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노동력 강제 동원(일본, 사할린, 남양)은 1939∼1945년 3월까지 일본측 공식 자료(〈제86회 제국의회 설명 자료〉와〈내무성 경보국 자료〉)에 따르면 최소한 767,004명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 통계는 강제 동원이 가장 심했던 1945년 4월∼8월 15일까지의 통계를 제외한 수치이며, 더구나 일본측 통계 자체도 축소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단적인 예로 이러한 일본측 공식 통계는 재일 사학자인 박 경식이〈재일 조선인 관계 자료 집성〉에서 추산하고 있는 150만 명(석탄 광산 약 60만, 금속 광산 약 15만, 군수 공장 약 40만, 토건 관계 약 30만, 항만 운수 관계 약 5만 등)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일제 시절만 해도 우리나라는 금 노다지판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1930년 6186kg(순도 99.9%, 이하 동일)의 순금 생산량을 기록한 이후 해마다 그 생산이 늘어만 갔다.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킨 1937년에는 2만2848kg이 생산됐고, 다시 일본이 1941년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공격함으로써 유발된 대동아전쟁 즈음에는 한해 평균 2만6000여kg이 생산됐다. 이 기간 조선총독부에서는 광적으로 금을 매집했고, 금값 역시 지속적으로 올라갔다. 전쟁을 수행하는 일본으로서는 금이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