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が主導した高宗皇帝毒殺事件の真実はうそトミ日記の証言に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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掲示日: 2012. 11. 20.
ドックヒェオングズも毒殺脅威に苦しんだ
ドックヒェオングズは韓日併呑の前にもう人質でザブヒョが日本チォンワングが李本宮(梨本宮) 修正王(守正王)の娘である我がまま(方子)と結婚して東京にあったお兄さん栄親王引き継いだ(李垠)の家に泊まりながらがクシュインに通ったことと知られている.
朝鮮の最後の皇太子である栄親王は高宗の 3南へ, 高宗皇帝が 1907年 ¥"ヘイグ密使事件¥"を言葉尻で総督府によって強制に退位された後日本に人質に行ってドックヒェオングズとまったく同じくがクシュインのズングドンググァでしばらく修学したりした.
幼いドックヒェオングズのがクシュである同級生に採録した内容(正確には同級生の娘がお母さんに聞いた内容をまた郷土史学者に聞かせたこと) の中目立つ書き入れ時は ¥"ドックヒェオングズががクシュである時代絶えず毒殺恐怖に苦しんだし, ドックヒェオングズがお父さんである高宗皇帝と甥である栄親王の 1男(李晋)が毒殺されたと言った¥"と証言した部分.
ドックヒェオングズが普段がクシュインに通いながらバキュームボトル(水差し)をかばんにいくつずつ入れて通ったと言います. それである日お母さんが問ったんです.
¥"ドックヒェオングズサング, 学校にも水が多いのに敢えてバキュームボトルを入れて置きますか?¥" するとドックヒェオングズは ¥"毒殺が怖くてこのようにする¥"と言ったと言います.
同級生の娘はまたこんなに証言した.
(栄親王の) 長男であるチン(晋)が生後 8ヶ月ぶりに病んでたまらなかったと言うがドックヒェオングズは確かに毒殺結構ですと言ったというのです.
ドックヒェオングズが日本へ来る時からお父さんと甥など周辺人々の死を伝えて聞いて恐ろしさを持っていたと言います.
ドックヒェオングズが毒殺恐怖に苦しんだことは高宗皇帝と皇室一円の死が毒殺だと信じたからだというの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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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주도한 고종황제 독살사건의 진실은 구라토미 일기의 증언에 있다
게시일: 2012. 11. 20.
"덕혜옹주도 독살 위협에 시달렸다"
덕혜옹주는 한일병탄 전에 이미 볼모로 잡혀가 일본 천왕가 이본궁(梨本宮) 수정왕(守正王)의 딸인 방자(方子)와 결혼해 도쿄에 있던 오빠 영친왕 이은(李垠)의 집에 머무르면서 가쿠슈인에 다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은 고종의 3남으로, 고종 황제가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을 빌미로 총독부에 의해 강제로 퇴위당한 뒤 일본에 볼모로 가 덕혜옹주와 똑같이 가쿠슈인의 증등과에서 잠시 수학하기도 했다.
어린 덕혜옹주의 가쿠슈인 동급생에게 채록한 내용(정확히는 동급생의 딸이 어머니에게 들은 내용을 다시 향토사학자에게 들려준 것) 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은 "덕혜옹주가 가쿠슈인 시절 끊임없이 독살 공포에 시달렸고, 덕혜옹주가 아버지인 고종 황제와 조카인 영친왕의 1남(李晋)이 독살됐다고 말했다"고 증언한 부분.
덕혜옹주께서 평소 가쿠슈인에 다니면서 마호병(물병)을 가방에 몇 개씩 넣어 다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 어머니가 물었답니다.
"덕혜옹주상, 학교에도 물이 많은데 굳이 마호병을 넣고 다니십니까?" 그러자 덕혜옹주는 "독살이 겁나서 이렇게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동급생의 딸은 또 이렇게 증언했다.
(영친왕의) 장남인 진(晋)이 생후 8개월 만에 병들어 죽었다고 하지만 덕혜옹주는 "확실히 독살됐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덕혜옹주가 일본에 올 때부터 아버지와 조카 등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전해 듣고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덕혜옹주가 독살 공포에 시달린 것은 고종 황제와 황실 일원의 죽음이 독살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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