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서(尹斗緖)는 1668년(현종(顯宗)9년)에 해남윤씨(海南尹氏) 집안에서 태어나 48세를 일기로 향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자(字)가 효언(孝彦), 호(號)가 공재(恭齋) · 종애(鍾厓)이다. 그는 선조(宣祖)때의 대시인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증손으로서 1693년(숙종(肅宗)19년)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였다. 공재(恭齋)는 겸재(謙齋) · 현재(玄齋)와 함께 조선화단의 「삼재(三齋)」로서, 또한 한국회화사의 중기를 획한 중흥화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소치실록(小癡實錄)》에 의하면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는 동국유화(東國儒畵)의 최고봉으로 윤공재(尹恭齋)의 그림을 꼽으면서 그의 제자인 허소치(許小癡)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우리나라의 옛 그림을 배우려면 곧 공재(恭齋)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주마상춘
낙마도
수하한일도
그런데 아래의 일본 그림. 1700년대의 그림인데 상당히 보존상태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