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5월 조선인 3명 이상이 아편을 밀매하다가 발각되어 일본영사관에 인도되었다.
1923년-24년에 발생한 절도사건에서 범인이 권총을 사용하였던 점에서 조선인 범죄의 심각성을 알수 있다.1923년의 경우를 보면 3명의 조선인이 중국인거주지역,공공조계,프랑스조계,에서 수차례 절도행각을 벌여 상해 전지역에서 발생한 것을 알수 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편을 밀매하는 한인이 급증하였다.특히 중반이후엔느 급증하여
1933년을 제외하면 해마다 일본영사관에 구속한 조선인의 수가 100명을 넘었다.이것은 조선인 범죄의 심각성을 반증하고 있다.
1935년6월에 검거된 조선인 이태원은 아편제조설비와 자동차를 갖고 있었고,중국인 5명을 고용하고 있었고,단속을 하는 중국정부의 공무원을 구타하기도 하였다.
1936년도 신문보도에 의하면,조선인의 아편판매는 9건 이었다.
상해주재 일본영사관의 조사에 의하면,1936년 일본영사관이 수용한 조선인 아편 밀매꾼도 60명에 달하였다.상해 주재 일본 총영사관은 `상해체류 조선인 3000명이 직.간접적으로 아편개입에 개입하였다고 지적하였다
1937년 상반기에는 11건에 달하였다.
=출처:上海韓人社會史-孫稽志,중국 하남성 출생,조선의 고려대학교에서 박사과정 수료
**일제시대의 조선인들은 일본인으로 간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