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분 형태.지명.부장품 한국식`
`일왕릉` 위장위해 고분 형태 변조
출토유물도 봉인
일본 전역에는 마치 우리나라 고령 지산동 고분군,신라왕릉 고분군 모습과 같은 봉토원분이 15만여기나 있다.가장 많이 분포돼 있는 지역은 부산 건너편 규슈지방이며 1세기께 축조한 것도 더러 있고 2~5세기께 축조한 원분도 5천여기나 된다.이 중에서 약 3천기는 국가 지방 문화재로 특히 동규슈 미야자키현 사이도바루에 집중돼 있는 약 3백기는 "특별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분묘제도는 조상이나 군주를 숭모하는 보수적 관습의 계승이므로 민족에 따라 특성을 가진다.우리 전통분묘는 기원전부터 적석총 석실봉토분 등을 거쳐 봉토원분으로 정형화돼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내부구조는 옹관 석관 목관 횡혈식 수형식 등 다양하다.지배자급이나 귀인의 분묘내에는 토기 장신구 무기류 각종 생활동구를 부장하기도 했다.
일본은 역사교과서마다 "야요이시대에 원분이 돌연히 등장했다"는 교육을 하며 "한국형 고분"임을 부정하고 있다.
마침 지난해 일본 야요이시대 직전의 죠믄말기 유적에서 80cm정도 깊이의 구덩이에 매장한 평장풍속이 확인됐다.봉토원분 묘제가 없었고 원분은 우리 민족이 야요이문화를 가지고 진출하면서 분묘제도를 수반한 것임이 확인됐다.
후쿠오카지역의 원분은 소형인데 비해 사이도바루의 3세기이후 원분은 대형인 것이 특색이다.우리민족 진출 초기에는 소형분묘를 축조했으나 벼농사 번성과 인구증가 집단체제 정비 세력이 강력해짐에 따라 점차 동규슈 지역으로 퍼져 대형원분을 축조했다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사이도바루의 가장 큰 원분은 지름 1백28m,높이 18m,제사터인 배단까지의 길이가 2백19m로서 엄청난 크기다.지방통치자인 왕급이나 수령급의 분묘라고 한다.사이도바루 지명의 "바루"(원)는 순수한 우리말 "벌"인 것도 특이하고 이곳 고분에서는 가야 신라유적에서 출토된 선형토기 청동기류 무기류 마구 장신구 등과 흡사한 부장품이 출토돼 고고학자들은 "한국분묘와 관련이 깊다"고 시인했다.원분의 형태 지명 부장품 등을 미뤄 우리민족의 세력권이었던 증거라는 학설도 있다.
그런데 일제시대에 이들 원분 중 가장 큰 것을 왜국에 최초로 강림한 천신으로 숭앙하는 니니기노미코도의 분묘로 지정했다.그후 왜국 초기의 부족국연합체였던 야마다이국 히미코여왕 분묘로 이름을 바꿨다.니니기노미코도는 김해 금관가야국 김수로왕의 왕자설 혹은 손자 선이라는 학설이 분분하고 야마다이국은 "가야-신라의 분국"이었으며 히미코여왕은 신라계라는 학설이 제기되자 다시 오사호츠카 매사호츠카라며 이름표를 바꿔 붙였다.고고학적으로 여러 대형고분을 어느 왕의 능묘로 특정짓기는 어렵지만 일본의 경우는 "일본고유의 왕릉"으로 위장하기 위해 갈팡질팡한 것이었다.
일본은 1926년 멀쩡한 이 원분을 전방후원분으로 변조하고는 "천왕릉 참고지"로 지정,봉쇄하고 출토 유물도 황실박물관에 봉인해놓았다.천황릉이었다면 굳이 극비리에 형태를 변조하고 부장품을 숨겨놓을 리 만무하다.고분연구 학자들이 발굴전의 고문서를 근거로 "이 원분이 한국식 원분이며 한국계 왕릉임이 분명하다"고 폭로,최근까지 논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