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檀君)·고목신(高木神) 명칭 유사
일본 개국신화가 우리나라 단군·가야신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론이 한일 역사학자 연구와 일본 고증을 통해 알려졌다.
지난 8일 홍윤기 한국외대 교수는 국학원 국민강좌 ‘한국과 일본의 천손문화 비교’에서 “한국 고대민족이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신화와 설화가 이동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일본에 문자가 없었던 5~6세기 즈음, 백제의 왕인 박사가 문자를 가져가 전파한 것과 같다. 국가 형성과정에서 일어난 신화와 전설 등은 민족이동으로 전해져 일본 역사에 녹아들었다.
일본 고서인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記)>는 일본 개국신화가 단군과 가야신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러한 옛 문헌은 지배자의 기원과 계보를 말해 주는 증거로 지배의 정통성과 근거를 밝혀준다.
일본 ‘니니기노미코토(瓊瓊杵尊)’ 개국신화는 천손이 강림하는 우리나라 ‘단군신화’와 가야 김수로왕의 ‘구지봉설화’를 뒤섞어 놓았다. 단군신화에서 환인(桓因)이 환웅(桓雄)에게 세 가지 보물인 3종 보기(寶器)를 주고 풍사(風師), 우사(雨師), 운사(雲師) 직능신(職能神)을 딸려 보내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가 조선을 개국한다.
일본은 고목신(高木神)의 외손자 니니기노미코토가 천조대신(天照大神)의 명을 받아 3종 신기(神器, 옥·구리거울·검)를 갖고 5부신을 데리고 지상에 내려온다. 고목신과 단군 명칭은 나무와 관련돼 두 신화가 유사하다는 것을 분석할 수 있다.
우메하라 다케시 교토시립예술대 명예교수는 “니니기노미코토가 이끄는 천손족은 조선에서 일본 규슈 남부로 건너와 다카치오(高千穗) 봉우리로 왔다”며 “벼농사 기술을 가진 이들은 차츰 그 세력을 사이토바루(현재 미야자키현)까지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실례로 1910년대에 발굴된 일본 고분에서는 중국풍의 베옷이 입혀진 하니와(埴輪, 흙으로 빚은 묘지 매장물)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금동제 마구류(馬具類)가 출토됐다. 이는 수렵 채집으로 먹고살던 토착 조몬인과 한반도를 건넌 야요이인이 만나 초기 일본민족을 성립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붉은 보자기에 싸여 구지봉(龜旨峰)에 내려온 가야 김수로왕의 탄생 설화 내용 역시 니니기노미코토 신화에 담겼다. 고목신이 니니기노미코토를 땅으로 보낼 때 보자기에 싸서 지상으로 내려 보냈다. 니니기노미코토가 땅으로 내려온 곳은 바로 ‘구시후루’의 ‘소호리’라는 봉우리였다.
홍 교수는 “구지와 구시는 동일어”라며 “구시후루산 봉우리 이름 ‘소호리’는 우리말에서 서울을 뜻하는 말이다. 신라의 서벌(徐伐) 혹은 백제의 소부리와 똑같은 지명”이라고 말했다.
일본 개국신화가 우리 신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론은 일본 학자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부분이다. 홍 교수에 따르면 일본의 저명한 신화학자 및 역사학자들은 “고대 한국신화가 일본신화로 각색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日 천손족, 조선서 일본 규슈로 건너왔다” 부정 할수 없다^^ PAKURI KING
제발 PAKURI 좀 하지마 !!
부끄럽지도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