事情の主人公は 1930年生まれ藤井Hideto.
45年当時家族と春川に居住した "藤井Hideto."は解放後日本に帰る道が支えてしまいました.
生活が余裕のあることができなくて日本に帰るお金がなかった藤井Hidetoの家族たちは結局韓国に残るようになります.
彼は "日本から住んで来た韓国人." になりすましてソウルの小さな会社に就職して家族を扶養します.
ところで彼が二十歳になった年 6月 25日朝鮮戦争が起こって 8月初に
鐘路を通り過ぎる藤井Hidetoは人民軍に引かれて行って強制入隊にあいます.
平安南道の人民軍訓練所に引かれて行った藤井Hidetoは名前を問う質問にバックニョムである(念セングガックハルニョム 仁オジルである) と答えたし人民軍になりました.
訓練所を経って人民軍輸送病で高射砲と砲弾を積んで運んで正札どおり移したがイギリス歩兵部隊との交戦で負傷を負って結局気を失います.
部隊から落伍された藤井Hidetoはイギリス軍に虜につかまって巨済島虜収容所に収容されます.
収容所で自分が日本人だと明らかにしたが自分の言うことを聞かなくて与えます.. 戦争が終わるまで 3年間虜生活をします.
長長しい虜生活あげく 53年 6月釈放された後くたびれた身を導いてソウルに帰ろうと釜山駅に向けます.
ところで駅に行った途中, 兵役忌避者取り締まり組が藤井Hidetoをビョングヨックギピザインズルアルでつかまえて陸軍第2補充隊に入所させます
仕方なくまた軍服務をしている途中 1年がふらりと去る 54年 11月, 愛国反共青年志願兵特別休暇を取ってソウルへ来た藤井Hidetoはその機会を利用して韓国外務省に帰国申し込みをします.
申し込めばすぐ出来ると思ったが前後国内も複雑なサングファングオッスブニだ.
すぐ許可が落ちなくて 55年 10月に許可が落ちてやっと軍で除隊ができました.
彼が日本に帰ったことは 56年 2月 3日です.
日本が敗戦してから 10年 6ヶ月ぶりに日本に帰るようになります.----------------------------------------------------------生きていますか??
韓国戦争を経験した日本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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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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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을 겪은 일본인.
사연의 주인공은 1930년생 후지이 히데토.
45년 당시 가족과 춘천에 거주하던 "후지이 히데토."는 해방 후 일본으로 돌아갈 길이 막혀버렸습니다.
생활이 여유롭지 못해서 일본으로 돌아갈 돈이 없던 후지이 히데토의 가족들은 결국 한국에 남게 됩니다.
그는 "일본에서 살다온 한국인." 행세를 하며 서울의 작은 회사에 취직해 가족을 부양합니다.
그런데 그가 스무살이 되던 해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지고 8월 초에
종로를 지나가던 후지이 히데토는 인민군에 끌려가 강제 입대를 당합니다.
평안남도의 인민군 훈련소에 끌려간 후지이 히데토는 이름을 묻는 질문에 박념인(念생각할념 仁어질인) 이라고 대답하였고 인민군이 되었습니다.
훈련소를 거쳐서 인민군 수송병으로 고사포와 포탄을 실어나르다 정찰대로 옮겼는데 영국 보병부대와의 교전에서 부상을 입고 결국 기절합니다.
부대에서 낙오된 후지이 히데토는 영국군에게 포로로 잡혀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수용됩니다.
수용소에서 자신이 일본인이라고 밝혔지만 자신의 말을 안들어 줍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3년동안 포로생활을 합니다.
기나긴 포로생활 끝에 53년 6월 풀려난후 지친 몸을 이끌고 서울로 돌아가려고 부산역으로 향합니다.
근데 역으로 가던 도중, 병역기피자 단속반이 후지이 히데토를 병역기피자인줄알고 붙잡아서 육군 제2보충대에 입소시킵니다
어쩔 수 없이 또 군복무를 하다가 1년이 훌쩍 지난 54년 11월, 애국 반공 청년 지원병 특별 휴가를 받아 서울에 온 후지이 히데토는 그 기회를 이용해 한국 외무부에 귀국신청을 합니다.
신청하면 바로 될 줄 알았는데 전후 국내도 복잡한 상황었습니다.
바로 허가가 안떨어져서 55년 10월에 허가가 떨어지고 그제서야 군에서 제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일본에 돌아간 것은 56년 2월 3일입니다.
일본이 패전한지 10년 6개월만에 일본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살아 있어요??
45년 당시 가족과 춘천에 거주하던 "후지이 히데토."는 해방 후 일본으로 돌아갈 길이 막혀버렸습니다.
생활이 여유롭지 못해서 일본으로 돌아갈 돈이 없던 후지이 히데토의 가족들은 결국 한국에 남게 됩니다.
그는 "일본에서 살다온 한국인." 행세를 하며 서울의 작은 회사에 취직해 가족을 부양합니다.
그런데 그가 스무살이 되던 해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지고 8월 초에
종로를 지나가던 후지이 히데토는 인민군에 끌려가 강제 입대를 당합니다.
평안남도의 인민군 훈련소에 끌려간 후지이 히데토는 이름을 묻는 질문에 박념인(念생각할념 仁어질인) 이라고 대답하였고 인민군이 되었습니다.
훈련소를 거쳐서 인민군 수송병으로 고사포와 포탄을 실어나르다 정찰대로 옮겼는데 영국 보병부대와의 교전에서 부상을 입고 결국 기절합니다.
부대에서 낙오된 후지이 히데토는 영국군에게 포로로 잡혀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수용됩니다.
수용소에서 자신이 일본인이라고 밝혔지만 자신의 말을 안들어 줍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3년동안 포로생활을 합니다.
기나긴 포로생활 끝에 53년 6월 풀려난후 지친 몸을 이끌고 서울로 돌아가려고 부산역으로 향합니다.
근데 역으로 가던 도중, 병역기피자 단속반이 후지이 히데토를 병역기피자인줄알고 붙잡아서 육군 제2보충대에 입소시킵니다
어쩔 수 없이 또 군복무를 하다가 1년이 훌쩍 지난 54년 11월, 애국 반공 청년 지원병 특별 휴가를 받아 서울에 온 후지이 히데토는 그 기회를 이용해 한국 외무부에 귀국신청을 합니다.
신청하면 바로 될 줄 알았는데 전후 국내도 복잡한 상황었습니다.
바로 허가가 안떨어져서 55년 10월에 허가가 떨어지고 그제서야 군에서 제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일본에 돌아간 것은 56년 2월 3일입니다.
일본이 패전한지 10년 6개월만에 일본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살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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