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트너 "G20회의서 위안화 절상 지지세력 규합하겠다"
"엔高 때문에 못살아" 日 돈 풀었다… "왜 공조 약속 깨나" 美·유럽 화냈다
"왜 통화정책 간섭하나" 中, 日 편들다
수퍼엔고(高) 현상(달러 등 다른 통화에 대해 엔화 환율이 크게 떨어지는 현상) 해소를 위한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이 국제통화 전쟁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오는 11월 11~12일 열리는 G20 서울 정상회의가 미국·EU 대(對) 일본·중국의 "환율 전쟁터"가 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 미국·EU(유럽연합)가 반발한 데 대해 중국이 일본 편을 들고 나서자 16일(현지시각)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중국의 위안화 환율 절상이 너무 느리게 이뤄지고 있다"며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위안화 환율 시스템 개혁을 위한 국제적 지지 세력 규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들은 자국(自國)의 수출을 늘리기 위해 환율을 인위적으로 올리지 않기로 하는 등 국제 공조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일본이 수퍼엔고를 견디지 못하고 이 "약속"을 깨면서 마찰음이 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5일 2조엔을 시장에 풀었다.
이에 유로 재무장관회의 의장인 장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는 15일 "일본의 개입은 적절하지 않다"고 경고한 데 이어 16일에도 "엔화는 유로화에 대해 과대평가 상태가 아니다"고 말했다. 미국 의회는 더 심각한 반응을 보였다. 미 하원 세입(歲入)위원회의 샌더 레빈 위원장은 "약탈적 외환정책을 실시하는 나라는 중국만이 아니다"고 했다. 일본을 "환율 조작국" 리스트에 올린 것이다.
미국의 이런 격한 반응에 오히려 중국이 흥분해 공격하고 나섰다. 중국 국영 중앙TV는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통화 안정은 어떤 나라든 중요하다"고 했다. 그동안 위안화 절상을 요구해온 미국을 화살로 겨냥하면서 일본 편에 선 것이다.
중국이 미국을 자극하자,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16일 상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중국이 좀 더 빠른 속도로 위안화 절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며 중국을 공격하고 나섰다.
엔화 가치 안정을 위한 일본 정부의 시장 개입에 중국 문제가 얽혀들면서 상황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일본의 독자 행동이 수출 확대를 노리는 미국과 유럽의 성장 정책을 방해할 뿐 아니라, 위안화 절상을 꺼리는 중국을 측면 지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일본 내에선 미국의 반발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엔고 추세를 돌리기 위한 지구전(持久戰)이 시작됐지만 미국과 유럽의 협조는 불투명하다"고 보도했다.
엔화 가치를 조정하는 것은 결국 달러와 유로화 가치를 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국 반발을 부를 수 있고, 자칫 수퍼엔고 현상을 더 심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달러당 79엔대까지 치솟은 1995년 미국·유럽과 공동으로 시장에 개입해 엔고를 단기간에 진정시켰다. 하지만 주요 통화 국가의 협조를 구하지 않고 단독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한 2003년과 2004년엔 35조엔을 투입하고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특히 이번에 미국과 유럽이 반대하고 있어 일본 정부의 지속적 시장 개입은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17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달러당 85엔대의 흐름을 이어갔다. 달러당 82엔대였던 이틀 전 일본 정부가 시장에 2조엔을 풀어 조정한 결과다. 이후 일본 외환시장은 "방어선 82엔, 적정선 85엔"이란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수퍼엔고 현상은 일본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2008년 리먼 사태로 시작된 수퍼엔고 흐름은 일본 경제의 강세 때문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 경제의 약세가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엔고 추세가 끝나려면 미국 경제가 좋아져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야 한다. 게다가 일본의 지난 7월 상품수지는 작년 7월에 비해 흑자 규모가 2배 확대됐다.
일본의 불황으로 수입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수출은 증가해 "불황형 흑자"를 내고 있는 것이다. 경상수지 흑자가 커지면 그만큼 시중에 달러 공급량이 많아지고 엔화 가치는 오른다.
일본의 외환 전문가인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아오야마(靑山)학원대 교수는 엔화 가치가 연내에 달러당 79엔대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일본 경제가 미국 등 글로벌 경제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수퍼엔고의 덫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얘기다.
☞수퍼엔고
수퍼엔고는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이 적정 수준에서 벗어나 크게 떨어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최근 엔화 환율은 1995년 4월 기록했던 역사상 최저점인 달러당 80.63엔에 근접하고 있다. 수퍼엔고 현상이 벌어지면 일본 기업들의 수출 제품 단가가 급등해 일본 경제가 더 어려워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