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 5대국사<後梁, 後唐, 後晋, 後漢, 後周> 고려열전
-中國 舊五代史 外國列傳 高麗-
" 고려는 본래 부여의 別種으로, 그 나라는 평양성을 도읍으로 하였으니 곧 漢나라 낙랑군(樂浪郡)의 故地이다. 唐나라 貞觀 말년에 太宗이 정벌하였으나 함락하지 못했다가 高宗이 李勣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정벌토록 해 마침내 그 성을 함락시키고 그 땅을 나누어 군현으로 만들었다.
당의 말년에 미쳐서 중원이 多事해지자 그 나라가 마침내 스스로 군장을
세웠는데 前王의 性은 高氏였고, 후왕의 성은 王氏이다. 唐 同光. 天成
연간에 여러번 사절을 파견하여 조공하였으며, 後周 현덕 6년에는 高麗가
사절을 파견하여 자수정, 백수정 2000顆를 바쳤다."
2. 중국 宋史 高麗列傳
" 고려는 본래 고구려라 하였다. 禹가 9주로 나누었을때에는 冀州 땅에
속하였고, 周때에는 箕子의 나라가 되었으며, 漢의 현도군이었다. 요동에
있었는데, 대게 부여의 別種으로 평양성을 國邑으로 삼았다. 唐 太宗이
친히 정벌하였으나 함락하지 못했다가, 高宗이 李勣에게 명하여 정벌토록
해 마침내 그 성을 함락시키고 그 땅을 나누어 군현으로 삼았다.
당의 말년에 미쳐서 중원이 多事해지자 그 나라가 마침내 스스로 군장을
세웠다. 後唐 同光. 天成 연간에 그 임금 高氏가 여러 번 職貢하였으며,
長興 연간에는 權知國事 王建이 高氏의 왕위를 잇고 사절을 보내 조공하자
建을 현도주도독. 충대의군사로 삼고 고려국왕으로 봉하였다."
3. 중국 宋史 高麗圖經
" 고려의 선조는 대개 周 무왕이 朝鮮에 봉한 箕子 緖餘로 唐 太宗때에
그 동부대인의 대인인 淵蓋蘇文이 잔학하고 무도하므로 帝가 친히 정벌하여 위엄이 遼海에 떨쳤으며, 高宗이 또 李勣에게 명하여 討平토록 해
그 왕 高藏<고구려 31대 보장왕>을 사로잡고 땅을 갈라서 군현으로 삼고는 안동도호부를 평양성에 두고 군사들로 鎭守케 하였다. 그후 後唐 同光 元年에 사절을 보내 조회하러 왔는데 국왕의 성씨는 史官이 잃어버려 기재하지 못했다. 長興 2년에 權知國事 王建이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치고 마침내 爵位를 받아 高氏를 이어 왕위를 계승하였다."
4. 중국 元史 外國列傳 - 高麗
" 고려는 본래 箕子가 봉해졌던 땅으로, 또 扶餘의 별종이 일찍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 國都는 평양성으로 곧 한나라 낙랑군이었다. 물이 말갈의 백산에서 출발하는 것을 압록강이라 불렀는데 평양이 그 동남에 위치하여 그를 믿고 요해지로 삼았다. 후에 5대국 시대에 이르러 다시 高麗를 일으켜 수도를 松岳으로 옮긴 사람의 성씨는 王氏요 이름은 建이다. 建으로부터 燾에 이르기까지 무릇 27왕인데, 400여년이 지나도록 한번도 성씨가 바뀌지 않았다."
" 元 世祖(쿠빌라이)가 말하기를 고려는 만리 밖의 나라로서 唐 太宗 이래로 親征하였으나 능히 굴복시키지 못했는데, 지금 그 세자가 스스로 나에게 돌아왔으니 이는 하늘의 뜻이다."
5. 중국 明史 朝鮮列傳
" 朝鮮은 箕子에게 봉해 준 나라이다. 漢末에 扶餘 사람 高氏가 그 땅을
차지하고 국호를 高麗라 고쳤는데 또 高句麗라고도 하였다. 平壤에
자리잡으니 곧 樂浪이다. 그 뒤 당나라에 격파되어 신라에 병합되었다.
後唐때에 王建이 高氏를 대신하여 신라, 백제 땅을 겸병하고 松岳으로
옮겨 거하면서 東京이라 불렀고 平壤은 西京이라 하였다. 명나라가 흥기할 때 高麗에서 왕 노릇한 사람은 王錢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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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서의 기록은 당시의 상황을 가장 자세히 설명해주는 기록이군요.
하지만, 지금 당신의 생각은 단순한 현대인의 추측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 ^;
과거 사서의 기록 vs 현대인의 억지
승리자는 누구일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