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いわゆる河野談話につい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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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いわゆる従軍慰安婦に関する官房長官談話(河野談話)が今、問題になっていますが、この談話が出された経緯を教えて下さい。

A 宮沢内閣当時、当事者による訴訟の提起や宮沢総理の韓国訪問時に盧泰愚大統領からの問題提起などがあり、関係諸国などから強い関心が寄せられました。

そのため1991年12月より、いわゆる従軍慰安婦問題に政府が関与していたかどうかを、警察庁、防衛庁、外務省、文部省、厚生省、労働省がそれぞれ調査し、その結果を1992年7月6日に内閣官房内閣外政審議室がとりまとめ、「朝鮮半島出身のいわゆる従軍慰安婦問題について」として発表しました。

それによると、(ネット上に資料がないので下記引用します。誤字脱字があったらお許し下さい。)
「慰安所の設置については、当時の前線における軍占領地域内の日本軍人による住民に対する強姦等の不法な行為により反日感情が醸成され、治安回復が進まないため、軍人個人の行為を厳重に取り締まるとともに、速やかに慰安設備を整える必要があるとの趣旨の通牒の発出があったこと、また、慰安施設は士気の振興、軍紀の維持、犯罪及び性病の予防等に対する影響が大きいため、慰安の諸施設に留意する必要があるとの趣旨の教育指導参考資料の送付が軍内部であったこと。

慰安婦の募集に当たる者の取締りについては、軍の威信を保持し、社会問題を惹起させないために、慰安婦の募集に当たる者の人選を適切に行うようにとの趣旨の通牒の発出が軍内部であったこと。

慰安施設の築造・監督については、部隊毎の慰安所利用日時の指定、慰安所利用料金、慰安所利用に当たっての注意事項等を規定した「慰安所規定」が作成されていたこと。

慰安所・慰安婦の衛生管理については、「慰安所規定」に慰安所利用の際は避妊具を使用することを規定したり、慰安所で働く従業婦の性病検査を軍医等が定期的に行い、不健康な従業婦においては就業させることを禁じる等の措置があったこと。

その他、業者が内地で準備した女子が船舶で輸送される予定であることを通知する電報の発出があったこと。

以上のように、いわゆる従軍慰安婦問題に政府の関与があったことが認められた。」と結論づけています。

それを受けて、同1992年7月6日に加藤紘一官房長官が、「慰安所の設置、慰安婦の募集に当たる者の取締り、慰安施設の築造・増強、慰安所の経営・監督、慰安所・慰安婦の街生管理、慰安所関係者への身分証明書等の発給等につき、政府の関与があったことが認められた」という内容の「朝鮮半島出身のいわゆる従軍慰安婦問題に関する官房長官談話(加藤談話)」を発表しました。
http://www.mofa.go.jp/mofaj/area/taisen/kato.html

政府は、さらに続けて、国内及び米国国立公文書館を含む関係資料の調査と元従軍慰安婦からのヒアリングを行いました。

1993年8月4日に内閣官房内閣外政審議室が「いわゆる従軍慰安婦問題について」と題した調査結果を発表しました。
http://www.mofa.go.jp/mofaj/area/taisen/pdfs/im_050804.pdf

そのなかには、
「業者らが或いは甘言を弄し、或いは畏怖させる等の形で本人たちの意向に反して集めるケースが数多く、更に、官憲等が直接これに加担する等のケースもみられた。」という記載があります。

この調査結果を受けて、同8月4日に河野洋平官房長官が「慰安婦関係調査結果発表に関する官房長官談話(河野談話)」を発表しました。
http://www.mofa.go.jp/mofaj/area/taisen/kono.html

Q 「河野談話」の何が問題となっているのでしょうか。

A 慰安婦の募集に強制性があったかどうかという点です。

河野談話は、内閣官房内閣外政審議室の調査発表を受けて、「慰安婦の募集については、軍の要請を受けた業者が主としてこれに当たったが、その場合も、甘言、強圧による等、本人たちの意思に反して集められた事例が数多くあり、更に、官憲等が直接これに加担したこともあったことが明らかになった。」

また「戦地に移送された慰安婦の出身地については、日本を別とすれば、朝鮮半島が大きな比重を占めていたが、当時の朝鮮半島は我が国の統治下にあり、その募集、移送、管理等も、甘言、強圧による等、総じて本人たちの意思に反して行われた」と述べています。

いわゆる従軍慰安婦に関する政府の関与があったことまでは政府の資料で確認できていますが(加藤談話)、慰安婦の募集に強制性があったかどうかについて、河野談話のいうように総じて本人たちの意思に反して行われたのか、本人たちの意思に反して行われたこともあったが、総じて行われたというほどではないのか、本人たちの意思に反して行われたことはなかったのか、で意見が分かれています。

Q 1993年8月4日付け内閣官房内閣外政審議室の「いわゆる従軍慰安婦問題について」発表までに政府が発見した資料の中に、軍や官憲によるいわゆる強制連行を直接示す記述があったのでしょうか。

A 安倍晋三首相は、2007年3月16日付の質問主意書への答弁書の中で「調査結果の発表までに政府が発見した資料の中には、軍や官憲によるいわゆる強制連行を直接示す記述も見当たらなかった」と述べています。

Q 宮沢内閣の石原信雄官房副長官(事務)も文書が見つからなかったと発言していませんか。

A 2007年に財団法人平和のためのアジア女性国民基金から刊行された「オーラルヒストリー アジア女性基金」のなかで、当時の石原信雄官房副長官は以下のように述べています。

「通達とか指令とかいろんな資料を集めたんですけど、文書で強制性を立証するようなものは出てこなかったんです。」

「通達とか指令とかという文書的なもの、強制性を立証できるような物的証拠は見つけられなかったのですが、実際に慰安婦とされた人たち十六人のヒヤリングの結果は、どう考えても、これは作り話じゃない、本人がその意に反して慰安婦とされたことは間違いないということになりました」

「本人のヒヤリングで強制性の認定をしたのは大きな間違いだというご批判があるわけです。われわれは何度も聞かされてます。ただ私どもは、そこをどうするかは、内閣としても、政府としても、判断に苦慮したところなんです。だけども十六人のうち、自分の意思ではなく慰安婦にさせられた、その置かれた状況のもとでやむなく慰安婦になった、あるいは瞞されてなったという人が間違いなくかなりいる。これはヒヤリングを通して真実であることに間違いないという担当官の報告が出たのです。日本政府も韓国政府も、担当官にはなんらのプレッシャーをかけてないわけです。人道的立場でヒヤリングをやってもらい、その報告を受けたわけです。それを政府としては、彼らの心証を大事にしていこうと考え、それが強制性の認定につながったわけです。」

Q この元慰安婦からのヒヤリングの内容は公開されているのでしょうか。

A これまで公開されていません。

Q 河野談話は閣議決定されているのでしょうか。

A 閣議決定されていません。

Q では、河野談話はどういう性格のものなのでしょうか。

A 「内閣の意思」です。

前出の「オーラルヒストリー」のなかで石原官房副長官はこう述べています。
「あの表現は官邸の中で皆で相談して、最終的に決めたものなのです。当然外務省、厚生省、労働省など、関係する官庁には全部連絡して決めたわけですから、あれは内閣の意思でして、特定の人の意見ではない。内閣の責任で出した談話だということは間違いありません」

Q この「内閣の意思」は宮沢内閣以降どうなっているのですか。

A 宮沢内閣以降の歴代内閣はこれを踏襲しています。

Q 「河野談話」を修正、または撤回するためにはどうしたらよいのでしょうか。誰がやればよいのでしょうか。

A 「内閣の意思」は、総理大臣が明示的に踏襲すると発言しなくとも、明示的に否定しない限り、新しい内閣に引き継がれます。

「河野談話」を修正または撤回するためには、これまでの内閣の意思を変更するわけですから、「河野談話」に替わる内閣の新しい見解、意思を発表する、「河野談話」を踏襲しないという内閣の意思を明示する、または何らかの形での否定をすることが必要だと思われます。

内閣の意思をとりまとめ、総理または官房長官が新しい見解を発表するなどが必要です。

そのためには、1993年8月4日付け内閣官房内閣外政審議室の「いわゆる従軍慰安婦問題について」に替わる事実が出てくるか、あるいはこの調査結果を破棄するかということが必要になります。

Q 加藤談話及び河野談話については、談話を出した本人が意見を変えれば変更ができるのでしょうか。

A 歴代官房長官は、この問題に限らず、様々な問題について談話を発表してきていますが、いずれの談話も内閣の意思を表しているものであって、個人の意見を述べたものではありません。ですから官房長官談話の変更には、内閣の意思の変更が必要になります。

談話を出した本人のその後の意見というものは、談話には関係ありませ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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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코노 담화에 대해

Q 이른바 종군위안부에 관한 관방장관 담화(코노 담화)가 지금,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만, 이 담화가 나온 경위를 가르쳐 주세요.

A 미야자와 내각 당시 , 당사자에 의한 소송의 제기나 미야자와 총리의 한국 방문시에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의 문제 제기등이 있어, 관계 제국등에서 강한 관심이 전해졌습니다.

그 때문에 1991년 12월부터,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에 정부가 관여하고 있었는지를, 경찰청, 방위청, 외무성, 문부성, 후생성, 노동성이 각각 조사해, 그 결과를 1992년 7월 6일에 내각 관방 내각 외정 심의실이 정리해 「한반도 출신의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로서 발표했습니다.

그것에 따르면, (넷상에 자료가 없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인용합니다.오자 탈자가 있으면 용서해 주세요.)
「위안소의 설치에 대해서는, 당시의 전선에 있어서의 군점령지역내의 일본 군인에 의한 주민에 대한 강간등의 불법인 행위에 의해 반일 감정이 양성되어 치안 회복이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군인 개인의 행위를 엄중하게 단속하는 것과 동시에, 신속하게 위안 설비를 정돈할 필요가 있다라는 취지의 통첩의 발출이 있던 것, 또, 위안 시설은 사기의 진흥, 군대의 규율의 유지, 범죄 및 성병의 예방등에 대한 영향이 크기 때문에, 위안의 제시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라는 취지의 교육 지도 참고 자료의 송부가 군내부에서 만난 것.

위안부의 모집에 임하는 사람의 단속에 대해서는, 군의 위신을 보관 유지해, 사회 문제를 야기 시키지 않기 위해(때문에), 위안부의 모집에 임하는 사람의 인선을 적절히 실시하도록(듯이)라는 취지의 통첩의 발출이 군내부에서 만난 것.

위안 시설의 축조·감독에 대해서는, 부대 마다의 위안소 이용 일시의 지정, 위안소 이용 요금, 위안소 이용 에 해당하는 주의 사항등을 규정한 「위안소 규정」이 작성되고 있던 것.

위안소·위안부의 위생 관리에 대해서는, 「위안소 규정」에 위안소 이용때는 피임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규정하거나 위안소에서 일하는 종업부의 성병 검사를 군의관등이 정기적으로 실시해, 건강하지 못한 종업부에 대하고는 취업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가 있던 것.

그 외, 업자가 내지에서 준비한 여자가 선박으로 수송될 예정인 것을 통지하는 전보의 발출이 있던 것.

이상과 같이,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에 정부의 관여가 있었던 것이 인정되었다.」라고 결론 짓고 있습니다.

그것을 받고, 동1992년 7월 6일에 카토 코이치 관방장관이, 「위안소의 설치, 위안부의 모집에 임하는 사람의 단속해, 위안 시설의 축조·증강, 위안소의 경영·감독, 위안소·위안부의 가생 관리, 위안소 관계자에게의 신분 증명서등의 발급등에 대해, 정부의 관여가 있었던 것이 인정되었다」라고 하는 내용의 「한반도 출신의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관방장관 담화(카토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http://www.mofa.go.jp/mofaj/area/taisen/kato.html

정부는, 한층 더 계속하고, 국내 및 미국 국립 공문서관을 포함한 관계 자료의 조사와 전 종군 위안부로부터의 히어링을 실시했습니다.

1993년 8월 4일에 내각 관방 내각 외정 심의실이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라고 제목을 붙인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http://www.mofa.go.jp/mofaj/area/taisen/pdfs/im_050804.pdf

그 안에는,
「업자등이 혹은 감언을 농 해, 혹은 공포 시키는 등의 형태로 본인들의 의향에 반해 모으는 케이스가 많이, 더욱, 관헌등이 직접 이것에 가담하는 등의 케이스도 볼 수 있었다.」라고 하는 기재가 있어요.

이 조사 결과를 받고, 동8월 4일에 코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위안부 관계조사결과 발표에 관한 관방장관 담화(코노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http://www.mofa.go.jp/mofaj/area/taisen/kono.html

Q 「코노 담화」의 무엇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까.

A 위안부의 모집에 강제성이 있었는지라고 하는 점입니다.

코노 담화는, 내각 관방 내각 외정 심의실의 조사 발표를 받고, 「위안부의 모집에 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것에 해당되었지만, 그 경우도, 감언, 강압에 의한 등 ,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모아진 사례가 많이 있어, 더욱, 관헌등이 직접 이것에 가담한 적도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또 「전지에 이송된 위안부의 출신지에 대해서는, 일본을 구별이라고 하면, 한반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당시의 한반도는 우리 나라의 통치하에 있어, 그 모집, 이송, 관리등도, 감언, 강압에 의한 등 , 대체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행해졌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종군위안부에 관한 정부의 관여가 있던 것까지는 정부의 자료로 확인 되어 있습니다만(카토 담화), 위안부의 모집에 강제성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코노 담화가 말하듯이 대체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행해졌는지,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행해진 적도 있었지만, 대체로 행해졌다고 할 정도는 아닌 것인지,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행해졌던 적은 없었던 것일까, 그리고 의견이 나뉘고 있습니다.

Q 1993년 8월 4 날짜 내각 관방 내각 외정 심의실의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발표까지 정부가 발견한 자료안에, 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 연행을 직접 나타내 보이는 기술이 있었는지요.

A 아베 신조 수상은, 2007년 3월 16 일자의 질문주의서에의 답변서속에서 「조사 결과의 발표까지 정부가 발견한 자료안에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 연행을 직접 나타내 보이는 기술도 눈에 띄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Q 미야자와 내각의 이시하라 노부오 관방 부장관(사무)도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A 2007년에 재단법인 평화를 위한 아시아 여성 국민 기금으로부터 간행된 「어랄 히스토리 아시아 여성 기금」 속에서, 당시의 이시하라 노부오 관방 부장관은 이하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통지라든지 지령이라든지 여러가지 자료를 모았습니다만, 문서로 강제성을 입증하는 것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통지라든지 지령이라든지라고 하는 문서적인 것, 강제성을 입증할 수 있는 물적 증거는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만, 실제로 위안부로 여겨진 사람들 16명의 히어링의 결과는, 어떻게 생각해도, 이것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닌, 본인이 그 뜻에 반하고 위안부로 여겨진 것은 틀림없다고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본인의 히어링으로 강제성의 인정을 한 것은 큰 실수라고 하는 비판이 있다 (뜻)이유입니다.우리는 몇번이나 듣고 있습니다.단지 저희들은, 거기를 어떻게 할까는, 내각이라고 해도, 정부라고 해도, 판단에 고심한 참입니다.만여도 16명 가운데, 자신의 의사는 아니고 위안부로 몰린, 그 놓여진 상황의 아래에서 부득이 위안부가 된, 있다 있어는 속여져서 되었다고 하는 사람이 틀림없이 꽤 있다.이것은 히어링을 통해 진실한 것으로 틀림없다고 하는 담당관의 보고가 나왔습니다.일본 정부도 한국 정부도, 담당관에게는 아무런 압력을 걸치지 않은 것입니다.인도적 입장에서 히어링을 해 주어, 그 보고를 받은 것입니다.그것을 정부로서는, 그들의 심증을 소중히 해 가려고 생각해 그것이 강제성의 인정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Q 이 원위안부로부터의 히어링의 내용은 공개되고 있는 것입니까.

A 지금까지 공개되고 있지 않습니다.

Q 코노 담화는 각의 결정되고 있는 것입니까.

A 각의 결정되고 있지 않습니다.

Q 그럼, 코노 담화는 어떤 성격의 것일까요.

A 「내각의 의사」입니다.

전출의 「어랄 히스토리」 속에서 이시하라 관방 부장관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표현은 관저 중(안)에서 모두가 상담하고, 최종적으로 결정한 것입니다.당연히 외무성, 후생성, 노동성 등, 관계하는 관청에는 전부 연락해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저것은 내각의 의사로 하고, 특정의 사람의 의견은 아니다.내각의 책임으로 낸 담화라고 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Q 이 「내각의 의사」는 미야자와 내각 이후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A 미야자와 내각 이후의 역대 내각은 이것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Q 「코노 담화」를 수정, 또는 철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일까요.누가 하면 좋은 것일까요.

A 「내각의 의사」는, 총리대신이 명시적으로 답습한다고 발언하지 않아도, 명시적으로 부정하지 않는 한, 새로운 내각에 인계됩니다.

「코노 담화」를 수정 또는 철회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내각의 의사를 변경하는 것이기 때문에, 「코노 담화」에 바뀌는 내각이 새로운 견해, 의사를 발표하는, 「코노 담화」를 답습하지 않는다고 하는 내각의 의사를 명시한다, 또는 어떠한 형태로의 부정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내각의 의사를 정리해 총리 또는 관방장관이 새로운 견해를 발표하는 등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993년 8월 4 날짜 내각 관방 내각 외정 심의실의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바뀌는 사실이 나오는지, 있다 있어는 이 조사 결과를 파기하는가 하는 것이 필요하게 됩니다.

Q 카토 담화 및 코노 담화에 대해서는, 담화를 낸 본인이 의견을 바꾸면 변경을 할 수 있는 것입니까.

A 역대 관방장관은, 이 문제에 한정하지 않고, 님 들인 문제에 대하고 담화를 발표해 오고 있습니다만, 어느 담화도 내각의 의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며, 개인의 의견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그러니까 관방장관 담화의 변경에는, 내각의 의사의 변경이 필요하게 됩니다.

담화를 낸 본인의 그 후의 의견이라는 것은, 담화에는 관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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