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세계에서 가장 느리다.(日本の政府が世界で一番?い)"
지난 11일 발생한 대지진의 참상 앞에서 일본은 침착한 것인가? 아니면 냉담한 것인가? 적어도 유키오 코마(56)씨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20일 뉴욕 맨해튼에서 만난 유키오씨는 "일본 정부가 이번 재해에 대해 느리게 대처할 뿐 아니라 사실대로 대처하지 않고 오히려 축소하려는 느낌마저 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유키오씨는 일본 국민들에 대해서도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지진 피해를 입은 지역에 대해 (일본 국민들이) 너무나 차갑게 대하고 있다"며 "지진은 그 지역의 문제라면서 도쿄에서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유키오씨는 4년 전부터 일본과 뉴욕을 오가며 "NY UNIS(United Nation International School)" 등에서 학생들에게 일본 전통악기인 샤미센(三味線)을 가르치고 있다.
샤미센 들고 뉴욕 거리로...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 전혀 몰랐다"
20일 오후 2시경, 수업을 마친 유키오씨는 악기를 들고 맨해튼 이스트빌리지로 향했다. 한 일본식당 앞에 자리를 잡은 유키오씨는 "PLEASE HELP JAPAN(일본을 도와주세요)", "LOVE, SAVE JAPAN(사랑해요, 일본을 도와주세요)" 등의 글씨가 적힌 널빤지로 작은 무대를 만들었다. 널빤지의 한쪽에는 규모 9.0의 강진과 쓰나미가 휩쓸고 간 일본의 참상이 담긴 사진도 붙어 있다. 바닥에는 돈을 담을 수 있는 모금함과 악기 가방이 놓였다. 그가 악기를 잡고 연주를 하는 동안, 모금함과 악기 가방은 지폐와 동전들로 조금씩 채워졌다.
그가 샤미센과 모금함을 들고 거리로 나선 것은 지난 11일부터다. 이날 오전 그는 일본 인터넷 라이브 뉴스 매체를 통해 처음 지진 소식을 접했다. 그는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지진이 발생한 일본 동북부의 이와테현은 바로 그의 어머니가 살고 계신 고향이었다. 급히 어머니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연락을 취했고, 간신히 전화통화가 이뤄졌다.
하지만 유키오씨의 어머니는 그에게 "일본으로 돌아오지 말고, 그곳에서 피해 소식을 알리고 도움을 줄 방법을 찾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귀국을 포기하고 이날 오후부터 곧바로 거리에 서서 연주를 시작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번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그는 이모와 남동생 등 8명의 가족을 잃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어머니의 행방마저도 알 수가 없게 됐다. 며칠 전부터 어머니마저도 연락이 끊겼다.
"지난 구정 설날, 일본 어머님댁에 3일 정도 다녀왔다. 어머니께서 다리가 불편하셔서, 있는 동안 내내 내가 직접 식사를 차려드렸다. 돌아올 때, "이게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는데……. 지금으로서는 그때가 마지막 모습인 것 같다. 너무 힘들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씀 때문에 돌아가지 않고, 이렇게 연주를 하고 있다. 지금, 이것밖에 할 수 없다는 게 너무나 안타깝고 답답하다."
▲ 유키오 코마(56.오른쪽)씨가 뉴욕 맨해튼 이스트빌리지의 한 일본식당 앞에서 뉴욕 UNIS의 학생 알레젠드로 듈레(멕시코)씨와 함께 일본 전통악기인 샤미센을 연주하며 일본 지진 참사 피해자들을 위한 성금을 모으고 있다.
ⓒ 최경준
특히 유키오씨는 연주를 통해 모금을 하는 내내 어려서부터 들었던 어머니의 말씀을 자주 떠올린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에게 나쁜 말을 하지 말고 도와주면서 살아라. 네가 이렇게 사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도와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 악기를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해 왔고, 그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사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거리에서 연주를 하는 것도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그런 솔선수범을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모금 액수도 중요하겠지만) 내가 이렇게 여기서 응원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그 사람들이(지진 피해지역 사람들이) 들으면 얼마나 힘이 되겠나.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다."
이 지역은 일본식당이 많아 일본인을 비롯한 동양인 관광객들이 주를 이루지만, 뉴욕 시민들도 자주 찾는 번화가다. 뉴요커들과 관광객들은 흥미롭게 그의 연주를 지켜보다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 모금함에 넣곤 했다. 지진의 참상을 모르는 한 아이는 그의 연주에 맞춰 앙증맞은 춤을 춰,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지난 8일 동안 2000달러 정도를 모았고, 이와테현에 있는 가장 큰 언론사를 통해 성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일본인은 물론, 한국인, 중국인, 미국인 등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함께 아파하고 도움을 주고 있다. 한 번은 근처에 사는 미국인 할아버지가 몸이 아픈데도 여기까지 직접 와서 "나는 일본을 사랑한다. 힘내라"는 말과 함께 100달러를 놓고 가더라. 일본 사람들도 그렇게 못하는데, 타국에서 외국인이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 지난 20일(미국 시각) 주말을 맞아 뉴욕 거주 일본인들이 일본 대지진 참사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뉴욕 시내 곳곳에서 브레이크댄스, 북춤 등 문화행사를 통한 소규모 모금 활동을 벌였다.
ⓒ 최경준
"일본 국민, 너무나 차갑게 대처... 정부는 축소하려는 느낌"
유키오씨는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외국인들로부터 감동을 받은 반면, 이번 대지진에 대처하고 있는 일본 국민들에 대해서는 섭섭함이 많았다.
"너무나 엉망진창이다. 섬나라여서 그런지, 너무나 차갑게 대처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인, 중국인들이 더 따뜻하다. 현재 일본 내부에서는 뭔가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 냉담하게 대처하고 있다. 지금 뉴스가 되고 있으니까, "아, 힘들구나" 하지만, 모두들 이번 사태가 길게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침착한 것 아닌가. (지진은) 그 지역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쿄에서는 신경도 안 쓴다. 내가 도쿄에 가게 된다면 "우리는 이렇게 하는데, 너희들은 뭐하고 있느냐"고 말해주고 싶다."
이번 대지진으로 일본은 엄청난 인명손실과 재산피해를 입었지만, 도쿄 등 지진 피해 이외의 지역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은 어떤 동요와 혼란 없이 차분하게 질서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 등 해외언론들도 "극단적일 정도로 일본인들은 침착했다"며 재난 앞에 냉정하리만큼 침착한 일본인의 모습을 묘사했다. 그러나 유키오씨는 이러한 일본인 특유의 침착함이 오히려 "냉담"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는 일본 정부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느려터진 정부다. 자기밖에 모른다. 마치 파도타기를 하는 것처럼, 계속 토픽을 바꿔가면서 진실을 감추려고만 한다. 일본 정부도 이번 사태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지금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 어려울 것 같으니까, 겉모습으로만 하는 척 한다. 사실대로 대처하지 않고 오히려 축소하려는 느낌마저 든다."
실제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성물질 대량 누출 사태에 대한 위험이 현실화하면서 일본인들도 원전당국과 정부 고위직에 대해 분노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사실 전달은 뒤로 한 채, "안심하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일본 정부의 낡은 권위주의 행태에 대해 그동안 침착했던 국민들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낸 셈이다.
이와 관련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는 지난 14일 "일본인들이 탐욕스러워졌다. 이번 쓰나미(지진해일)로 탐욕을 씻어낼 필요가 있다"며 "대지진은 천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가, 다음날 사죄해야 했다. 특히 지난 15일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방사능 유출 관련 기자회견으로 일본 국민들의 분노는 최고조에 달했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은 16일 "원전 반경 30㎞ 주민의 대피를 지시하는 긴박한 연설에서 간 총리의 어조는 시종 무미건조해 힘 모아 역경을 극복하도록 국민을 이끌려는 열의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지난 17일 오후에는 지진 발생 이후 첫 거리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도쿄 시부야 거리에서 시위를 벌인 수백 명의 일본인들은 후쿠시마 원전과 관련한 일본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을 비판하면서 "간 나오토 정권을 타도해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키오씨는 "현재 총리대신은 땅에 다리가 닿지 않아서인지(높은데 앉아서 발로 뛰지 않는다는 비유) 무슨 일이 벌어져도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고난 뒤에야 각의를 내고, 그때부터 시작하는 것이 현재의 시스템"이라며 "총리대신을 비롯한 각료(의원들)의 눈에서 "빨리 액션을 취하자"라는 눈빛을 느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일본 정부나 국민들이 겉으로가 아닌 마음으로 움직였으면 한다"고 거듭 강조한 뒤, 다시 악기를 잡고 연주를 시작했다. 그의 옆에는 그에게 수업을 듣는 UNIS학생 알레젠드로 듈레(멕시코)씨가 함께 샤미센을 들고 그를 돕고 있었다.
"응집력 약한 뉴욕 거주 일본인들, 지원 활동 미비"
▲ 지난 20일(미국 시각) 주말을 맞아 뉴욕 거주 일본인들이 일본 대지진 참사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뉴욕 시내 곳곳에서 브레이크댄스, 북춤 등 문화행사를 통한 모금 활동을 벌였다.
ⓒ 최경준
한편 뉴욕 등 미동부 거주 일본인들과 일본계 시민단체들은 일본 지진 참사 피해자를 돕기 위해 이날 뉴욕 시내 곳곳에서 문화행사를 곁들인 소규모 모금 활동을 벌였다. 뉴욕일본라이온스클럽 회원들은 맨해튼 유니온스퀘어에서 탭댄스와 브레이크댄스를 선보이며 관광객들과 뉴욕 시민들을 상대로 성금을 모았다.
이와 별도로 일본 유학생들은 줄넘기 놀이를 통한 모금 활동을 벌여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쿠퍼유니온 광장에서도 성금 모금을 위한 북춤 공연이 열렸다. 이들은 공연을 하면서 "세이브 재팬"을 외쳐 관광객들의 도움을 호소했다.
뉴욕 퀸즈 아스토리아 지하철 입구 등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나온 일본인 가족들이 작은 테이블을 내놓고 유인물을 돌리며 성금을 모았다.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 24만9000여 달러의 성금을 모은 재팬 소사이어티는 다음 달 9일 지진 성금 모금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그러나 미국 현지 일각에서는 뉴욕 거주 일본인들의 응집력이 약해 고국의 재난에 대한 지원 움직임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해 아이티 대지진 때와 2005년 파키스탄 지진 때 각 국의 이민자들이 보여준 움직임에 비해 일본 이민자들의 지원 활동이 활발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한 <뉴욕 타임스>는 "이번 대지진 참사에 일본계 이민자들은 특별한 구심점 없이 소규모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다"면서 "뉴욕에는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일본계 교포 모임이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다"고 분석했다. 일단 일본계 이민자 인구 규모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적은 데다, "차이나타운"이나 "코리아타운"과 같은 그들만의 광범위한 생활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뉴욕거주 일본인들이 고학력의 풍요로운 집단이라는 점이 응집력 약화의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25세 이상 일본인들의 중간 수입은 6만 달러로 뉴욕시 전체의 중간 수입보다 1만 달러가량 높으며, 65%가 학사학위 이상 소지자"라며 "일본인들은 자기들끼리 모이기보다는, 미 주류 사회에 융화되고자 하는 경향이 더 크다"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