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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島に漢字を伝えた王仁博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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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王仁博士が日本に発ちながら聖基洞と月出山を最後に眺める姿を表現した絵. 王人遺跡地展示館に展示されている.

美しい人のとどまった席は美しいと言います. その席には美しい香りが漂います. 中央日報は ¥"道よって味よって¥"セクションを新たに提供しながら歴史の中人物たちの現場を尋ねて彼らの足跡を吟味する連続企画を始めます. ¥"帰国の文化は日本に大きい影響を及ぼして来ました. 8世紀に編纂された ¥"日本書紀(日本書紀)¥"には経済に明るい百済の王である(王仁)博士が日本に渡って来て烏芋陣(応神)天皇の太子を教えて太子が多くの戦績(典籍)に通じるようになったと記録されています¥".

1998年 10月キム・デジュン大統領の日本国賓部屋の門の中で開かれた公式晩餐で日本の明仁(明仁)王が読んだ晩餐辞の一部分だ. 天皇は 68回誕生日を迎えた去年 12月記者会見を開いて ¥"や自分と係わってガンム(桓武)天皇の生母が百済武寧王の子孫(和新笠)と ¥"ソックイルボンギ(続日本紀)¥"に書かれていて韓国との年間(縁)を感じる¥"と告白した.

日本人たちが韓国を尋ねて唯一に参拜する所がすぐ全南霊岩郡王人遺跡地だ. 毎年王人文化祭り期間の中で 6千名余の日本人観光客が王人遺跡地を参拜しに来る. これらにおいて百済が生んだ博士王人は飛鳥(飛鳥)文化の鼻祖(鼻祖)で日本文化の花を咲かせた歴史的巨人と同時に学問の師匠であることだ. 1千6百余年前の百済アシンワング 14年(405年) 旧暦踊った2月. 花費が下る派手な春の日だった. ドルゾングゴゲを経って百済の貿易港だった相手(上台.今の霊岩聖基洞)潟に向ける王仁博士の足はどうしても落ちなかった.

33年間生活したソングギゴ−ル, 月出山の文筆峰.竹の子峰, ご両親を合掌した墓を思い浮かんで 3‾4年後また帰って来るという約束はしたけれども彼の目もとには涙がたまった. 住民たちが見送る中に家族とダンヤゴング(鍛冶工.鍛冶), 五服社(五服師), 洋酒である(釀酒人), ドギゴング(陶器工) など 2百名余の百済人がデヨソッチォックのお腹に分けて乗って相手潟を発った. そして二度とこの地を踏むことができなかった.

日本に渡った王人は ¥"千字文¥"と ¥"論語¥"を伝授することで文と文章の師匠になったし日本文化にこの上なく大きい影響を及ぼした韓国人で名前を道が輝かしている. ¥"ソックイルボンギ¥"には序文(西文).無生(武生).章(蔵).線(船).チン(津).ガルゾング(葛井) など 6個氏姓(姓氏)が王人の後裔でこれらは日本社会の指導階層で活動したという記録が残っている.

王人の業績を称える文化祭りが来る 6日から四日間霊岩郡王人遺跡地一円で開かれる. 王仁博士が日本に招聘されて行く行列を再現した ¥"王仁博士日本行きます¥"を含めて百済振り, 伽椰琴散調と竝唱, 張賦質歌, ヨソク山サングペノングアックなど公演が起る. 百済文化と王人博士を主題にした乱打とプムバタリョングもお目見えする. 観覧客が参加することができる千字文挑戦ゲームとダックゾングが天然染め付け工芸体験フェスティバルも開かれる.

王人遺跡地には祠堂, セングがト, 清い泉水が流れるソングチォン(聖泉), 霊岩町と月出山が身近に見える八角亭見晴らし台を含めて 10分余り距離に王仁博士が学んで談論を分けたムンサン嶺(文山斎)と両社嶺(養士斎), 一人きり静かに勉強した石穴と博士を彫刻した席上などが散らばっている. 相手潟も保存している. 詳しい情報は王人文化祭りホームページ(http://www.wangin.org)や電話(061-473-1878)を通じて得ることができる. 韓日文化親善協会が発行した ¥"ハックソング(学聖)王仁博士¥"という本も参照にな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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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도에 한자를 전파한 왕인박사


△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떠나면서 성기동과 월출산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 왕인유적지 전시관에 전시돼 있다.

아름다운 사람이 머문 자리는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는 아름다운 향기가 묻어납니다. 중앙일보는 "길따라 맛따라"섹션을 새로 제공하면서 역사 속 인물들의 현장을 찾아 그들의 발자취를 음미하는 연속 기획을 시작합니다. "귀국의 문화는 일본에 큰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8세기에 편찬된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경제에 밝은 백제의 왕인(王仁)박사가 일본에 건너와 오우진(應神)천황의 태자를 가르쳐 태자가 여러 전적(典籍)에 통달하게 됐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국빈 방문 중 열린 공식 만찬에서 일본의 아키히토(明仁)왕이 읽은 만찬사의 일부분이다. 일왕은 68회 생일을 맞은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을 열고 "나 자신과 관련해 간무(桓武)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和新笠)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적혀 있어 한국과의 연(緣)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일본인들이 한국을 찾아 유일하게 참배하는 곳이 바로 전남 영암군 왕인 유적지다. 매년 왕인 문화축제 기간 중 6천여명의 일본인 관광객이 왕인 유적지를 참배하러 온다. 이들에게 있어 백제가 낳은 박사 왕인은 아스카(飛鳥)문화의 비조(鼻祖)로 일본 문화를 꽃피운 역사적 거인이자 학문의 스승인 것이다. 1천6백여년 전인 백제 아신왕 14년(405년) 음력 춘2월. 꽃비가 내리는 화사한 봄날이었다. 돌정고개를 지나 백제의 무역항이었던 상대(上臺.지금의 영암 성기동)포구로 향하는 왕인박사의 발길은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33년간 생활했던 성기골, 월출산의 문필봉.죽순봉, 부모님을 합장한 무덤을 떠올리며 3~4년 후 다시 돌아온다는 기약은 했건만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주민들이 배웅하는 가운데 가족과 단야공(鍛冶工.대장장이), 오복사(五服師), 양주인(釀酒人), 도기공(陶器工) 등 2백여명의 백제인이 대여섯척의 배에 나눠 타고 상대포구를 떠났다. 그리고 다시는 이 땅을 밟지 못했다.

일본으로 건너간 왕인은 "천자문"과 "논어"를 전수함으로써 글과 문장의 스승이 되었으며 일본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한국인으로 이름을 길이 빛내고 있다. "속일본기"에는 서문(西文).무생(武生).장(藏).선(船).진(津).갈정(葛井) 등 6개 성씨(姓氏)가 왕인의 후예이고 이들은 일본 사회의 지도계층으로 활동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왕인의 업적을 기리는 문화축제가 오는 6일부터 나흘간 영암군 왕인유적지 일원에서 열린다.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초빙돼 가는 행렬을 재현한 "왕인박사 일본가오"를 비롯해 백제춤사위, 가야금 산조와 병창, 장부질 노래, 여석산 쌍패농악 등 공연이 벌어진다. 백제문화와 왕인 박사를 주제로 한 난타와 품바타령도 선보인다.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는 천자문 도전 게임과 닥종이 천연염색 공예체험 한마당도 펼쳐진다.

왕인 유적지에는 사당, 생가터, 맑은 샘물이 흐르는 성천(聖泉), 영암 읍내와 월출산이 가까이 보이는 팔각정 전망대를 비롯해 10여분 거리에 왕인박사가 배우고 담론을 나누던 문산재(文山齋)와 양사재(養士齋), 홀로 조용히 공부하던 석굴과 박사를 조각한 석상 등이 흩어져 있다. 상대포구도 보존돼 있다. 자세한 정보는 왕인문화축제 홈페이지(http://www.wangin.org)나 전화(061-473-1878)를 통해 얻을 수 있다. 한일문화친선협회가 펴낸 "학성(學聖)왕인박사"라는 책도 참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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