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대학살 참가 日병사들
증언 잇따라
| 기사입력 2010-05-16 15:21
(교토 AFP=연합뉴스) 1937년 일본군의 `난징(南京)대학살"에 군인으로 참가했던 일본인들이 최근 언론과 인터뷰하고 기록영화에 출연해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등 그간의 금기를 과감히 깨고 나섰다.성(姓)은 밝히지 않고 이름이 "사와무라"라고 밝힌 94세의 일본인은 16일 일본 교토의 자택에서 AFP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학살사건 이후 "그때 사람을 죽인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고 평생 나 자신에게 말하고 있다"고 밝혔다.
21세였던 1937년 12월 일본제국 육군 보병 소속으로 난징에 있었던 사와무라씨는 당시 자신이 붙잡은 한 중국인을 총검으로 찔러 처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결국 동료 병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중국인을 총검으로 찔렀다고 고백한 뒤 "총탄을 낭비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 (학살이) 초년병들을 위한 훈련이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당시 군인으로 학살에 가담한 일본인 가운데 대다수는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직 생존하는 이들은 사와무라씨를 비롯해 3명이 전부다.
일본의 진보 활동가 마쓰오카 다마키(松岡環)씨가 제작해 올해 개봉한 기록영화 `난징의 찢긴 기억들"에서는 미타니 쇼(90)씨 등 당시 일본군 병사로 난징대학살에 참가한 이들이 여럿 출연해 사건의 참혹함을 처음으로 알렸다.
난징대학살과 관련한 증언을 한 일본인들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관련증언이 나온 것이다.
당시 해군이었던 미타니씨는 "육군은 `도주하는 모든 중국인을 사살하라"는 신호를 나팔로 보내곤 했다"면서 "그때는 어릴 적부터 `중국인은 사람이 아니라 벌레 같은 존재"라고 학교에서 가르치던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해군 함정에서 망원경으로 학살을 목격했다는 그는 진상을 증언하고 싶었으나 용기를 내지 못하다가, 1990년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당시 도쿄도지사가 한 잡지의 인터뷰를 통해 "난징대학살은 거짓"이라고 말한 것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고 전했다.
난징대학살은 1937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당시 중국 수도 난징으로 진격하던 일본군이 난징과 그 주변에서 중국인 집단 살해와 부녀자 성폭행, 약탈, 방화 등을 저지른 사건이다.
지난해 중국과 일본은 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꾸려 난징대학살의 진상파악에 나섰지만, 일본 학계는 학살 희생자를 2만~20만명 수준으로 보는 반면 중국은 최소 30만명이라고 주장해 결국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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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3278948 대부분이 죽어서 난징 대학살은大날조라고 더욱더 마음껏 울부짖을 수 있었는데 이런 놈들이 방해하다니.. 울화통이 찢어질 것이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추적해서 반드시 꼭 학살하겠지.. 언제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