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원나라와 결사항쟁을 벌이고
끝내 평화협정을 맺어
원나라의 부마국(駙馬國)이 되었다.
원나라의 세력확장에 있어서
역사상 유일무이한 관계였다.
그런 부마국(駙馬國)은 무슨 뜻일까?
<역사> 사위의 나라라는 뜻으로, 중기 이후의 고려를 이르던 말. 고려가 원나라의 강요로 충렬왕 이후 원나라의 公主를 정비(正妃)로 맞아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만이 왕위에 오르게 된 데서 유래한다.
마흔이 다 된 나이로 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한 忠烈王은 이미 태자로 책봉된 직후 왕녀인 貞和宮主와 혼인하여 장성한 자녀까지 둔 유부남이었다. 비록 어린 나이지만 세조 쿠빌라이의 딸인 齊國大長公主는 忠烈王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켜 주어 원의 누구도 忠烈王을 가볍게 볼 수 없었다.
혼례를 치르고 두 달 뒤 부친인 元宗이 승하하자, 忠烈王은 왕위 승계를 위해 고려로 돌아왔다. 어린 나이에 忠烈王에게 시집 온 齊國大長公主는 남편과의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는 않았다.
충렬왕에게는 이미 부인이 있었고 그 부인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비록 금실이 좋지는 않았지만, 공주는 이듬해에 아들을 낳았고, 그가 충렬왕을 이은 忠宣王이다. 고려 왕실 최초의 혼혈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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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원나라의 황제 순제(順帝)의 황후인 기황후(奇皇后)가
고려인이였다.
원나라는 고려와의 관계에 있어서 감시와 간섭을 위한
혼인관계라고 하지만 왜 이토록 특별한 관계를 맺고자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