減る祭祀殖えて行く葛藤
記事入力 2009-03-07 02:27 記事原文表¥示
[ソ¥ウル新聞] 数千年間伝統で続いて来た冠婚喪祭文化を取り囲んだ世代間の葛藤が深刻だ. 特に祭祀問題をおいて家族間に紛乱がひんぱんだ. 単純に宗教的な理由のためではない. 去年韓国青少年政策研究員が中・高校生 2000人余りを対象で進行した青少年価値観国際比較の調査で ‘祭祀を執り行な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回答した割合は 65.5%で前年と比べて 1.5% 減少した. 周辺国家と比べても中国は祭祀を執り行な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回答が 89.7%, 日本は 74.9%で我が国と 10%ポイント以上の差があった. 祭祀に関する一うちの青少年たちの認識がますます弱くなっているのだ.
●“私が死ねば祭祀受けないつもりに物悲しくて”
金聖訓(65・釜山金井区)さんはこれから自分が死んでも祭祀膳を受けることができないと嘆く. 読者である息子が嫁女に付いてキリスト教で宗教を変えたからだ. 去年秋夕の時は嫁女と息子が祭祀を見守ることはするがお辞儀をしないと宣言して口げんかまでした. 今年のお正月には息子夫婦が本家を尋ねて来なかった. 金さんは “今まで貧しい事情でも祭祀をきちんと過ごしたが私が死んで祭祀を受けることができないと思ったら物悲しい.”と吐露した.
子たちが煩わしいという理由で祭祀膳を丸ごと注文するせいで親と摩擦をもたらす事例も有り勝ちだ. ギムシンヤング(75・ソ¥ウル広津区)さんは “この頃は祭祀膳を注文する家もあるという周辺人の話を聞いたが私がその場合に当たるかは夢にも分からなかった.”と “祭祀は真心で仕えなければならないのに子たちがお金だけで解決しようと思ったら嘆かわしいだけ”と言った. 妻が死んだ後子たちは時間がないという理由で毎年節日が近付くと 15万ウォン程する祭祀膳をあらかじめ注文する. 文化的衝撃を易しく受け入れることは大変だが経済力があるのでもなくて自分が直接祭祀膳を調える能¥力もなくてそのまま従うしかない状況だ.
先祖に対する観念が稀薄になりながら農村に残って子が面倒を見ない先祖墓管理を皆引き取る年寄りも増えている. 農業をする崔ヨン式(68・慶北安東)さんは 5対照(代祖)のミョグァンリを一人で担当している. ソ¥ウルにいる息子二人は畝を管理する時間がないと働き手を買って管理するとか化粧して家族納骨堂に変えようと言うが彼は “そうするつもりがない.”と反対した. チェさんは “気力があるまではどんなに草でも抜いてくれるが私が死んでからは子たちがどんな先祖かも知れない畝は皆消えてしまうの”と言いながら “私の墓だけでもよく管理してくれれば良いが時間が経てば同じく解釈繁茂なことを思ったら切ない.”と歎息した. 彼は “この頃は息子たちの言葉どおりお金をくれて動き手を買って管理したい気がする.”と付け加えた.
●お正月・秋夕に 12番(回)忌祭リ… 宗孫夫婦離婚道場
祭祀による葛藤が大きくなって離婚という極限状況まで行く家庭もある. 釜山に居住する宗孫金某(53)さんは妻李某(48)さんが婚家祭祀をよく仕えないで婚家によく尋ねないなど暮しをなおざりにすると思って 2006年初から別居した後離婚訴訟を申¥し立てた. 節日祭祀外に 12番(回)の忌祭リが葛藤の発端になった. 金さんは妻が節日の時だけしばらく立ち寄って祭祀を執り行なってからは直ちに実家に帰ったし, その外には除数用意など祭祀準備をまともに手伝わなかったと主張して去年 9月釜山地方法院で勝訴判決を受けた.
●“子と摩擦避けようと回数減らして食べ物注文”
同じ 5080世代でも祭礼に対する視覚の差はある. 余暇生活に対する関心が増えながら青年層と同じく祭祀を不便な存在で眺める中高齢層も多い. 催宿営(55・女・慶北欧米)さんは忌祭リが近付くとか節日の時さえなれば神経が逆立つ. 仕事をしたくないことも, 煩わしいこともないが姑と事毎にぶつかるからだ. 姑は幼い頃から難しさが分からなくて育った万石師家の一人娘で ‘手が大きい’. 祭祀や節日の時は必ず古い方式で食べ物を豊かにさせて村人々に回すと気が済む. そしても食べ物が残ってフリーザーに翌年まで積もっておく事もあった. 彼は “このごろいちいち食べ物回す家がどこにあるか. 20年以上連れられたがまだ理解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言った.
子との摩擦を避けるために祭祀回数を竝びや手がかかる食べ物を注文する年寄りもいる. 葛藤を起こさないためにあらかじめ子や嫁女と妥協するのだ. 特に最近には景気低迷で共稼ぎ夫婦が増えながら子や嫁女を気配りする家庭が多くなった.
イ・ジョンシク(67・ソ¥ウル麻浦区)さんは少なくともひと月に一度祭祀を執り行なうゾングガッジブ読者だ. 4代一人っ子である彼の息子が 2年前結婚する時李さんの妻は “もう祭祀で解放された.”と好きだったが李さんは嫁女心配が先に進んだ. 身も弱いのに職場まで通う嫁女が幾多の祭祀を取りそらえてから病気にかからないか心配されたからだ. 婚家に入ってから3ヶ月された李さんの嫁女は去年曽祖父祭日, 急に鼻血をこぼして李さんを驚かした. その後李さんは祭祀を大幅に簡素化することに決心した. ‘私苦労する時はヌンカムチァックしなかったのに嫁女鼻血流したのが代数か.’と妻が目をにらんだが仕方なかった. 祭祀食べ物種類の数を竝びや一部は市場で購入する方法で嫁女仕事を減らしてくれた. 李さんは “世辞が重要ではないという気がした.”と “最小限の原則は守るべきがこれから便宜のために手続きをもっと簡素化する考え”と言った.
●共稼ぎ嫁女増えながら気配りする婚家多くなって
造営では(68・女・京幾水原)さんも似ている経験がある. のように住まないゾさんの嫁女は 1年に 8番(回)もなる忌祭リの毎にソ¥ウルから下って祭祀膳調えることを助ける. 彼は会社に通う嫁女が忙しいところにも毎度下ることを殊勝だと思ったが, 最近嫁女が息子にこっそりと “大変だ.”と泣き言を言うことを立ち聞きする瞬間力がずっと欠かした. 彼は “嫁女がこれからは子供達も大きくなって楽に過ごさなければならないのに私たちの時のように大変にさせる必要があるのか.”と “ナムルと魚, 私はのように必ず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外には注文してつましく調える方法を深刻に悩んでいる.”と言った.
正弦用移民霊気者 junghy77@seoul.co.kr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81&aid=0002001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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まあ、韓国の祭祀って大変だって聞きますから。
時代が変わるといろいろ葛藤もあるでしょうな。
そのあたりはどこの国でも同じかもしれませんね。^^)
血筋を誇る割りに意外と先祖を大事にしないんだ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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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을 자랑하는데 비해서 의외로 선조를 소중히 하지 않는다. . .
줄어 드는 제사 증가해 가는 갈등
기사 입력 2009-03-07 02:27 기사 원문표시
[소울 신문] 수천 연간 전통으로 계속 되어 온 관혼상제 문화를 둘러싼 세대간의 갈등이 심각하다. 특히제사 문제를 두어 가족 사이에 분란응이다. 단순하게 종교적인 이유이기 때문에는 아니다. 작년 한국 청소년 정책 연구원이 중·고교생 2000명남짓을 대상으로 진행한 청소년 가치관 국제 비교의 조사에서 ‘제사를 거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라고 회답한 비율은 65.5%로 전년과 비교해서 1.5% 감소했다. 주변 국가와 비교해도 중국은 제사를 거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회답이 89.7%, 일본은 74.9%로 우리 나라와 10%포인트 이상의 차이가 있었다. 제사에 관한 한우리 청소년들의 인식이 더욱 더 약해지고 있다.
●“내가 죽으면 제사 받지 않을 생각에 서글파서”
김성훈(65·부산 카나이구)씨는 지금부터 자신이 죽어도 제사선을 받을 수 없다고 한탄한다. 독자인아들이 며느리(신부)를 뒤따라 크리스트교로 종교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작년 추석때는 며느리(신부)와 아들이 제사를 지켜보는 것은 하지만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말싸움까지 했다. 금년의 설날에는 아들 부부가 본가를 찾아 오지 않았다. 김씨는 “지금까지 궁핍한 사정에서도 제사를 제대로 보냈지만 내가 죽고 제사를 받을 수 없다고 했더니 서글프다.”(이)라고 토로했다.
아이들이 번거롭다고 하는 이유로 제사선을 통째로 주문하는 탓으로 부모와 마찰을 가져오는 사례도 흔하다. 김신양(75·소울 광진구)씨는 “요즘은 제사선을 주문하는 집도 있다고 하는 주변인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가 그 경우에 해당될까는 꿈에도 몰랐다.”(이)라고 “제사는 진심으로 시중들지 않으면 안 되는데 아이들이 돈만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한심스러운 것뿐”이라고 말했다. 아내가 죽은 후자들은 시간이 없다고 하는 이유로 매년 절일이 가까워지면 15만원 정도 하는 제사선을 미리 주문한다. 문화적 충격을 쉽게 받아 들이는 것은 대단하지만 경제력이 있으므로도 없어서 자신이 직접 제사선을 준비하는 능력도 없어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선조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게 되면서 농촌에 남고 아이가 돌보지 않는 선조무덤 관리를 모두 물러가는 노인도 증가하고 있다. 농업을 하는 최영식(68·경북 안도)씨는 5 대조(대조)의 묘그리를 혼자서 담당하고 있다. 소울에 있는 아들 두 명은 밭두둑을 관리할 시간이 없으면 일꾼을 사 관리한다든가 화장해 가족 납골당으로 바꾸자고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이)라고 반대했다. 최씨는 “기력이 있을 때까지는 아무리 풀에서도 뽑아 주지만 내가 죽고 나서는 아이들이 어떤 선조일지도 모르는 밭두둑은 모두 사라져 버려”라고 말하면서 “ 나의 무덤만으로도 자주(잘) 관리해 주면 좋지만 시간이 지나면 같이 해석 번무인 일을 생각하면 안타깝다.”(이)라고 탄식 했다. 그는 “요즘은 아들들의 말대로 돈을 주고 일꾼을 사 관리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이)라고 덧붙였다.
●설날·추석에 12번(회) 기제리… 종손부부 이혼 도장
제사에 의한 갈등이 커져 이혼이라고 하는 극한 상황까지 가는 가정도 있다. 부산에 거주하는 종손금모(53)씨는 처리모(48)씨가 처가 제사를 잘 시중들지 말고 처가에 잘 찾지 않는 등 살림을 더 자갈로 한다고 생각해 2006 연초부터 별거한 후 이혼 소송을 신해 세웠다. 절일 제사외에 12번(회)의 기제리가 갈등의 발단이 되었다. 김씨는 아내가 절일때만 당분간 들르고 제사를 거행하고 나서는 즉시 친가에 돌아갔고, 그 외에는 제수 준비 등 제사 준비를 온전히 돕지 않았다고 주장해 작년 9월 부산 지방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아이와 마찰 피하려고 회수 줄여 음식 주문”
같은 5080세대라도 제례에 대한 시각의 차이는 있다. 여가 생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청년층과 같이 제사를 불편한 존재로 바라보는 중고령층도 많다. 최숙영(55·여자·경북 구미)씨는 기제리가 가까워진다든가 절일때만 되면 신경이 거꾸로 선다.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것도, 번거로운 일도 없지만 시어머니와 일 마다 부딪치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어려움을 몰라서 자란 망고쿠 스승의 집의 외동딸로 ‘손이 크다'. 제사나 절일때는 반드시 낡은 방식으로 음식을 풍부하게 시켜 마을사람들에 돌리면 기분이 내킨다. 그리고도 음식이 남아 냉각기에 다음 해까지 쌓여 두는 일도 있었다. 그는 “요즈음 하나 하나 음식 돌리는 집이 어디에 있을까. 20년 이상 따를 수 있었지만 아직 이해할 수 없다.”(이)라고 말했다.
아이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제사 회수를 줄이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주문하는 노인도 있다. 갈등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때문에) 미리 아이나 며느리(신부)와 타협한다. 특히 최근에는 경기침체로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면서 아이나 며느리(신부)를 배려하는 가정이 많아졌다.
이·젼시크(67·소울 마포구)씨는 적어도 한달에 한 번 제사를 거행하는 종갓지브 독자다. 4대 독자인 그의 아들이 2년전 결혼할 때 이씨의 아내는 “ 이제(벌써) 제사로 해방되었다.”(이)라고 좋아했지만 이씨는 며느리(신부) 걱정이 먼저 진행되었다. 몸도 약한데 직장까지 다니는 며느리(신부)가 무수한 제사를 취해 하늘네라고로부터 병에 걸리지 않는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처가에 들어가고 나서 3개월 된 이씨의 며느리(신부)는 작년 증조부 축제, 갑자기 코피를 흘려 이씨를 놀라게 했다. 그 후이씨는 제사를 큰폭으로 간소화하는 것에 결심했다. ‘나 고생할 때는 는캄치크 하지 않았는데 며느리(신부) 코피 흘렸던 것이 대수인가.'(와)과 아내가 눈을 노려보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제사 음식 종류의 수를 줄이나 일부는 시장에서 구입하는 방법으로 며느리(신부) 일을 줄여 주었다. 이씨는 “겉치레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이)라고 “최소한의 원칙은 지켜야 하는 것이 지금부터 편의를 위해서 수속을 더 간소화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맞벌이 며느리(신부) 증가하면서 배려하는 처가 많아져
축조에서는(68·녀·경기미즈하라)씨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와)과 같이 살지 않는 조씨의 며느리(신부)는 1년에 8번(회)이나 되는 기제리의 마다 소울로부터 내려 제사선 준비하는 것을 돕는다. 그는 회사에 다니는 며느리(신부)가 바쁜 곳에도 매번 내리는 것을 기특하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며느리(신부)가 아들에게 남몰래 “큰 일이다.”(이)라고 푸념을 말하는 것을 엿듣는 순간력이 쭉 빠뜨렸다. 그는 “며느리(신부)가 지금부터는 아이들도 커져 편하게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데 우리시와 같이 대단히 시킬 필요가 있는 것인가.”(이)라고 “나물과 물고기, 나는과 같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외에는 주문해 검소하게 준비하는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정현용 이민 영기자 junghy77@seoul.co.kr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81&aid=0002001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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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한국의 제사는 큰 일이다고 (들)물을테니까.
시대가 바뀌면 여러 가지 갈등도 있겠지요.
그 근처는 어떤 나라에서도 같을지도 모르겠네요.^^)
기사 입력 2009-03-07 02:27 기사 원문표시
[소울 신문] 수천 연간 전통으로 계속 되어 온 관혼상제 문화를 둘러싼 세대간의 갈등이 심각하다. 특히제사 문제를 두어 가족 사이에 분란응이다. 단순하게 종교적인 이유이기 때문에는 아니다. 작년 한국 청소년 정책 연구원이 중·고교생 2000명남짓을 대상으로 진행한 청소년 가치관 국제 비교의 조사에서 ‘제사를 거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라고 회답한 비율은 65.5%로 전년과 비교해서 1.5% 감소했다. 주변 국가와 비교해도 중국은 제사를 거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회답이 89.7%, 일본은 74.9%로 우리 나라와 10%포인트 이상의 차이가 있었다. 제사에 관한 한우리 청소년들의 인식이 더욱 더 약해지고 있다.
●“내가 죽으면 제사 받지 않을 생각에 서글파서”
김성훈(65·부산 카나이구)씨는 지금부터 자신이 죽어도 제사선을 받을 수 없다고 한탄한다. 독자인아들이 며느리(신부)를 뒤따라 크리스트교로 종교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작년 추석때는 며느리(신부)와 아들이 제사를 지켜보는 것은 하지만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말싸움까지 했다. 금년의 설날에는 아들 부부가 본가를 찾아 오지 않았다. 김씨는 “지금까지 궁핍한 사정에서도 제사를 제대로 보냈지만 내가 죽고 제사를 받을 수 없다고 했더니 서글프다.”(이)라고 토로했다.
아이들이 번거롭다고 하는 이유로 제사선을 통째로 주문하는 탓으로 부모와 마찰을 가져오는 사례도 흔하다. 김신양(75·소울 광진구)씨는 “요즘은 제사선을 주문하는 집도 있다고 하는 주변인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가 그 경우에 해당될까는 꿈에도 몰랐다.”(이)라고 “제사는 진심으로 시중들지 않으면 안 되는데 아이들이 돈만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한심스러운 것뿐”이라고 말했다. 아내가 죽은 후자들은 시간이 없다고 하는 이유로 매년 절일이 가까워지면 15만원 정도 하는 제사선을 미리 주문한다. 문화적 충격을 쉽게 받아 들이는 것은 대단하지만 경제력이 있으므로도 없어서 자신이 직접 제사선을 준비하는 능력도 없어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선조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게 되면서 농촌에 남고 아이가 돌보지 않는 선조무덤 관리를 모두 물러가는 노인도 증가하고 있다. 농업을 하는 최영식(68·경북 안도)씨는 5 대조(대조)의 묘그리를 혼자서 담당하고 있다. 소울에 있는 아들 두 명은 밭두둑을 관리할 시간이 없으면 일꾼을 사 관리한다든가 화장해 가족 납골당으로 바꾸자고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이)라고 반대했다. 최씨는 “기력이 있을 때까지는 아무리 풀에서도 뽑아 주지만 내가 죽고 나서는 아이들이 어떤 선조일지도 모르는 밭두둑은 모두 사라져 버려”라고 말하면서 “ 나의 무덤만으로도 자주(잘) 관리해 주면 좋지만 시간이 지나면 같이 해석 번무인 일을 생각하면 안타깝다.”(이)라고 탄식 했다. 그는 “요즘은 아들들의 말대로 돈을 주고 일꾼을 사 관리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이)라고 덧붙였다.
●설날·추석에 12번(회) 기제리… 종손부부 이혼 도장
제사에 의한 갈등이 커져 이혼이라고 하는 극한 상황까지 가는 가정도 있다. 부산에 거주하는 종손금모(53)씨는 처리모(48)씨가 처가 제사를 잘 시중들지 말고 처가에 잘 찾지 않는 등 살림을 더 자갈로 한다고 생각해 2006 연초부터 별거한 후 이혼 소송을 신해 세웠다. 절일 제사외에 12번(회)의 기제리가 갈등의 발단이 되었다. 김씨는 아내가 절일때만 당분간 들르고 제사를 거행하고 나서는 즉시 친가에 돌아갔고, 그 외에는 제수 준비 등 제사 준비를 온전히 돕지 않았다고 주장해 작년 9월 부산 지방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아이와 마찰 피하려고 회수 줄여 음식 주문”
같은 5080세대라도 제례에 대한 시각의 차이는 있다. 여가 생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청년층과 같이 제사를 불편한 존재로 바라보는 중고령층도 많다. 최숙영(55·여자·경북 구미)씨는 기제리가 가까워진다든가 절일때만 되면 신경이 거꾸로 선다.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것도, 번거로운 일도 없지만 시어머니와 일 마다 부딪치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어려움을 몰라서 자란 망고쿠 스승의 집의 외동딸로 ‘손이 크다'. 제사나 절일때는 반드시 낡은 방식으로 음식을 풍부하게 시켜 마을사람들에 돌리면 기분이 내킨다. 그리고도 음식이 남아 냉각기에 다음 해까지 쌓여 두는 일도 있었다. 그는 “요즈음 하나 하나 음식 돌리는 집이 어디에 있을까. 20년 이상 따를 수 있었지만 아직 이해할 수 없다.”(이)라고 말했다.
아이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제사 회수를 줄이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주문하는 노인도 있다. 갈등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때문에) 미리 아이나 며느리(신부)와 타협한다. 특히 최근에는 경기침체로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면서 아이나 며느리(신부)를 배려하는 가정이 많아졌다.
이·젼시크(67·소울 마포구)씨는 적어도 한달에 한 번 제사를 거행하는 종갓지브 독자다. 4대 독자인 그의 아들이 2년전 결혼할 때 이씨의 아내는 “ 이제(벌써) 제사로 해방되었다.”(이)라고 좋아했지만 이씨는 며느리(신부) 걱정이 먼저 진행되었다. 몸도 약한데 직장까지 다니는 며느리(신부)가 무수한 제사를 취해 하늘네라고로부터 병에 걸리지 않는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처가에 들어가고 나서 3개월 된 이씨의 며느리(신부)는 작년 증조부 축제, 갑자기 코피를 흘려 이씨를 놀라게 했다. 그 후이씨는 제사를 큰폭으로 간소화하는 것에 결심했다. ‘나 고생할 때는 는캄치크 하지 않았는데 며느리(신부) 코피 흘렸던 것이 대수인가.'(와)과 아내가 눈을 노려보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제사 음식 종류의 수를 줄이나 일부는 시장에서 구입하는 방법으로 며느리(신부) 일을 줄여 주었다. 이씨는 “겉치레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이)라고 “최소한의 원칙은 지켜야 하는 것이 지금부터 편의를 위해서 수속을 더 간소화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맞벌이 며느리(신부) 증가하면서 배려하는 처가 많아져
축조에서는(68·녀·경기미즈하라)씨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와)과 같이 살지 않는 조씨의 며느리(신부)는 1년에 8번(회)이나 되는 기제리의 마다 소울로부터 내려 제사선 준비하는 것을 돕는다. 그는 회사에 다니는 며느리(신부)가 바쁜 곳에도 매번 내리는 것을 기특하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며느리(신부)가 아들에게 남몰래 “큰 일이다.”(이)라고 푸념을 말하는 것을 엿듣는 순간력이 쭉 빠뜨렸다. 그는 “며느리(신부)가 지금부터는 아이들도 커져 편하게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데 우리시와 같이 대단히 시킬 필요가 있는 것인가.”(이)라고 “나물과 물고기, 나는과 같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외에는 주문해 검소하게 준비하는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정현용 이민 영기자 junghy77@seoul.co.kr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81&aid=0002001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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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한국의 제사는 큰 일이다고 (들)물을테니까.
시대가 바뀌면 여러 가지 갈등도 있겠지요.
그 근처는 어떤 나라에서도 같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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