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에 대한 일본 군대로의 동원은 군인뿐만 아니라 준병력으로서 군속,군부,군요원 등의 형태로 동원이 이루어졌다. 조선인 군속은 중일전쟁 때부터 군 관할 공장과 건설사업에 이루어졌고, 1943년부터는 징용에 의하여 군수공장 및 각기 전선에 배치됐다. 이 가운데 포로감시원으로 동원된 조선인 중 일부는 일본의 패전과 함께 B?C급 전범으로 분류돼 연합군에 의해 처형되기도 했다.
◇동원 규모와 피해
2003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작성한 일제하 강제동원에 관한 실태조사연구에 따르면 군인 23만2명, 군속 38만4514명으로 모두 61만4516명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동원된 조선인은 조선내에는 물론 일본, 중국, 만주, 남양군도 등 일본이 벌여놓은 전선의 대부분 지역에 배치됐다. 1953년에 조사된 일본 육해군의 조선인 군인ㆍ군속의 피해상황을 살펴보면 사망 또는 행방불명자가 군인의 경우 43%,군속의 경우는 약20%로 나타나 있다. 이처럼 피해 비율이 높은 것은 조선인 군인 군속이 자위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 처해 있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표영수(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국민일보 - http://www.kmib.co.kr/html/kmview/2004/1024/0919588501111311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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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동원의 규모
현재 학계가 추산하고 있는 규모는 당시 조선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700여만 명이다.
노무자로 동원된 이들이 국내 410만∼480여만 명, 해외(일본, 사할린, 남양군도 등)
는 150여만 명이고, 위안부를 포함해 군관계로 동원된 사람은 최소 60여만 명일 것으로 추정한다.
- 노동력 강제동원 150여만 명(해외)
석탄광산 약 60만, 금속광산 약 15만, 군수공장 약 40만
토건관계 약 30만, 항만운수관계 약 5만 등
- 군관계 강제동원 603,385명
1938∼1943년 육군특별지원병 약 17,000명
1944년 징병(제1기) 약 210,000명
학도지원병 4,385명
해군특별지원병 및 해군 약 22,000명
군속(군관계 징용) 약 150,000명
여자근로정신대 및 군위안부 약 200,000명
- 희생자 수
노동자로 동원됐다가 희생된 수가 약 30만명.
이중 유해가 돌아온 경우는 수천 구에 불과하다.
약 5만 구 정도는 일본 각지의 납골당이나 사찰 등에 보관돼 있고,
나머지는 작업장 근처에 가매장된 채로 내버려져 찾을 수조차 없다.
군인, 군속으로 동원된 경우는 사망자가 최소 6만에서 최대 9만3천여 명,
부상자는 8만4천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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