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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선조 30) 9월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이순신(李舜臣)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명량해협에서 왜군을 쳐부순 싸움.
이순신이 원균(元均)의 무고로 통제사(統制使)에서 물러났으나, 원균의 패전으로 인해 백의종군 중이던 1597년(선조 30) 7월 다시 통제사로 기용되어, 전선(戰船)을 정비하고 왜군과의 싸움에 대비하였다. 드디어 8월에 왜선이 어란포(於蘭浦)에 나타난 것을 격퇴하여 사기를 크게 올렸고, 9월에 왜선이 또 다시 어란포로 들어오는 중이라는 보고가 들어와 12척의 전선(戰船)으로 이순신은 진지를 벽파진(碧波津)에서 우수영(右水營)으로 옮기고 적의 내습을 기다렸다. 16일 새벽 왜군 함대 133척이 어란포를 떠나 명량으로 공격해 와 이순신이 이끄는 12척의 배와 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이순신은 후퇴의 기색을 보이지 않고 싸워 구루시마 미치후사[來島道總(내도도총)],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등당고호)] 등이 이끄는 왜선 31척을 격파하였고 왜군은 패주하였다.
이 싸움으로 조선군은 제해권(制海權)을 회복하였고, 왜군으로 하여금 서해 진출의 기력을 잃게 하여 왜란의 대세를 마지막 단계에서 꺾이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