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타가나[片假名]
히라가나[平假名]

일본어를 공부하는 한국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일본어가 한국어와 너무 비슷함에 놀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일본어 생성 자체가 한반도와 필연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2002년 4월 일본 공영방송 NHK, 도쿄신문, 니혼게이자 신문을 비롯한 일본언론들은 ‘가타가나의 발상, 조선전래?’, ‘8세기 조선에서 가타가나?’, ‘日 가나 한반도 유래 확실’ 이라는 제목 하에 일본 문자가 한반도에서 전래됐다라는 충격적인 보도를 했다. 이들 매체들은 일본 히로시마대학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芳規)명예교수, 도야마대학 후지모토 유키오(藤本幸夫) 교수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인용했다. “한자의 일부를 이용해 만들어진 가타가나는 일본에서 고안됐다고 여겨져 왔으나 한자를 생략한다는 발상이 한반도에서 전래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한자를 읽는 보조수단으로써의 가타가나의 원형이 한국에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 “신라 문헌에서 가타가나와 비슷한 문자가 발견된 것은 귀중한 사실이다” 2002년 10월 12일 KBS는 이러한 내용을 종합하여 ‘천년 전 이 땅에 또 다른 문자가 있었다’라는 제목으로 역사스페셜을 방영하였다.
◆ 각필의 대가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芳規)
나가야마 야스오(長山靖生)는 그의 저서 <사람은 왜 역사를 위조하는가>에서 일본이 역사를 조작한 사실들을 파헤쳐 폭로했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前수상이 재임 중에 “일본은 신의 나라다”라고 정신 나간 소리를 하여 세계를 경악하게 했듯이 나가야마씨는 이 책에서 일본이 신국(神國)으로 신앙하는 뿌리는 조작한 역사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 책에서 일본의 역사조작 주범으로
1. 일본의 정사(正史)라는 "일본서기",
2. "일본은 고대부터 세계를 재패 했다", "예수는 일본에서 죽었다",
3. 대표적인 황국사관 날조의 개척자 히라다 아쓰타네(平田篤胤)의 "상기(上記)",
4. 스에마쓰 겐쵸(末松謙澄)의 "칭기스칸은 일본인이었다" 등의 위서(僞書)를 꼽았다.
이 중에서 "상기"는 역사조작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은 수만 년 전부터 일왕이 통치한 신국이었다. 신(神)시대에 고유 문자가 있었으며,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일본문자 가나는 한자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신(神)시대의 문자를 응용한 것이다" 라는 것이 주 골자다.
▲7세기초 불경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에 쓰인 각필 구결문자 및 가타가나와 비교(일본NHK에 방송된 내용)
히라다가 이러한 내용을 발표하자 한반도에 대한 열등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있던 당시 일본 지도자들은 "일본 역사 이래 최고의 가치를 지닌 국보 제1호"라며 호들갑을 떨며 全 일본열도가 흥분했다고 한다. 이에 일부 학자들이 히라다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하여 증거를 요구했다. 하지만 본래 없었던 것을 날조해 놓았으니 증거물을 내놓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궁여지책으로 불에 그을린 철판을 내놓았다고 한다. 학자들이 철판을 검증한 결과 그곳에는 히라다가 제멋대로 새겨 놓은 한문과 비슷한 괴상한 문자가 새겨져 있었지만, 가짜임이 들통났다.
오늘날 과학의 발달과 양심적인 학자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芳規.사진)에 의거 일본어의 비밀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고바야시 교수는 도쿄대 문리과를 졸업하고 히로시마대학 명예교수로서 「각필문헌의 국어학적 연구」, 「각필이 안내하는 세계」 등 많은 저서가 있다. 그는 일본 학자로서는 최고의 영예로 여기는 ‘은사상(恩賜賞)’과 ‘일본학사원상(日本學士院賞)’을 수상했다. 1961년에는 일본에서 최초로 각필 문헌을 찾아낸 각필연구의 권위자다.
(※ 角筆--옛날 뾰족하게 깎은 대나무나 상아로 만든 필기도구로써 종이를 눌러 쓴 것이기 때문에 肉眼으로는 잘 보이지 않으며 특수 제작된 적외선 스코프 또는 야간 촛불 등에 의거 확인 가능하다)
그 동안 일본 학계는 가타가나가 서기 9세기경 일본인들에 의해 한자의 일부를 줄여 만들고, 히라가나는 한문의 초서체에서 본 떠서 만든 일본 독자적인 문자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고바야시 교수도 연구 초기에는 일본문헌의 원문 한자 옆에 각필로 새겨진 훈점(訓点)이 한자 발음이나 번역 순서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 것으로 이는 일본의 독자적 발명이며, 이것이 점차 가나문자로 발전했다고 주장했었다.
▲성암고서박물관에 보관중인 고려대장경에서 발견된 각필 훈점(KBS역사스페셜)
그러나 그는 2000년 7월 서울 성암고서박물관(誠庵古書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는 신라 ·고려 불경에서 일본에서 발견된 것 보다 년대가 앞선 점과 부호 등의 각필 흔적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이리하여 고바야시 교수는 “일본의 가나가 한국에서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입장을 바꾸었다. 그리고 2000년 말에는 이러한 주장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한반도의 문헌에 각필로 새겨진 구결(口訣)이 일본 가나의 원류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까지 펼치게 되었다.
▲고려대장경에서 발견된 각필로 눌러 찍은 훈점(글씨에 따라 점의 위치가 다르다)곳에 각필이 있다. 각필을 넣은 부분이 음푹 파여있으며, 그 위에 도장을 찍었기 때문에 도장의 잉크가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이는 도장 찍기 이전부터 각필이 판비
량론에 있었다는 증거다.(KBS역사스페셜)
그 동안 일본에서는 판비량론(判比量論)은 일본인이 신라에서 베껴왔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오타니 대학의 미야자키 겐지(宮崎健司) 교수가 97년 종이의 지질(紙質)과 당시 정황을 살펴볼 때 신라에서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최초로 제기하였다. 그리고 이를 최근 정밀 감정한 결과 신라에서 필사된 문서로 밝혀졌다. 고바야시교수는 여기에 신라인의 각필까지 확인함으로써 가타가나가 한국에서 넘어왔다고 확신했다.
‘판비량론’에서는 수십 가지의 각필이 발견됐다. 특히 한자 발음을 읽기 위한 문장부호처럼 생긴 각필이 다수 발견됐는데 이는 이후 일본에서 발견되는 각필 문장부호와는 전혀 다른 모양의 것들이다. 일본인이 베낀 것이라면 신라식 각필까지 베낄리가 없다는 논리다. 이 판비량론에서 가타가나 문자의 기원 문제와 관련하여 비상한 관심을 끄는 것은 한자의 발음을 표시한 것으로 보이는 부호들이다.

첫 번째는 뿌리 근(根)자 옆에 쓰인 ‘マリ’라는 각필 글자다. 이 글자 중 ‘マ’자는 부(部)자의 오른쪽 부(우부방) 부분을 줄인 것이며 ‘リ’자는 ‘리(利)’자를 줄인 것 같다고 고바야시 교수는 말했다. 이 중 ‘リ’자는 현재 가타가나에서도 ‘리’로 읽는다. ‘부리’라고 적은 것으로 추측된다는 주장이다. 남풍현 한국구결학회 회장은 “신라시대에 뿌리를 ‘부리’로 읽었을 가능성은 확인할 수 없지만, ‘マ’를 부(部)의 약자로 쓴 사례는 여러 차례 나온다”며 확인한 바 있다. 두 번째는 ‘공(共)’자 옆에 적힌 ‘궁(宮)’이라는 한문이다.
한편 오늘날 일본에서 사용되고 있는 가나의 기원을 알리는 구결.각필이 1993년 열반한 성철스님의 유품에서도 사용된 흔적이 2002.10.12일 방영된 KBS 역사스페셜(제목:천년 전 이 땅에 또 다른 문자가 있었다) 취재 팀에 의거 발견된바 있어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고 있다.

성철스님의 유품을 보관중인 산청군 겁외사의 불경에서 발견된 구결, 현재 일본 가나와 똑같거나 흡사함
일본은 한반도의 후국(侯國)이다◆ 일본어의 모어(母語)는 옛 한반도 언어
한편 하와이대학의 허드슨(Mark J.Hudson) 교수는 “일본어는 고대 야요이시대(BC400~AD300) 한반도인들이 사용하던 언어”라고 단호히 말했다. 이에 대해 비교언어학의 권위자인 일본인 시미즈 기요시(淸水記佳) 前 일본 구마모토(熊本)대학 교수와 한국인 박명미(朴明美)씨는 2003년 한글학회 창림 95돌 기념 연구발표대회에서 ‘한어 비교언어학의 탄생’이라는 제목의 논문과 2004년 서울대에서 ‘한·일간 유전학·언어학·고고학적 자료에 의해 재구성’이라는 논문, 2004년 9월 ‘아나타(당신)는 한국인’(정신세계사)이라는 단행본 발행을 통해 “일본어의 모어(母語) 즉. 일본어의 뿌리는 한국어”라고 규정했다.
시미즈 전 일본 구마모토(熊本)대학 교수는 만주에서 출생했으며, 아프리카 언어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아프리카연구소에서 1 8년 동안 재직했다. 이후 그는 1994년 구마모토대 언어학과에 부임했다. 시미즈 교수는 일본어 뿌리 찾기에 매료되면서 2002년 교수직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연구에 몰입했다. 박병미씨는 한.일간 언어비교연구에 관심을 가졌던 서울 출생으로 일본 규슈산업대.시모노세키시립대학 한국어 강사로서 원래 이들은 스승과 제자 사이였다.
박명미씨와 시미즈교수가 2002년 9월 공동 연구를 시작하며 세운 가설은 “일본어와 한국어는 자매 관계에 있으며, 양 언어가 거의 모두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는 것. 다시 말해 중국에서 차용한 한자어와 서양으로부터의 차용어를 제외한, 한국과 일본의 고유어가 거의 전부 같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들은 비교언어학적 연구결과를 역사학 및 고고학적 연구와 접목시켜 볼 때 한반도인이 청동기시대부터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고대국가를 형성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어와 아프리카어가 같은 계통이고, 영어는 앵글로색슨족이 대륙에서 게르만어를 가지고 영국으로 이주한 것처럼 한민족 역시 일본열도로 이주하면서 언어도 고스란히 갖고 갔으며, 두 언어가 서기 500~600년까지 통역 없이도 서로 통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이들은 한국어를 반도한어(半島韓語), 일본어를 열도한어(列島韓語)로 각각 규정했다.
이들은 인간의 한 언어는 보통 약5만 어(語) 이상의 어근(語根)을 가지고 있는데, 한·일 두 언어의 음운이 대응하는 일상 생활과 밀접한 기초어휘 약 5,000어나 찾아냈다. 그 중 1500개 어휘를 한글과 일본어를 로마자로 표기한 뒤 어근과 접사를 따로 구분하는 방식을 통해 어근의 유사성을 이 책에서 예로 제시했다.
이를테면 반도한어의 ‘산길.물길’은 경상도 사투리‘산질.물질’로 발음하듯이 일본에서는 山路를 sanji로, 阿蘇路는 asoji, 淡路는 awaji로 발음한다. ‘이야기’의 사투리 ‘이바구’는 이와쿠(iwaku), 가마솥- 釜(kam―a), 가마-窯(kam-a), 사라지다(sar-)-사루(sar―u), 구두(gud-u)-靴(kut-u), 노루(noru)-노로(noro), 갓(gas)-가사(kas-a), 무리(mur-i)-무레(mur-e), 아가(aga)-아카(aka), 위.우에(ue)-우에(ue), 하나(1.hana)-하나(端 hana), 후리다(hur-I-)-후루(huru), 꾸리다(ggur-i)-야리구리(yari-kuri), 논(non)-노(no), 아가리.아구(ag-)-아고(ag-o), 다물다(dam-u-r)-다마루(dam-a-r-u), 오들오들(떨다)-오도오도(o-do-o-do), 터벅터벅-토보토보(tobo-tobo), 홀리다(hor-ri)-호레루(hor-eru), 시(댁)(si)-시우토(시아버지.si-uto) 시우토메(시어머니,si-uto-me), (버선)볼(bor-)-보로(bor-o), 대두(dai-du)-다이두(dai-du), 나물(na-mur)-나(na),무르다(mur-)-무레루(mur-er-u), 병-비잉(biN), 고리(짝)(gori)-고리(kori), 다발(dab-a-r)-다바(dab-a), 마루(maru)-마루(maru 넓은마당)……
두 교수의 연구 결과에서 밝혀진 성과는 반도한어와 열도한어 사이에는 어근뿐만 아니라, 음운.형태.문법 구조 등 그 무엇을 비교하더라도 조직이 같으며 역사적으로는 열도한어는 반도 고(古)한어의 글자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음을 전했다. 이 같은 성과는 한·일 양국의 언어학에 엄청난 혁명으로, 앞으로 양국 언어의 문법체계가 크게 달라질 것임은 물론, 한국어사전과 일본어사전도 영어나 독일어, 불어사전과 마찬가지로 어원이 실리고, 동아시아에서 본격적인 비교언어학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두 학자는 주장했다. 이 확인 작업은 5만 어의 어휘를 대상으로 진행 중이며, 인간의 디옥시리보헥산(DNA) 해독 작업에 시간이 걸렸듯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이 작업도 완료될 것이라고 밝혔다.
언어를 통한 일본의 비밀을 밝힌 이들은 북규슈 지역에서 발굴되는 야요이인들의 인골 유전자(DNA)는 바로 현대의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비추어 볼 때 고대 일본열도는 한반도인들이 건설한 국가였음을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 연구를 통해 “일본의 역사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실려있는 신화와 전설은 전부 고대 한국인들의 이야기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고 이들은 밝혔다. 한편 이들은 “이를 통해 한국인과 일본인이 더욱 가까워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일본고문서에서 발견된 각필
1. 2001년 12월 23일 아키히토 일왕은 "나 자신과 관련해서는 옛 칸무(桓武) 50대 일왕의 생모 다카노노니이가사(高野新笠)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라고 말했다. 히로히토 일왕은 1984년 전두환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만찬 석상에서 "스이코(推古 33대 592~628년 재위)일왕 이전 일왕의 역사는 아직 잘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일왕 중에는 한국과 관련이 있는 분이 일본에 도래하여 그 혈통이 일왕의 역사 속에 포함되어 있는 지도 모른다" 라고 하여 "살아있는 신"으로 존재했던 일왕 스스로 일본의 왕통이 한반도인이라고 밝혔다. 일왕의 말을 잘 살펴보면 역사의 진실이 보인다.
2.하니하라 가주로(埴原和郞)는 <한반도를 경유한 아시아대륙인>에서 “인류학적 시작에서 고찰해 보면 한반도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온 이주족(移住族)들과 일본 원주족(原住族)의 비율은 대략 85%대 15% 정도”라고 주장했다. 또 “이주족들은 나라시대(奈良時代- 제50대 칸무(桓武) 왕이 784년 헤이안(平安)으로 천도하기 이전)까지도 한복을 입고 한국음식을 먹었으며 심지어는 한국말까지 사용했는데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 만엽집(万葉集) 등에 아직 조작되지 않은 부분은 한국어의 한국식 한자용어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3.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시절 도요토미가 만들어 놓은 ‘코무덤(鼻塚)"이라는 너무나도 잔인한 명칭에 고민하다가 ‘귀무덤(耳塚)"이라 조작시켰던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하야시 라산(林羅山)은 "천손(天孫)들은 모두 대륙(한반도)에서 건너 온 인물이다" 라고 주장했다.
4. 前 동경대학교 명예교수였던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는 “일본의 고대국가를 건설한 천황족(天皇族)은 대륙 및 한반도 방면으로부터 4~5세기에 일본 열도로 정복해 들어간 기마민족(騎馬民族)이다. 특히 미마키(美麻紀) 라는 별명을 가진 10대 스진왕(崇神王)은 가야에서 건너 온 황족이 틀림없으며 미마키란 스진왕이 살았던 옛 궁성의 이름인데 미마나(任那)를 일본 발음으로 미마키(みまき)라고 표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에가미 교수는 “일본서기의 강림신화에 나오는 ‘하늘의 신들이 일본땅 이즈모와 규슈에 내려와 원주민인 땅의 신들을 무찌르고 지배하였다’에서 하늘의 신들이란 임나(가야)에서 건너온 사람들 즉 임금의 땅에서 건너온 황족사람이다”라고
말했다.
5.우에다 마사키(上田正昭) 교토대 명예교수의 제자이면서, 2004년 교토시 역사박물관장과 교토산업대 교수를 겸임하고 있는 이노우에 미쓰오(井上滿郞)씨는 “2004년 경남 창녕군 송현동 고분에서 발굴된 금제 귀고리와 장신구 같은 유물들은 일본 나라(奈良)의 후지노키(藤ノ木)고분 출토 유물과 아주 흡사하다. 이것은 교토를 중심으로 한 일본 고대문화의 원천이 한반도 출신의 도래인들에게서 비롯됐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교토가 1천년 동안 일본문화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한반도의 선진 문화에 있었다. 일본고대 문헌에 기록된 하타씨(秦氏)는 도래인들로서 교토 서쪽 가도노가와(葛野川) 일대에 농업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리고 하타씨가 씨족사찰로 만든 것이 고류지(廣隆寺)이다”라고 말했다.
(광융사에는 한국 국보 제83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복사판이라는 일본국보 제1호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있다. 광륭사 안내책자에는 ‘재목(材木)은 적송(赤松)이고 제작은 아스카 시대이지만 그 시대의 제작 기술로 어떻게 이처럼 인간적이고 또 인간의 순화(純化)된 모습이 신에 가까운 모습으로 표현될 수 있었을까’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살펴 보면 일본 문자와 언어의 기원이 고대 한반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밝히는 중요한 사항들이다. "역사조작" 카테고리에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언어학적으로 살펴 본 일본은 분명 한반도인들이 건설한 한반도의 후국이다.
▲일본대반야경에서 발견된 각필 불상과 감옥에서 보낸 비밀문서의 각필
여기에 있는 일본인은, 백제인에 교화 되고,
「과거 역사 」라든지「쓰시마」라든지「다케시마」라든지「일본해 」라든지
모두 이것도 일본인의 망상이라고 이해 되어 있는 DAYO.

그러나, 일반 일본인은 아직
세뇌된 채로 DAYO!
매우 불쌍해 DAYO.

이 정도의 진실,
자칭 선진국에서 퍼지지 않는다고는,
부끄러운 일DAYO!

거기서 제안 DAYO!
모두가 함께, 무지자 일본인을
교화 하는 방법을 생각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