとか塩をかけるとかごまあぶらをつけて焼いて食べる. 主に料理の部材料で使われてよくのり巻きでだめにするとか, 刻んでお吸物や湯の上に高名でふりかけて食べたりする. 海牛, 海衣(海衣), ヘテ(海苔)とも呼んで韓国, 日本人に人気ある食べ物材料だ. 韓国では三国時代から食べたし朝鮮時代には真相品と貿易品で珍しく思われた. 17世紀から様式されたし韓国では主に慶尚南道と全羅南道地域で作る.

 

語源 [編集]
1650年頃全羅南道の光陽のギムヨイック(金汝翼 : 1606〜1660)が初めて様式法を捜し出して普及したしこの時特別に呼ぶ名前がいなくてギムヨイックの姓を取って ¥"金¥"と呼ぶようになった.

ギムヨイックは全南霊岩出身で丙子胡乱の時義兵を起こしたが調整が降伏するとテインドにスムオサルドンの中に松とチェストナット行くのを利用した金様式方法を創案して普及した.

以後光陽長いことは王室に捧げる特産物で人気が高かったが, 一日は賃金が光陽長さをバンチァンサムよ修羅をおいしく召し上がった後食べ物の名前をかんだが知る人がいながった臣下が光陽地に住む金何某が作った食べ物です.と申し上げると, 賃金がそれではこれからこのバダプルをその人の姓を取って金と呼ぶようにハヨラだと言いつけて金と言ったと伝えて下る.

も全羅南道光陽市テインドングにはギムヨイックを称える維持がいる. 全南記念物第113号で 1987年に指定された.

生物学的意味 [編集]
が部分の本文は金の中です.
のりは紅藻植物紫毛目紫毛と金の中に属する海藻の総称で韓国, 日本, 中国の海で障害物の上に育つ. まるで苔のように育って長さは 14‾25cm 幅 5‾12cm 程度だ. 長い楕円みたいで端にしわがあって上部は茶色下の部分は青い緑だ. 10月頃から見え始めて冬から春を経る間育って日が暖かくなれば見えない.

金作り [編集]
初めには海辺の障害物に付いた石苔を取り離して乾かして食べ始めたし以後には干潟にソブをさして胞子に付くようにして採取する方法を使った. 以後竹で足を組んで海に杭を打って固定して様式をあげた. 1960年代に人工胞子培養技術が開発されて網発が普及されながら金様式の生産性が高くなった.

金様式長銀海岸村で許可された区域の中でのり巻く道具を設置した所だ. 秋夕前後で設置して種子用胞子を附着したのり巻く道具と普通のり巻く道具いくつかをいっぺんに海に入れて胞子が付くように 1週間頃差し置いた後正式で設置する. 設置してから一月が経てば採取が可能で翌年 4月まで 7‾8回位採取する.

採取されたついでは淡水で洗滌した後細く切ってバケツに入れて解いてのり巻く道具場に振り撤く. 規格に当たる大きいのを作るためにギムトルを撥長の上にあげて作業をする. とても厚いとか薄くないようにとけたのりをあげた後日当たりのいい干場で乾かす. 乾燥したのりは 40枚をした束で縛って 20束をした筒, 20通をした振りをしながらだと言う.

一方岩で採取する自然産石苔は引潮の時掻き集めて乾かして食べる.

韓国の金 [編集]
長いことは 《三国有史》に初めて出て新羅時代の時から食べたように見えてこの外に 《軽傷地理だ》, 《東国輿地勝覧》 などで長さをお土産で紹介している.

1429年 《世宗実録》に明に送る品物の中で一つで海衣(海衣)があるのに, ついでを呼ぶ言葉だ.[1] 朝鮮時代の間には忠清道テアン郡, 慶尚道蔚山郡, 東莱県, 霊徳県と全羅道一部地域で長さを作ってソウルであげる真相品の一つだった. このように珍しい食べ物なので 1650年には 1包みの値段が木綿 20匹まで上がったこともあった.[2] 人造18年(1640年)に全羅南道光陽テインドのギムヨイックが初めてのりを様式するところ成功したと伝えて下る. 長さの様式法は莞島, 条約島の金乳棒, 莞島古今面の定時院によっても始まった.

柱石 [編集]
↑ [h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_king.jsp?id=kda_11205004_001&tabid=k 世宗 48冊, 12年 5月 4日 1番目記事]
↑ 曉鐘 3冊, 1年 3月 23日 1番目記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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