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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을 증언하는 긴조 시게아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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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비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일본에 의해 강요된 "강제 집단 죽음"이다. 이제 80대의 노인이 된 당시 생존자의 증언은 당시의 만행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강제 집단 죽음"이 발생한 1945년 3월말 당시 고교 2년생이었던 긴조 시게아키 씨의 증언을 들어보자.
""천황 폐하 만세"를 삼창한 후에 일본군들과 동사무소 직원들은 주민들에게 수류탄을 나눠줬습니다. 그것은 자결 명령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곳곳에서 수류탄의 폭음과 비명, 통곡 소리가 뒤섞여 그야말로 아비규환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철저하게 황민화 교육을 받았던 오키나와 주민들은 "군관민 공생공사(軍官民 共生共死)", 즉 "군인도 공무원도 주민도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는 정신을 강요받았다. 또한 일제는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미군에게 잡히면 "남자는 가랑이 찢겨 죽고, 여자는 능욕을 당한 후에 죽는다"며 미국을 악마화했다. 비참한 꼴을 당하느니 천황을 위해 영광스럽게 자결하라는 것이었다. 긴조 시게아키 씨의 증언을 계속 들어보자.
"불발탄이 많았던 탓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돌과 죽창을 들고 자신의 가족과 친지들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형과 함께 어머니를 돌로 내리쳤고, 여동생과 남동생도 때려 죽였습니다. 바로 그 때 한 청년이 외쳤습니다. "이대로 죽느니 미군을 한 놈이라도 죽이고 죽자!" 그런데 저를 포함해 5명의 청년들이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미군이 아니라 일본군이었습니다. 우리는 살았다는 안도감이 아니라 배신감에 치를 떨었습니다. "군관민 공생공사"라고 했는데, 일본군은 멀쩡히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