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 인류의 존재 이후 최악의 대참사, 인간의 잔혹성을 가장 잘 드러낸 홀로코스트인 난징 대학살은 1937년 12월부터 약 6주간 일본군에 의해 자행 되었다. 공식기록으로 난징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30만명의 어린이와 부녀자를 포함한 민간인이 일본군에 의해 게임하듯 잔인하게 도륙 되었고, 2만이 넘는 나이어린 소녀와 부녀자들이 강간당하고 심지어 임산부까지 강간한 후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 노는 만행이 이루어 졌다.
일본군의 칼날에 목이 떨어져간 난징
시민들
난징대학살은 일본의 교묘한 술책으로 인해 수십년간 역사속에 뭍혀 왔다가 미국에서 생활하던 30대 중국계 작가인 아이리스 장 (Iris Chang)이 "난징의 강간 - Rape of Nanking"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베스트 셀러가 된 계기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아이리스 장 (Iris Chang)의 "난징의 강간 - Rape of
Nanking"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이 책이 다른 많은 작가들과 역사가들을 자극해 난징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다시
조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매년 그 수가 줄어들어 영원히 사라져버릴, 과거를 기억하는 생존자들의 이야기가 영원히 역사속에 남게 되는
것이다.
내가 더욱 간절히 바라는 것은 이 책이 일본의 양심을 자극해 일본이 자신들의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난징의 강간 - Rape of Nanking" 서문 중
히스토리채널 인터뷰 동영상
아이리스 장(Iris Chang)은 책이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자 난징대학살을 부정하는 일본 우익들의 수많은 회유와 협박에 시달리다가 극심한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시달리다 바로 지난해 11월 9일 권총 자살 했다.아이리스 장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이 여전희 의문점을 제시하고 있고 지금도 자살이 아닌 일본의 극우 단체에 희생된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1937년 군비확장을 확대하던 일본은 야심찬 영토확장을 노리며 중국 침략 기회를 옅보던 중 일본 군병사가 점호에 참석하지 않자 중극측의 사살이라 주장하며 공격을 시작해 7월 텐진을 함락한것을 물론 8월엔 상하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쟁은 수적우위에 있었던 중국군을 쉽게 제압하지 못했고, 겨울까지 지지부진한 전투만 이어졌다. 드디어 11월 상하이에 입성하는데 성공한 일본은 그에 대한 복수를 결심한듯 미친듯이 양민을 죽이기 시작했다.
1937년 8월 상하이 침공시 양민을 학살하는
모습.
당시 무수히 많은 양민들이 일본군의 잔인한 총칼에 도륙
되었다.
불허가(不許可)라고 씌여진 일급 비밀사진으로 당시 출판금지된
사진
일본군의 폭격으로 불타는 상하이
상하이 점령 후 난징으로 진격을 하면서 일본군의 만행은 도를 넘어서 난징을 쑥대밭으로 만드는데, 그와중 죽은 인명의
수가 30만을 넘었고, 강간을 당하며 죽어간 여인네들의 수가 2만을 넘었다. 마치 게임 즐기듯이 인간을 살육하기에 광기가든 일본군은 산 사람에
등유를 부어 태워죽이거나, 임산부를 강간하고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는 등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을 저질렀다.

총으로 양민을 죽이는데 실증난 일본군은 산사람에게 디젤 오일을 부어 태워
죽였다.
강간후 옷을 벗겨 희롱하는
일본군
일본군은 임산부를 강간하고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기도
하였다.
일본군에 잔인하게 살해된 7살짜리
아이
3살 짜리 아이도 일본군의 총칼을 파해갈순
없었다.
거리청소라 불리워진 당시의 학살에 수천의 어린아이들이 잔인하게 학살
당했다.
칼날을 시험하듯 공개적으로 목을 치고 있는
일본군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총검술을 연습하는
일본군
홀로코스트가 벌어지고 있는 난징은 더 이상 지구상의 땅이 아닌 생지옥 그 자체
였다.
더 나아가 일본의 언론은 군의 사기를 높힌다는 명목하에 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학살을 경쟁적으로 부추겼다. 신문은
이러한 살인 경쟁을 인터뷰하고 그 승자를 보도했다. 그러한 인터뷰는 살인자를 자랑스러운 행위를 한 인물로 조작했고, 그들의 용기는 기록되고 널리
알려졌다. 그들의 이름은 하급 장교 였던 무카이도시아키, 노다 다케시였다.

무카이도시아키, 노다 다케시
남경 도착전에 누가 100명을 먼저 죽이는가가 그들의 목표였다. 무카이도 시아키는 89명을, 노다다케시는 78명을
죽여 목표엔 실패 했지만 그들의 경쟁적인 살인은 멈추지 않았다.
"어느 기록에 의하면 무카이도시아키는 250명을 죽여 노다다케시를 크게 앞질렀다. 그래서 노다다케시는 1000명을
목표로 하는 경쟁을 무카이에게 제안했다." 자료 :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 1938년 2월 9일자)
난징 대학살의 기록은 영상으로도 기록 되어 있다. 마기필름이라고 불리는 이 영상은 난징에서 선교사로 있던 존 마기
(John Magee)에 의해서 쵤영 되었으며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찍은 유일한 동영상이다.
존 마기 (John
Magee)
존 마기 (John Magee)가 쵤영당시 사용했던
카메라
마기필름 - 7살 아이의 죽음
마기필름 - 난징대학살 중 살아남은 생존자가 치료받고 있다.
마기 필름 - 당시 생존자가 난징 대학에서 의료검사 받고 있다.
당시 난징에는 많은 서양인들도 있었고, 난징 대학살이 벌어지는 동안 기록을 남기로 일본군에 더이상 학살을 자행하지 말것을 어르기도 했다. 그 중 중국의 쉰들라라 불리는 욘 라베 (John Rabe)도 난징에 있었다. 학살이 벌어지는 동안 일본대사관에 학살을 멈추라고 요구하기도 했고, 히틀러에게 수차례 난징의 상황을 보고 하기도 하였지만 아무런 답변을 들을수 없었다. 안전지대를 관리하던 욘 라베는 수십만의 중국인들을 구하며 중국의 쉰들러라 불리게 되었으나 독일에 돌아간 후 게쉬타포에게 체포되어 침묵할것을 강요 받았으며, 첩거한채 여생을 마감해야 했다.
사진 출처 : MBC 홈페이지
일본은 지금 어떻한가 ?
97년 미국에서 출간된 <난징의 강간>은 일본 내 난징대학살 부정파의 관심의 초점이 된다. 출간되자마자
50만부를 훌쩍 넘긴 <난징의 강간>이 서구 사회에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 판단한 부정파는 <난징의
강간>을 반일위서(反日僞書)로 규정한다. <난징의 강간> 일본어판을 펴내고자 했던 한 출판사는 결국 계약을 파기하고, 일본에서는
출판조차 되지 않은 <난징의 강간>의 비판서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부정파들의 주장대로 <난징의 강간>에는 아이리스 장이 잘못 인용한 사진들이 있다. 난징이 아닌 사진도 있고, 영화 장면에서 온 것도 있다. 그러나 일본의 난징대학살 부정파는 <난징의 강간>에서 잘못 인용된 사진을 난징대학살 전체를 부정하는 근거로 삼는다. - 출처 : MBC - 일본은 지금도 난징대학살을 "20세기 최고의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며 끊임없이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 독일이 나치의 유대인에 대한 만행을 반성하고 또 반성하는 반면, 일본은 미안하단 소리하나 없이 오히려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발뺌하고 있다. 2차대전 당시 한반도에서 벌어진 잔인한 범죄들 포함하여 이러한 학살을 자행했던 전범들을 야스쿠니 신사등에 모셔놓고 총리또한 매년 가서 머리를 숙이며 그들을 영웅시 하고 있으며 교과서 왜곡 등을 통해 역사 마저 왜곡하려는 만행을 일삼고 있다.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정은 "무턱대고" 나쁜게 아니다.
일본 우익단체의 시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