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나라 군인들은 일본도(日本刀)를 두려워했다. 도(刀)는 중국에도 있지만 보통 짧고 한 손으로 쓰던 무기였다. 반면에 일본은 도를 양손 무기로 개량해 사람을 한 번에 동강낼 정도의 위력을 갖추게 했다. 독특한 제련법 덕에 일본도는 중국군이 지닌 그 어떤 무기도 베어버릴 정도로 강하고 예리했다.
명나라의 고민은 바로 이 일본도에 맞설 효과적 전법이 없었다는 데 있었다. 거의 직업적인 전사로 이뤄진 왜구와 달리 명나라 병사들은 대개 징집한 농민병으로 구성됐다. 중국군은 병력 우위를 앞세워 방패와 창을 들고 적을 압박하는 밀집대형 위주로 전술을 운용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집단 전술은 일본군에게 통하지 않았다. 긴 일본도를 휘두르는 왜구는 한 명이 18척(약 5.5m)의 공간을 담당할 수 있었다. 일류 무사는 이 밀집대형의 가운데로 뛰어들어 창과 방패와 몸통을 한 번에 가를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병사 여럿을 한 번에 쓰러뜨릴 수 있었다. 특히 사쓰마 번(현재의 규슈 가고시마 지역) 검법은 사람을 동강내면서도 정작 무사는 보이지 않고 검만 보였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일대일 전투 능력, 전술 운영 능력, 전투 경험 등 모든 부분에서 왜구는 명나라 군대를 압도했다.
명나라의 전설적 명장 척계광(戚繼光·1528∼1588)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왜구를 섬멸하기 위해 ‘원앙(鴛鴦)’진법이라는 전술을 창안해 왜구 소탕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원앙진법에서 한 팀은 12명으로 구성됐는데 한 명은 대장, 한명은 취사병이었다. 따라서 실제 진을 구성하는 병사는 10명이다. 척계광은 접전상황과 왜구의 검법을 연구해 10명의 임무와 기능을 아주 세밀하게 재구성했다. 10명 중 1명은 오각형의 큰 방패를, 1명은 둥근 등나무 방패를 휴대하고, 2명은 낭선(사슴뿔 형태의 쇠로 만든 가지가 달린 대나무)을 맡았다. 뒤의 4명은 창을 들고, 뒤의 2명은 당파(삼지창)를 들었다.
이렇듯 병력 편제의 최하부 단위까지 분업화된 집단으로 편성된 원앙진은 매우 단계적이고 체계적으로 왜구와 맞설 수 있게 했다. 우선 첫 번째 충돌에서 방패와 낭선이 일본도의 공격을 저지한다. 낭선은 거의 10층의 가지로 구성돼 있고 수비 범위가 넓어 일본도의 빠른 공격을 저지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일선에서 왜구의 공격을 저지하고 묶어 두면 이 틈을 노려 이선의 창병이 왜구를 공격했다. 4개의 창병이 시간차를 두고 페인트 모션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공격했다. 이때도 당파가 같이 붙어서 수비를 담당한다. 당파도 일본도를 막는 데 효과적이다. 방패와 낭선보다는 방호력이 떨어지겠지만 1차 공격이 가장 강력할 것이라는 전제로 보면 공격은 전혀 불가능한 낭선과 달리 공격능력도 보유했다는 게 장점이다.
원앙진은 명군에 그야말로 새로운 효율성을 부여했다. 무엇보다 분업을 통해 최대의 약점, 즉 징집병의 전투 능력 부족을 극복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원앙진이 너무 복잡하고, 10명이 왜구 1, 2명을 상대하는 구조라 낭비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분명히 그런 문제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원앙진의 큰 장점은 일본도의 스피드와 파워에 대항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병사들에게 부여했다는 것이다. 병사들이 왜구와 백병전을 벌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자 그 외 여러 가지 작전과 과거의 전법들도 힘을 받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