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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槿恵と安倍が会ってもなにも解決しないという絶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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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槿恵と安倍が会ってもなにも解決しないという絶望


登録 : 2014.09.27 07:24 修正 : 2014.09.27 07:55   
ハンギョレ
http://japan.hani.co.kr/arti/politics/18368.html



韓日慰安婦攻防の 3年


 1951年10月に始まった韓日国交正常化交渉は、14年が過ぎた1965年6月に妥結した。 経済開発が切実に必要だった朴正煕政権は、5億ドルの経済協力資金を受け取る代価として植民地支配に対する責任追及という両国間の根本問題を取り繕ってしまった。 1991年にキム・ハクスン ハルモニ(おばあさん)の歴史的証言で慰安婦問題が提起され、それからすでに23年が過ぎた。 韓日間の最近3年間の綱引きの歴史を振り返ってみると、慰安婦問題の解決は熾烈だった韓日国交正常化会談の妥結よりさらに難しいものと感じられる。


整理するとこうなる


 今月19日、韓国大統領府が「秋の国際会議を機に会えることを楽しみにしている」という内容の安倍晋三首相の親書内容を公開したというニュースを伝え聞き、安堵感と失望感が入り乱れた複雑な心境に陥った。 誰もが認めるように、現在の両国関係は1965年の国交正常化以後最悪の状況に置かれている。その原因は他でもない“慰安婦問題”等の歴史問題を巡る両国間の対立であり、このような葛藤局面を終息させる重要な分岐点は朴槿恵大統領と安倍首相の首脳会談ということには異論の余地がない。 大統領府が11月に中国北京で開かれるアジア・太平洋経済協力体(APEC)首脳会議などで「朴大統領に会いたい」という安倍首相の親書内容を公開し、朴大統領が24日(現地時間)に米国ニューヨークで開かれた国連総会基調演説で「戦時の女性に対する性暴力は人権と人道主義に反する行為」として、日本に対する直接的な言及を慎んだため、この間一度も実現できなかった両国間の首脳会談が実現する可能性が大幅に高まった。

 最近3年余りの間続いた慰安婦問題を巡る韓日間の対立は、1965年の韓日国交正常化会談以後に両国が国力を総動員して繰り広げた全方向的な外交折衝戦だった。世界3位の経済大国と世界10位圏の新興国とが、両国の自尊心をかけて全面対決を行ったので、その余波は相当なものだった。 その結果、韓日関係が大きく迷走し、米国の東アジア戦略、中国の対韓・対日戦略、日本の対北朝鮮戦略に深い影響を及ぼした。 日本国内では“反韓集会”(ヘイト スピーチなど)と呼ばれる途方もない嫌韓強風が吹き荒れた。



李明博はなぜ独島に行ったのか


 今度の葛藤の意味は、両国が慰安婦問題で譲歩できないお互いの“頑丈な岩盤”のような下限線を確認したという点だ。 そのような意味で今回の事態は来年に修交50周年を迎える未来の韓日関係を規定せざるを得ないので、そのためにこの間の進行経過を徹底的に復碁しなければならない。

 今回の事態の始まりは「韓国政府が慰安婦問題解決のために外交的な努力をせずにいることは違憲」とした2011年8月30日の憲法裁判所の決定だった。 この憲法裁判所の決定により、韓国政府は慰安婦問題解決のために日本との積極的な外交的交渉を始め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重大な義務を抱え込むことになった。 これを通じて1965年の韓日協定という封印で堅く閉ざされていた韓日関係の本質という“パンドラの箱”が開かれることになる。


 それ以後、どんなことが起きたのだろうか。 当時、日本の首相だった野田佳彦の証言を聞いてみよう。 彼は20日に発売された日本の『週刊東洋経済』とのインタビューで、在任中に起きた韓日間の攻防について詳しく証言した。 2011年9月に就任した野田首相は、就任後初の外国訪問地に韓国を選ぶ。 李明博大統領は韓国を訪れた彼に「歴代韓国政権は任期末になれば(反日という)日本カードを取り出してきたが、自分はそうしないだろう」と話したという。 この時までは李大統領は憲法裁判所決定の意味についてきちんとした報告を受けていなかったものと見られる。


 2か月後の12月18日、日本の京都で開かれた首脳会談で両国首脳はついに正面衝突する。 李大統領が予定された首脳会談の時間を半分以上使って「慰安婦問題は日本政府が認識を変えれば直ちに解決できる問題だ。 大きな次元の政治的決断を期待する」と問題の解決を強力に促したためだ。

 当時、日本の執権勢力は自民党に比べて穏健な歴史認識を持っていた民主党だった。 野田前総理は慰安婦問題解決のために「水面下で慰安婦問題の解決のために知恵を絞り始めた。 打開案を韓国に提案したことは事実」と話した。 当時、韓日攻防を詳しく報道した『北海道新聞』2012年5月12日付記事を見ると、当時の斎藤勁官房副長官が2012年4月に韓国を訪問し、△野田首相が李明博大統領に謝罪し△武藤正敏駐韓大使が慰安婦ハルモニを訪問して謝罪し△政府予算を投じて補償する、という案を提示したと書いている。

しかし、この案を受け取ったチョン・ヨンウ大統領府外交安保首席秘書官は「慰安婦支援団体の意向を聞くべき」として難色を示したと伝えられる。日本政府が慰安婦問題に対する“法的責任”を認めていないこの案では、韓国の世論を説得できないと判断したものと見られる。 そして3か月後の8月10日、李大統領の“うっぷん晴らし”的な独島訪問に至る。

 野田前総理はこれに対して「私たちの案を伝達したが(韓国では)反応がなかった。 大統領府に私たちの提案が伝えられたとすれば、李大統領が突然に独島に上陸することはなかっただろう」と話した。 それほど当時の日本政府にとって李大統領の独島訪問は突然のこととして受け入れられたという意味だ。 いきりたった日本は、以後世界の舞台で独島と関連した自国領土主張を強化し、日本各地で嫌韓デモが本格化する。 そのような意味で当時の李大統領の独島訪問を阻めなかった大統領府の外交・安保ラインは冷静な歴史の評価を受けなければならない。



慰安婦を巡る3年、両国関係は最悪
譲歩できない下限線を確認しただけ
今回の事態は来年修交50周年を迎える
未来の韓日関係を規定するので
この間の進行経過を徹底的に復碁しなければならない
日本との二者的枠組みだけで
問題を解こうとすれば勝算はない
人権という普遍的価値に根拠を置き
世界の世論と日本を説得していく
長期的で遠大なビジョンが必要



朴槿恵は“洛東江戦線”死守から開始


 しかし両国間の水面下での折衝がついえたわけではなかった。当時、水面下での交渉に関与した和田春樹東京大名誉教授は、日本の月刊誌『世界』9月号で「李大統領の独島訪問で韓日関係が険悪化の一途を辿る切迫した状況で、両国が最後の努力をした」と書いている。 すなわち、斉藤官房副長官が10月28日に東京でイ・ドングァン大統領特使と会い、△韓日首脳会談の合意内容を首脳会談共同コミュニケとして発表し、△文言に“道徳的責任”という表現を除いて“国家や政府の責任”を認める内容を含ませ、△日本の大使が被害者を訪問して謝罪文・謝罪金を渡し、△第3回韓日歴史共同研究委員会で慰安婦に対する共同研究を行うという内容で合意したということだ。

和田名誉教授はこれについて「李大統領はこの案を受け入れたが、野田首相が最後の瞬間に決断を下せなかった」と証言している。 日本が“法的責任”を認めなかった最初の案には韓国が、これを認めた二番目の案には日本が反対したわけだ。これを通じて、日本の民主党政権もついに受け入れられなかった慰安婦問題に対する日本の下限線は、日本政府の“法的責任認定”であったことを確認できる。 そして2012年12月、民主党政権が崩れ安倍政権が登場する。

 安倍政権の最も大きな特徴は、日本が過去に犯した侵略と植民支配の歴史を否定する歴史修正主義を信奉している点だ。 実際に安倍首相は就任前から、慰安婦動員過程の強制性を認めた河野談話(1993年)と日本が侵略と植民支配によって周辺国に大きな被害を与えたことを認めた村山談話(1995年)を修正する意志を明らかにしていたし、昨年12月には靖国神社を参拝して米国から「失望した」という屈辱的な反発を買うことになる。 これに対抗して、2013年2月に登場した朴槿恵政権は梗塞した韓日関係の正常化の条件として、河野談話と村山談話の継承と慰安婦問題解決のための日本の誠意ある措置を先に要求した。 李明博-野田政権が慰安婦問題をどのように解決するかを巡り“38度線付近”で対立したとすれば、朴槿恵政権は河野談話などを修正するという安倍政権に対抗して就任当初から“洛東江(ナクトンガン)戦線”死守に追い込まれていたわけだ。


 慰安婦問題に対する安倍政権の本格的な攻勢が始まったのは昨年10月だった。 当時『産経新聞』は河野談話の作成過程で日本政府が韓国人慰安婦ハルモニ16人を相手に記録した証言録を入手し、証言に弱点が多いという点を挙げて「歴史的な資料としては使い難い」と主張したためだ。 以後、菅義偉官房長官は2月28日に衆議院予算委員会で「河野談話に対する検証調査を始める」と公式宣言する。

 その時点で韓日関係の悪化を憂慮した米国が介入する。 バラク・オバマ米国大統領は3月24日、オランダのハーグで開かれた核安保首脳会議で韓米日首脳会談を持つという強い意志を明らかにし、事実上日本に対する圧迫に乗り出した。 結局、安倍首相は3月4日に参議院予算委員会で「安倍内閣でこれ(河野談話)を修正することは考えない」と宣言する。 河野談話を修正すれば、慰安婦問題を女性に対する甚大な人権侵害と認識している米国世論を決定的に悪化させかねないという戦略的判断をしたものと見られる。 実際、米国下院は2007年7月に全員一致で「日本政府が若い女性たちを強制的に性的奴隷にした事実を認め、歴史的な責任を負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決議案を採択した経緯がある。 慰安婦問題と関連して、日本が越えてはならない韓国側の下限線として“河野談話”が確認された瞬間だ。 しかし、これは韓国自らの力ではなく米国など国際社会との共助を通じて勝ち取ったものだ。

 以後、日本では河野談話を大きな枠組みで維持させるための事後措置が続く。安倍政権は6月20日、当初予告した「慰安婦問題を巡る日韓間のやりとりの経緯」と題した河野談話検証報告書を発表する。 この報告書の性格について、韓国では「河野談話を否定しようとするもの」という評価が支配的だったが、日本では逆に「河野談話をきわどく生かしたもの」という見解が主流となっている。 報告書がこれまで日本右翼が河野談話を攻撃するために掲げた種々の論点を逐一除去しているためだ。

 代わりに報告書は、内容の三分の一程度を河野談話が出た後、日本政府が提示した解決策であるアジア女性基金に対する説明に割いている。その過程で韓国政府が当初は慰安婦問題に対する日本政府の“道義的責任”のみを認めた女性基金に対して「歓迎する」立場を明らかにしたと強調している。 慰安婦問題解決のための誠意ある先行措置を要求している韓国政府の主張を無力化するための緻密な構成と解釈される。 以後、菅官房長官は「河野談話を修正しなさい」という自民党内一部の圧力に対して「河野談話を修正する意思はない。 慰安婦問題に対して追加的な措置を出す意思もない」という立場を繰り返し明らかにしている。 慰安婦問題が3年間の長いトンネルを越えて、再び原点に戻ったのだ。 別の見方をすれば、慰安婦問題は李大統領が豪語したように「日本政府が認識を異にすれば直ちに解決できる問題」ではなく、解放後69年が過ぎても真の和解を成し遂げられずにいる韓日関係の実体を象徴的に見せる非常に深淵な問題かもしれない。



11月の首脳会談で「留保」結論の可能性


 今や残っているのは朴大統領の決断だ。 朴大統領が11月に安倍首相に会うなら、慰安婦問題を事実上“留保”する方向で結論を残すように見える。 その場合、朴大統領は「安倍首相に会って慰安婦問題の解決を直接促す」という論理を駆使するだろうが、安倍政権が韓国が納得できるような措置を出す可能性は全くない。 そしてほとんどが高齢な慰安婦被害者の状況を考えてみる時、このような“留保”は事実上慰安婦問題解決の放棄を意味するかも知れない。 反対に朴大統領が安倍総理に会わないなら、韓日関係の冷却期間は更に続かざるをえない。 その間に日本との関係改善を要求する米国の圧力が続くだろうし、両国関係の悪化を通じて甘受しなければならない国益の損失も少なくないだろう。

 個人的な感想を言えば、韓国の保守政権が持っている根源的な親日性を考慮してみる時、結局、朴大統領は安倍首相に会う方向で結論を出す可能性が高く見える。 最近3年間の教訓は、韓国が日本との関係で二者の枠組みだけで問題を解こうとすれば、勝算は殆どないという点だ。 慰安婦問題の根本的な解決のためには“人権”という人類普遍的な価値に基づいて世界の世論と日本を説得していく、長く至難な過程を踏まざるをえない。朴大統領にそのような長期的で遠大なビジョンを期待できるだろうか。

東京/キル・ユンヒョン特派員 (お問い合わせ japan@hani.co.kr )

韓国語原文入力:2014.09.26 20:42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657101.html 訳J.S(5411字)





憲法裁判所の決定が国際法無視の根本的な誤りなの。







<<別の見方をすれば、慰安婦問題は李大統領が豪語したように「日本政府が認識を異にすれば直ちに解決できる問題」ではなく、解放後69年が過ぎても真の和解を成し遂げられずにいる韓日関係の実体を象徴的に見せる非常に深淵な問題かもしれない。



根本原因は日韓条約で完全に解決したことをまだ理解できない土人だと自覚しな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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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아베가 만나도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는다고 하는 절망





박근혜와 아베가 만나도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는다고 하는 절망


등록 : 2014.09.27 07:24 수정 : 2014.09.27 07:55   
한겨레
http://japan.hani.co.kr/arti/politics/18368.html



한일 위안부 공방의 3년


 1951년 10월에 시작한 한일 국교 정상화 교섭은, 14년이 지난 1965년 6월에 타결했다. 경제 개발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박정희 정권은, 5억 달러의 경제협력 자금을 받는 대가로 해서 식민지 지배에 대할 책임 추궁이라고 하는 양국간의 근본 문제를 손질해 버렸다. 1991년에 김・하크슨하르모니(할머니)의 역사적 증언으로 위안부 문제가 제기되어 그리고 벌써 23년이 지났다. 한일간의 최근 3년간의 줄다리기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치열했던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의 타결 보다 더 어려운 것과 느껴진다.


정리하는 곳 신음한다


 이번 달 19일, 한국 대통령부가「가을의 국제 회의를 기를 만날 수 있는 것을 기대하고 있는」라고 하는 내용의 아베 신조 수상의 친서 내용을 공개했다고 하는 뉴스를 전해 들어, 안도감과 실망감이 혼잡한 복잡한 심경에 빠졌다.누구나가 인정하도록(듯이), 현재의 양국 관계는 1965년의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황에 놓여져 있다.그 원인은 어디에도 없는“위안부 문제”등의 역사 문제를 둘러싼 양국간의 대립이며, 이러한 갈등 국면을 종식시키는 중요한 분기점은 박근 메구미 대통령과 아베 수상의 정상회담이라고 하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대통령부가 11월에 중국 북경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등에서「박대통령을 만나고 싶은」라고 하는 아베 수상의 친서 내용을 공개해, 박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에 미국 뉴욕에서 열린 국제연합총회 기조 연설로「전시의 여성에 대한 성 폭력은 인권과 인도주의에 반하는 행위」로서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조심했기 때문에, 이전 한번도 실현될 수 없었던 양국간의 정상회담이 실현될 가능성이 큰폭으로 높아졌다.

 최근 3년 남짓의 사이 계속 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간의 대립은, 1965년의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 이후에 양국이 국력을 총동원해 펼친 전방향적인 외교 절충전이었다.세계 3위의 경제대국과 세계 10위권의 신흥국이, 양국의 자존심을 걸쳐 전면 대결을 실시했으므로, 그 여파는 상당한 것이었다.그 결과, 한일 관계가 크게 미주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중국의 대한・대일 전략, 일본의 대북 전략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일본내에서는“반한집회 ”(헤이트 스피치등)로 불리는 터무니없는 혐한강풍이 불어 거칠어졌다.



이명박은 왜 독도에 갔는가


 이번 갈등의 의미는, 양국이 위안부 문제로 양보할 수 없는 서로의“튼튼한 암반”와 같은 하한선을 확인했다고 하는 점이다. 그러한 의미로 이번 사태는 내년에 수교 50주년을 맞이하는 미래의 한일 관계를 규정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때문에(위해) 이전의 진행 경과를 철저하게 복기 해야 한다.

 이번 사태의 시작은「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외교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위헌」로 한 2011년 8월 30일의 헌법재판소의 결정이었다. 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해,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일본과의 적극적인 외교적 교섭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중대한 의무를 안게 되었다.이것을 통해서 1965년의 한일 협정이라고 하는 봉인으로 딱딱하게 닫히고 있던 한일 관계의 본질이라고 하는“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게 된다.


 그것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당시 , 일본의 수상이었던 노다 요시히코의 증언을 (들)물어 보자. 그는 20일에 발매된 일본의『주간 동양 경제』와의 인터뷰로, 재임중에 일어난 한일간의 공방에 대해 자세하게 증언했다. 2011년 9월에 취임한 노다 수상은, 취임 후 첫 외국 방문지에 한국을 선택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한 그에게「역대 한국 정권은 임기말이 되면(반일이라고 한다) 일본 카드를 꺼내 왔지만,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때까지는 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결정의 의미에 대해 제대로 한 보고를 받지 않았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개월 후의 12월 18일, 일본의 쿄토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양국 수뇌는 마침내 정면충돌한다. 이 대통령이 예정된 정상회담의 시간을 반이상 사용해「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가 인식을 바꾸면 즉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큰 차원의 정치적 결단을 기대하는」와 문제의 해결을 강력하게 재촉했기 때문이다.

 당시 , 일본의 집권 세력은 자민당에 비해 온건한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던 민주당이었다. 노다 전총리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수면 아래에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지혜를 짜기 시작했다. 타개안을 한국에 제안한 것은 사실」라고 이야기했다. 당시 , 한일 공방을 자세하게 보도한『홋카이도 신문』2012년 5월 12 일자 기사를 보면, 당시의 사이토 츠요시 관방 부장관이 2012년 4월에 한국을 방문해, △노다 수상이 이명박 대통령에 사죄해△무토 마사토시주한대사가 위안부 할머니를 방문해 사죄해△정부 예산을 투자해 보상한다, 라고 하는 안을 제시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이 안을 받아들인 정・욘우 대통령부 외교안보 수석 비서관은「위안부 지원 단체의 의향을 (들)물어야 할」로서 난색을 나타냈다고 전해진다.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법적 책임”를 인정하지 않은 이 안에서는, 한국의 여론을 설득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그리고 3개월 후의 8월 10일, 이 대통령의“분풀이”적인 독도 방문에 이른다.

 노다 전총리는 이것에 대해서「우리의 안을 전달했지만(한국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대통령부에 우리의 제안이 전해졌다고 하면, 이 대통령이 돌연에 독도에 상륙할 것은 없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만큼 당시의 일본 정부에 있어서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갑작스런 일로서 받아 들여졌다고 하는 의미다. 격분한 일본은, 이후 세계의 무대에서 독도와 관련한 자국 영토 주장을 강화해, 일본 각지에서 혐한데모가 본격화한다.그러한 의미로 당시의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막을 수 없었던 대통령부의 외교・안보 라인은 냉정한 역사의 평가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위안부를 둘러싼 3년, 양국 관계는 최악
양보할 수 없는 하한선을 확인했을 뿐
이번 사태는 내년 수교 50주년을 맞이한다
미래의 한일 관계를 규정하므로
이전의 진행 경과를 철저하게 복기 해야 한다
일본과의 양자적 골조만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면 승산은 없다
인권이라고 하는 보편적 가치에 근거를 두어
세계의 여론과 일본을 설득해 나간다
장기적으로 원대한 비전이 필요



박근혜는“낙동강 전선”사수로부터 개시


 그러나 양국간의 수면 아래에서의 절충이 무심코 천민 것은 아니었다.당시 , 수면 아래에서의 교섭에 관여한 와다 하루키 도쿄대명예 교수는, 일본의 월간지『세계』9월호로「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한일 관계가 험악화가 일로를 걷는 임박한 상황으로, 양국이 마지막 노력을 한」라고 쓰고 있다.즉, 사이토 관방 부장관이 10월 28일에 도쿄에서 이・종 대통령 특사와 만나, △한일 정상회담의 합의 내용을 정상회담 공동 공문서로서 발표해, △문언에“도덕적 책임”라고 하는 표현을 제외하고“국가나 정부의 책임”를 인정하는 내용을 포함하게 해△일본의 대사가 피해자를 방문해 사죄문・사죄금을 건네주어, △ 제3회 한일 역사 공동 연구 위원회에서 위안부에 대한 공동 연구를 실시한다고 하는 내용에 합의했다고 하는 것이다.

와다 명예 교수는 이것에 대해「이 대통령은 이 안을 받아 들였지만, 노다 수상이 마지막 순간에 결단을 내릴 수 없었다」라고 증언하고 있다. 일본이“법적 책임”를 인정하지 않았던 최초의 안에는 한국이, 이것을 인정한 두번째의 안에는 일본이 반대한 것이다.이것을 통해서, 일본의 민주당 정권도 끝내 받아 들여지지 않았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하한선은, 일본 정부의“법적 책임 인정”에서 만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그리고 2012년 12월, 민주당 정권이 붕괴 아베 정권이 등장한다.

 아베 정권의 가장 큰 특징은, 일본이 과거에 범한 침략과 식민 지배의 역사를 부정하는 역사 수정주의를 신봉 하고 있는 점이다. 실제로 아베 수상은 취임 전부터, 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을 인정한 코노 담화(1993년)와 일본이 침략과 식민 지배에 의해서 주변국에 큰 피해를 준 것을 인정한 무라야마 담화(1995년)를 수정하는 의지를 분명히 해, 작년 12월에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미국으로부터「실망한」라고 하는 굴욕적인 반발을 사게 된다. 이것에 대항하고, 2013년 2월에 등장한 박근혜정권은 경색 한 한일 관계의 정상화의 조건으로서 코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의 계승과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의 성의있는 조치를 먼저 요구했다. 이명박-노다 정권이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를 순회“38 도선 부근”로 대립했다고 하면, 박근혜정권은 코노 담화등을 수정한다고 하는 아베 정권에 대항해 취임 당초부터“낙동강(나크톤간) 전선”사수에 몰리고 있던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베 정권의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된 것은 작년 10월이었다.당시 『산케이신문』는 코노 담화의 작성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한국인 위안부 할머니 16명을 상대에게 기록한 증언록을 입수해, 증언에 약점이 많다고 하는 점을 들어「역사적인 자료로서는 사용하기 어려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후,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월 28일에 중의원 예산 위원회에서「코노 담화에 대한 검증 조사를 시작하는」와 공식 선언한다.

 그 시점에서 한일 관계의 악화를 우려한 미국이 개입한다. 바라크・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3월 24일, 네델란드의 헤이그에서 열린 핵안보 정상회의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갖는다고 하는 강한 의지를 분명히 해, 사실상 일본에 대한 압박에 나섰다. 결국, 아베 수상은 3월 4일에 참의원 예산 위원회에서「아베 내각으로 이것(코노 담화)을 수정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라고 선언한다. 코노 담화를 수정하면, 위안부 문제를 여성에 대한 심대한 인권침해라고 인식하고 있는 미국 여론을 결정적으로 악화 시킬지 모른다고 하는 전략적 판단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미국 하원은 2007년 7월에 전원 일치로「일본 정부가 젊은 여성들을 강제적으로 성적 노예로 한 사실을 인정해 역사적인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되는」라고 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경위가 있다.위안부 문제와 관련하고, 일본이 넘어서는 안 되는 한국측의 하한선으로서“코노 담화”가 확인된 순간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스스로의 힘은 아니고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해서 차지한 것이다.

 이후, 일본에서는 코노 담화를 큰 골조로 유지시키기 위한 사후 조치가 계속 된다.아베 정권은 6월 20일, 당초 예고한「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한간의 교환의 경위」라고 제목을 붙인 코노 담화 검증 보고서를 발표한다. 이 보고서의 성격에 대해서, 한국에서는「코노 담화를 부정하려고 하는 것」라고 하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일본에서는 반대로「코노 담화를 아슬아슬하게 살린 것」라고 하는 견해가 주류가 되고 있다.보고서가 지금까지 일본 우익이 코노 담화를 공격하기 위해서 내건 여러 가지의 논점을 일일이 상세하게 제거하고 있기 (위해)때문이다.

 대신에 보고서는, 내용의 3 분의 1 정도를 코노 담화가 나온 후, 일본 정부가 제시한 해결책인 아시아 여성 기금에 대한 설명으로 할애하고 있다.그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당초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도의적 책임”만을 인정한 여성 기금에 대해서「환영하는」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성의있는 선행 조치를 요구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주장을 무력화하기 위한 치밀한 구성이라고 해석된다. 이후, 칸 관방장관은「코노 담화를 수정해 주세요」라고 하는 자민당내 일부의 압력에 대해서「코노 담화를 수정할 의사는 없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추가적인 조치를 낼 의사도 없는」라고 하는 입장을 반복해 분명히 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가 3년간의 긴 터널을 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던 것이다.다른 견해를 하면, 위안부 문제는 이 대통령이 호언 한 것처럼「일본 정부가 인식을 달리하면 즉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해방 후 69년이 지나도 진정한 화해를 완수할 수 있는 하지 않고서 있는 한일 관계의 실체를 상징적으로 보이는 매우 심연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11월의 정상회담에서「유보」결론의 가능성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박대통령의 결단이다. 박대통령이 11월에 아베 수상을 만난다면,위안부 문제를 사실상“유보 ”할 방향으로 결론을 남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 경우, 박대통령은「아베 수상을 만나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직접 재촉하는」라고 하는 논리를 구사하겠지만,아베 정권이 한국을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낼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리고 대부분이 고령인 위안부 피해자의 상황을 생각해 볼 때,이러한“유보”는 사실상 위안부 문제 해결의 방폐를 의미하는지도 모르다. 반대로 박대통령이 아베 총리를 만나지 않으면, 한일 관계의 냉각기간은 더욱 계속 되지 않을 수 없다.그 사이에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요구하는 미국의 압력이 계속 될 것이고, 양국 관계의 악화를 통해서 감수 해야 하는 국익의 손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면, 한국의 보수 정권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친일성을 고려해 볼 때, 결국, 박대통령은 아베 수상을 만날 방향으로 결론을 낼 가능성이 높게 보인다. 최근 3년간의 교훈은, 한국이 일본과의 관계로 양자의 골조만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면, 승산은 대부분 없다고 하는 점이다. 위안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인권”라고 하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에 근거해 세계의 여론과 일본을 설득해 나가는, 길고 지난한 과정을 밟지 않을 수 없다.박대통령에 그러한 장기적으로 원대한 비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도쿄/킬・윤홀 특파원 (문의 japan@hani.co.kr )

한국어 원문 입력:2014.09.26 20:42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657101.html (뜻)이유 J.S(5411자)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국제법 무시의 근본적인 잘못이야.







<<다른 견해를 하면, 위안부 문제는 이 대통령이 호언 한 것처럼「일본 정부가 인식을 달리하면 즉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해방 후 69년이 지나도 진정한 화해를 완수할 수 있는 하지 않고서 있는 한일 관계의 실체를 상징적으로 보이는 매우 심연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근본 원인은 한일 조약으로 완전하게 해결한 것을 아직 이해할 수 없는 토인이라면 자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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