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 제암리교회에서 일어난 학살사건.
1905년 8월 5일 건립된 제암리교회는 H. G. 아펜젤러의 전도를 받은 안종후가 개인집에서 예배를 드린 것이 시초였다. 그후 교도들의 증가로 1911년 교회가 마련되었다.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던 당시 제암리교회 청년들과 천도교 김상렬 등을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은 4월 5일 만세시위를 결의하고 발안주재소 앞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에 당황한 일본 경찰은 무력으로 진압했으며 마을 사람들은 밤마다 봉화를 올리고 만세시위를 했다.
만세시위가 있은지 10일 후인 4월 15일 일본의 육군 중위 아리타 다케오[有田俊夫]를 중심으로 한 일본헌병들은 15세 이상의 남자들을 제암리교회에 모이라 하고 4·5만세시위 당시 일본군이 주민들에게 행한 만행에 대해 사과할 것처럼 하더니 총격과 함께 교회당 문을 걸어잠그고 불을 질렀다.
밖으로 빠져나오려는 사람들에게는 무차별 사격을 가했으며 남편을 살려달라 애원하는 아낙 2명의 목을 베었고 제암리 마을 32가구에 불을 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사건으로 숨진 사람은 안종후를 비롯하여 남자 21명, 여자 2명이며 인근 마을 팔탄면 고주리에서 김성렬 등 남자 6명이 학살당했다.
사건 후에도 일본헌병의 심한 감시로 희생자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으며, 4월 17일 의료선교사 스코필드가 유골들을 향남면 도이리 공동묘지 입구에 안장했다.
언더우드는 참사현장을 돌아보고 보고서를 작성해 미국으로 보냈으며, 스코필드는 일본헌병 몰래 현장사진을 찍어 미국으로 보내 일제의 야만행위를 국제사회에 여론화시켜 비판하기도 했다.
1982년 9월 29일 문화공보부는 경기도 주관으로 합동장례식을 치르고 희생자들을 순국열사로 추서했으며, 이 지역을 사적 제299호로 지정했다.
세계 선교사에 의해, 일제의 만행이 비판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