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국가와 혁명과 나」》
우리민족의 5천년 역사는 한마디로 말해 뒷걸음질과 침체의 연쇄사(連鎖史)였다. 어느 시대에도 변경을 넘어 외세를 지배한 적도 없었고, 어느 시대에도 해외의 문물을 크게 받아들여 민족의 개혁을 시도한 적도 없었다. 과연 어느 시대에 특유의 산업과 문화로 독자적인 자주성을 발양한 적이 있었는가.
언제나 주변 강대국에 밀려 맹목적으로 외래문화에 동화되거나 원시적인 산업으로부터 단 한치도 나올 수 없었고 고식, 나태, 안일, 기회주의에서 나타나는 소아병적인 봉건사회의 하나의 축도(縮圖)에 지나지 않았다.
단군 성조 국가를 세운지 5천년, 이 민족은 겨우 삼천리의 좁은 변강 속에서 세계 희유의 순혈동포이면서도 혹은 혹은 상잔을 거듭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두터운 봉건 속에서 빈곤과 나락과 안일 무사주의의 악순환 속에서 분열 파쟁을 일삼아 왔다.
순수한 동포민족, 천혜의 금수강산, 무비의 고유 문화를 지녔으면서 알맞은 국토, 알맞은 인구, 알맞은 자원을 가지고도 한번 국가다운 국가를 세워보지 못하였음이 오늘날까지의 우리 역사이다.
생각하면 참으로 곤욕과 피눈물에 점철된 것이 우리의 역사였다.
스스로 통탄과 비분과 치욕을 금할 수 없는 우리의 과거였다.
안으로 이러한 일로 지내온 민족이 어찌 밖을 내다볼 수 있었겠는가.
변경을 넘어 해외로의 웅비는 고사하고 한 치의 앞마저 내다보지를 못하고 항시 중국, 일본, 러시아의 강압 속에 숨막히는 질식생활을 영위하여 온 우리 민족이었다.
첫번째로 우리의 역사는 항상 타인에 밀려 거기에 의존해 살아온 역사이다.
두번째로 우리의 투쟁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세계사에서 보기 드물 만큼 소아병적이고 추한 모습이었다.
이조(李朝)는 항상 당파분쟁에 빠져있는 동안 결국 망국의 비운을 맛보게 된 것이다.
세번째로 우리는 자주의식과 주체의식이 부족했다.
우리의 파란많은 역사에서 고정될리가 없었던 문화, 정치, 사회는 마침내 「우리의 것」을 잃어버리고 「사람의 것」을 바라보게 되어 거기에 영합하는 추한 민족성에 빠지게 되었다.
한글 이외에 「우리의 것」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하루빨리 우리만의 철학을 창조하고 독자적인 문화형성에 전념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상과 같이 우리의 민족사를 고찰해 보면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세계로 웅비하는 일대 선진국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좌절한다면 위의 지적대로 중국, 일본, 러시아의 3대 대국(大國)의 각축 속에 휘말려 또다시 그들의 속국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음을 통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