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全羅道) 백성들의 풍속은 다른 도(道)와 비교할 것이 아니어서 옛부터 성질이 완악(頑惡)하였으니, 다만 미천한 백성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품관(品官)의 무리들도 시골에서 세력을 부리어 긴 울타리를 설치하고는 양민(良民)과 다른 사람의 노비(奴婢)를 숨겨 두고서 약탈하여 다른 사람에게 팔고 있습니다. 그래서 풍조(風潮)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모두 이러하니, 이런 풍속은 커지게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조지산(趙智山)이 죄를 범한 것은 사유(赦宥)하기 전에 있었으므로 소급하여 논죄(論罪)할 수는 없지마는, 그러나 완전히 석방(釋放)하고 죄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완악(頑惡)한 풍속을 어떻게 제거시킬 수 있겠습니까? 삼가 성상께서 재가(裁可)하시기 바랍니다.”
【원전】 10 집 444 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군사-군역(軍役) /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사법-행형(行刑)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 연산 033 05/05/07(병인) / 전라도 관찰사 안침이 전라도 인심과 풍속이 음탕하고 문란한 것을 엄히 금하기를 청하다 》
전라도 관찰사 안침(安琛)이 아뢰기를,
“본도는 인심이 음란하고 간사하여 남자는 여복으로 변장하고 무당의 버릇을 익혀 사족의 가문을 출입하면서 노래와 춤으로 신(神)을 즐겁게 한다 하며 주야로 그치지 아니하고, 여자는 음탕한 놀이를 좋아하여 산사(山寺)을 돌아다니므로 패속(敗俗)이 막심하오니, 청컨대 엄중히 금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좇았다.
【원전】 13 집 357 면
【분류】 *풍속-풍속(風俗)
《 중종 037 14/10/26(병술) / 전라도 재상 어사 장옥이 복명하여 전라도의 민정에 관해 아뢰다 》
전라도 재상 어사(全羅道災傷御史) 장옥(張玉)이 와서 복명(復命)하니 임금이 인견(引見)하였다.
“전라도는 풍속이 거센 고장입니다. 염치를 모를 뿐 아니라, 사람 죽이기를 닭이나 개를 죽이듯이 하고 수령(守令)을 깔보며, 또 남의 무덤을 파내는 것을 보통 일로 생각하므로, 감사(監司)의 뜻은 반드시 경관(京官)을 청해다가 국문(鞫問)하여 조정(朝廷)이 경동(驚動)하는 뜻을 보이고자 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요즈음 듣건대, 경기(京畿)에도 그런 일이 있고 외방에는 그런 풍속이 이루어졌다 하나, 감사가 도사(都事)를 시켜서 다스리게 하면 될 것이니 경관을 보낼 것은 없다.”
하였다.
【원전】 15 집 574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윤리(倫理) / *왕실-종친(宗親) / *사법(司法)
《 명종 012 06/08/04(기미) / 이조의 건의로 전라도에 정2품관을 감사로 삼아 풍속을 바로 잡도록 하다 》
이조가 아뢰기를,
“전라도는 인심이 사나우며 풍속이 아름답지 못하므로, 그 도의 감사로 반드시 명망과 지위과 높은 사람을 파견한 연후라야 민심을 진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2품 재상으로 의망(擬望)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전라도 인심이 아무리 사납다 할지라도 감사 된 자가 백성을 자기 자식처럼 잘 어루만지고 돌본다면 그 백성들도 부모처럼 사랑할 것이다. 정언각(鄭彦慤)은 실정(失政)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이다. 대개 정치란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인데 어찌 정2품이라 해서 더하거나 덜하겠는가.”
하였다.
【원전】 20 집 34 면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人事)
《 명종 018 10/01/04(경자) / 원한으로 부모의 무덤을 파괴하는 전라도의 악습을 치죄할 것을 헌부가 아뢰다 》
헌부가 아뢰기를,
“요사이는 인심이 완악하여 하지 않는 짓이 없으므로 조금이라도 혐의나 원한이 있으면 보복하려고 생각하며 만일 그 사람에게 보복하지 못하게 되면 반드시 그의 부모의 무덤을 파 헤쳐, 자기의 마음을 통쾌하게 합니다.
팔도 중에서 전라도가 이러하여, 앞서는 이미 부원군(府院君) 임백령(林百齡)의 부모 무덤을 파 헤쳤고, 신해년에는 또한 지사(知事) 김인손(金麟孫)의 부모 무덤을 파 헤쳤습니다.
《 영조 071 26/01/16(경신) / 승지 남태온이 호남의 사정에 대해 아뢰다. 》
승지 남태온(南泰溫)이 입시하여 아뢰기를,
“신이 새로 호남에서 왔습니다. 호남의 인심이 매우 교활하나 부세(賦稅)를 탕감해 준 뒤로는 백성들이 모두 나라를 위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 정조 051 23/06/26(계축) / 전 전라도 관찰사가 호남의 사치 풍속과 모내기에 대해 아뢰다 》
전 전라도 관찰사 이득신(李得臣)이 아뢰기를,
“호남의 습속은 다투어 사치를 숭상하여 그릇이나 옷을 남보다 낫게 하려고 힘쓰고 있는데, 관혼 상제인 경우에는 더욱 한도가 없습니다. 이렇게 점점 물들어가고 있으니 폐해가 갈수록 많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