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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の核兵器開発能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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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核武装, 6ヶ月なら十分だ

レーザー濃縮など超一流技術にプルトニウムも多くて
短期間に起爆装置-トバルスダン取り揃えた核武装する首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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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 5対ウォン前強国という韓国の核開発能力はどの位もなるか?
北核に備えて韓国も自慰手段で核武装をしようという世論が拡散している中に韓国の核開発能力を評価した専門家の診断が出た.

去る ▲去る 2009年 5月北朝鮮の核実験場所衛星撮影写真.c。連合ニュース ソギュンリョルソウル大原子核工学と教授は NKビジョン 6月号寄稿を通じて韓国がその気になれば 6ヶ月以内に起爆装置とトバルスダンを取り揃えた核武装が可能だと明らかにした.
で教授は “韓国はもう掛けがね, 月城, 光栄などに 21個原子力発展所を運営して申告里などに 7育てる建設して 4育てる建設準備中の世界 5大原子力強国”と説明した. またひいてはチェルノブイリと福島に搖れたロシアと日本を追い抜いて世界 3大原子力強国で進んでいると付け加えた.

で教授は “韓国に核兵器はないがレーザー再処理ウラン濃縮技術とプルトニウム抽出技術, 原審分離技術を開発している”と “特にレーザー濃縮技術は世界が刮目するほどの境地に至っていて有事時短期間に核武装ができる財政的技術的力量が十分だ”と評価した.
であって “我が国の原典に積もった使用後核燃料は 1万トンを超えてこの中プルトニウムが数十トンで プルトニウム爆弾を大量生産することができる”と強調した. 核爆弾一足にはプルトニウムが 10kg 程度必要なことと知られた.

で教授は “公式的に表明しないが核武装に必要な故濃縮核物質製造技術は天然ウラン濃縮で核燃料再処理施設を通じるプルトニウム濃縮に至るまで大量生産が可能な水準”で “最小限 6ヶ月以内に起爆装置とトバルスダンを取り揃えた核武装が可能だ”と強調した.
彼は “核爆弾実験を通じる物理的空間が必要だが世界超一流デジタル手術を保有した大韓民国の能力ではスーパコンピュータを使った仮想実験を通じて十分に代替が可能で仮想空間で核爆弾実験を具現することができる”と付け加えた.

[Why] どの事業家の告白私が ICBM (大陸間弾道ミサイル)韓国に持ちこんだ

朝鮮日報| 記事入力 2011-06-25 14:38 | 最終修正 2011-06-25 20:08 記事原文 広告 ロシアでスパイ疑いで 4年目入国禁止… 現地不動産・事業体すべて飛ばす段

キム・デジュン政権時代ロシア極東地域に配置された大陸間弾道ミサである(ICBM)を古鉄で偽装して韓国に持って来ました. 命をかけて働いたが, 私が困境に処したら国家は私をあきらめますね. 中堅企業人でこの間まで国内ある体育団体の会長を引き受けた Kさんの発言だった. 国家情報院に確認した結果, そんな事があったが彼が持ちこんだのは古鉄水準に過ぎなかったと言った. 生をあきらめたという Kさんに何の事があったのだろう.

◆ICBM プロジェクトに参加する

Kさんは 1996年から韓国とロシアを行き交って事業をした. カムチァカ半島の都市ペトロパブルロプスクカムチァツキに彼の会社があった. Kさんは使えなくなった船舶を切断して古鉄形態で作ってポスコなどに納品した. サハリン北東の方に位したカムチァカはアメリカ本土に向けた大陸間弾道ミサである這わあるなど戦略的要衝地だった. 軍事装備をたくさん扱った Kさんはロシア軍部人士と近く過ごした.

1997年ロシア国防省は彼の会社に大陸間弾道ミサである廃棄用役を任せた. 長さ 30m まわり 5mが過ぎる弾道ミサイルを 30cm 以下で細かく粉碎する事だったが固体燃料のため非常に危ない作業だったと言う. ミサイル残骸はロシア側が全量回収して太平洋など第3の場所にやきもちすることと知られた. 当時ロシアはアメリカと結んだ戦略武器減縮協定によってカムチァカ海岸に配置された一部弾道ミサイルを無くす事にした. 廃棄されるミサイルたちは元々ウクライナ基地でヨーロッパ全域をカバーしたが 1991年ウクライナが独立しながらカムチァカに移動配置されたのだった. 1956年アメリカより先に大陸間弾道ミサイルを開発したロシアは当時射程距離 5500km 以上の SS-18, SS-19, SS-25 位を保有していた.

Kさんはソウルで国政院要員たちに自分が引き受けた用役を説明したし, この時から国政院と彼は極秘プロジェクトを進行する. Kさんは国政院の取り持ちで専門家たちを連鎖接触した. 当時国政院側は弾道ミサイル模型を見せてくれて毀損を最小化して必ず確保しなければならない部位を知らせてくれた.

Kさんは 1997年夏都市真ん中にあるカムチァカ刑務所で弾道ミサイルを初めに見た. 胴が 3, 4個端くれで切られていたし, エンジンなど推進体部位は別途空間に保管されていた. 機密維持次元で刑務所一部を作業空間で利用していた. 当時カムチァカにはミサイル廃棄を確認するアメリカ監視要員もいた.

Kさんは正常方法ではミサイルを抜き取るのが不可能に見えたとしながらその頃ベトナムでも弾道ミサイルを密搬入しようとしたが摘発されてここに協調した海軍提督が首切りされた事件があったと言った.

Kさんもロシア軍部人士を活用する事にした. 廃棄作業を関与するミサ日記だ司令官(大領)と情報将校たちが主要接触対象だった. これらとよく交わったし小遣いも与えた. おかげさまで彼の会社車は刑務所出入りが自由になった.

プロジェクト進行状況が随時に国政院に伝達したし指示も伝われた. 国際担当局長とロシア課長に会って会議も開いた. 国政院幹部である妻男もそんなに遠いではないウラジオストックで Kさんの活動を支援した.

◆古鉄ダミーに隠して来た弾道ミサイル

1998年 ¥"作戦¥"が本格的に始まった. 彼は月明りない夜明けにだけ動いた. カムチァカ上空を随時に過ぎ去るアメリカとロシアの人工衛星を避けるためだ. 破鎖しない弾道ミサイル部品をトラックに積んで 12kmほど離れたブドッが野積場で運んだ. Kさん会社所有であるこの野積場には韓国に納品する数千tの古鉄が積もっていた. 彼は古鉄ダミーの間で弾道ミサイル部品を素早く隠した. こういうのを 10余回, 弾道ミサイル 1期にあたる部品が彼の会社野積場で移された. ¥"包攝¥"一余分の幹部たちには弾道ミサイルに使われた非鉄金属を韓国企業に八面お金がかなりなると繰り合わせた.

問題はエンジンなどがある推進体部位だった. この部品を持って行くと言えばいくら親しみいる余分の幹部だと言っても用途を疑うのが確かだった. それにウラジオストックに駐屯中のロシア極東艦隊司令部の保安部隊と FSB(KGBの後身)が Kさんの動線(動線)を見詰めていた. Kさんが総領事館所属韓国情報要員と接触する姿が目撃されたから.

Kさんはドルを準備した. ミサ日記だ司令官など 4人に皆 70万ドル(約 8億ウォン)を与えながらエンジンに対してこれ以上問わないでくれと言った. 当時 70万ドルは巨金だった. 部屋 3個のカムチァカアパート一軒が 6000ドル(約 700万ウォン) する時であった.

このようにしてエンジン 2個など弾道ミサイル 1期分量の核心部位が刑務所で野積場に運びされた. ここまで 6ヶ月がかかったし 1998年 6月頃だった. もうミサイルを韓国で移す順番だった. カムチァカ港を発つ荷船ごとにロシア情報要員が上船するなど次の作戦も難しいのは同じ.

Kさんは野積場に古鉄が皆集まるまで待った. 通常古鉄 1回船積み分量は 5000t 位になるのに羊をすべて満たす前に積んで去れば疑心を受けるからだった.

1998年 11月下旬出港が決まったし, 長さ 130m になるロシア船積み(船籍)の荷船を借りた. Kさん会社の専用波止場で船積みが始まった. 15階建物体積の古鉄 5000tを船に積むことにぶっ通しで五日がかかった. Kさんは古鉄ダミーに隠されたミサイル部品位置を目にしっかり盛っておいた. 韓国での迅速な荷役のためだった. ロシア情報要員たちが船積み作業を察しに来る度に胸がどんどんとときめいたが幸いに疑心を受けなかった.

いよいよ荷船錨が上がった. オホーツク海とサハリン南端を通った滲む東海に進入したし韓半島を回って一週間ぶりの 11月 30日午後仁川港に近付いた. 滲む無事に東国製鋼専用波止場に接岸した. Kさんは出港直後ウラジオストックに移動, 航空便を利用して韓国に入って来て船を待った.

◆作戦は皆三回

国政院も緊迫に動いた. 1961年国政院創設であると言う最大のプロジェクトが成事になる直前だった. 要員たちが遠い足元で息を殺して荷役作業を見守った. Kさんは弾道ミサイルが隠匿された部分と純粋古鉄部分を速かに分離荷役した. 三日ぶりに古鉄を皆解いておいた荷船が港を発った. 国政院は Kさんに弾道ミサイル部品を大田ハングウヨンまで直接運送してくれることを注文した. 国政院が ¥"品物¥"を引き継ぎ受ける場合周辺列強の監視衛星に見付かる恐れがあるからだと言った. 19tの大韓通運トラック 2台に弾道ミサイル部品がぎゅっと立ちこんだ. トラック 2台が京仁高速道路と京釜高速道路を経って大田を向けて全速力で走ったし, 国政院のヘリコプターが決まった距離を置いてトラックの後を追った. 4時間ぶりにトラックは大田隣近にある国政院建物に吸い込まれた. 1998年 12月 2日日の暮れる頃だった.

Kさんは忘れることができない瞬間だった. 盛大な自祝宴がつながったし国政院要員たちは空前絶後した快挙だと喜んだ. VIPにも作戦成功事実が直ちに報告されたことで分かると言った. 翌年 3月 13日当時李鍾賛国政院長は Kさんに感状を与えた. 特に国家安全保障に寄与した球が大きいという内容が書いていた.

Kさんと国政院のプロジェクトは以後二度もっと進行された. 2000年 12月 2日には弾道ミサイル詳細連結部品を持って来たし 2001年 11月 10日にはエンジン 3個とノズル連結部品を持ちこんだ. Kさんは国政院側は当時搬入した弾道ミサイルを修復して衛星開発に参考したことで分かると言った.

国政院はロシアの他の戦略武器も持って来て甘いと要求したが Kさんは応じなかったと言う. 彼は摘発されれば事業はさしおいて命まで危なげになるのに易しくすべきことではないじゃないかと言った.

Kさんは本業に専念したし社勢は栄えた. 古鉄収入と船舶切断事業外にも不動産開発及び旅行事業をした. カムチァカにホテル建立を推進するなど系列社 5個を置いた. Kさんはプロジェクトを成功して国政院で激励金 1万ドルをもらったが, あんまり事業がうまく行ったから国家のために働いたというところ満足したと言った. ロシアミサ日記だ司令官などはわいろを受けていくら後皆全域して故郷に帰ったと言う.

◆突発状況とそっぽを向く政府

そのように 6年が経った. 問題は 2007年 4月開かれた. Kさんがソウルに来て行ってウラジオストック空港に帰るのに入国が禁止されたこと. 当時ロシア極東司令部高位関係者に経緯を聞いて見たらスパとテロリスト疑いを受けているようだという話を聞いた. Kさんは系列社で置いた法務法人を通じて自体の調査に乗り出した. 韓国情報機関に協力する企業人で撮れて 5年間入国と事業行為が禁止されたことに把握された. 幸いにロシア側は弾道ミサイルプロジェクトが分からないようだった. 当時極東一帯で韓・ロシアの間に深刻な外交葛藤があったがその過程で Kさんが流れ弾(流弾)を当たったことだという解釈も出た.

彼は困り果てられた. 大部分の財産がロシアにあったから. 国政院に助けを要請すると私たちが出ればもっと誤解を受けると難色を示した. 外交通商部を尋ねたが自分の言葉をグィダムアドッヌン職員はただ一人もいなかったと言う. ロシア情報局幹部からモスクワ駐在韓国大使館でロシア外交国で公文書を送れば入国禁止が易しく解け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暗示を受けたが, 外交部の入り口は高いだけだった. 国民の請願室職員たちは内容を具体的に言わなければ上級者に会う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話を繰り返した. それでも末端職員に極秘事項を公開することもできないことだった.

彼は早い時間内にロシアに帰って 200億ウォンほどになる資産を処分したかったが, 現地職員月給だけ減らす時間が続いた. 国内金融機関では資金圧迫が始まった.

彼は 2009年 12月 28日青瓦台申聞鼓に正式請願を入れた. 弾道ミサイルプロジェクトを言及しながら入国禁止を緩めてくれと言ってした. しかし請願は法務省に移行されてから, 一週間後国民権益委員会で移ったし, また大統領外交安保首席室, 外交通商部に再割当された. 請願はピンポン・ボールのように来て行ったのを繰り返したし政府は担当部処がどこかも知れなかった. 最後に請願が割当された国政院ではインターネットサイトに ¥"処理完了¥"というメッセージが見えていた.

彼はかんしゃくが裂けて国政院に抗議したら請願担当職員が詳しく説明して見なさいと要求するなど 2年間外交部で経験した事がそのまま繰り返されたと私の身分と請願受付番号を知らせてくれて返事を待ったが反応がなかったしその後からは電話さえ受けなかったと言った.

彼は最近国政院で通報を受けた. 入国禁止措置が弾道ミサイル搬入と無関係なことと見えて国政院で実質的に手伝ってくれる方法がなくてその担当部処も外交部というのだった. Kさんがロシアに入って行く事ができないか 4年目, 最近彼の財産は現地銀行と競争業者に差し押えされたと言う.

彼は今年初だけでも状況が変わることができたとしながら命を捧げて働いてからも国家で捨てられる私のような国民がもっと出なければ良いと言った.

アメリカ人記者が分析する DJ 神話と偏見

[カン・フン記者 nuku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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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핵무기 개발 능력

"한국 핵무장, 6개월이면 충분하다"

레이저 농축 등 초일류 기술에 플루토늄도 많아
단기간에 기폭장치-투발수단 갖춘 핵무장 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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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5대 원전 강국이라는 한국의 핵개발 능력은 어느 정도나 될까?
북핵에 대비해 한국도 자위수단으로 핵무장을 하자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핵개발 능력을 평가한 전문가의 진단이 나왔다.

지난 2009년 5월 북한의 핵실험 장소 위성촬영 사진.ⓒ연합뉴스 ▲지난 2009년 5월 북한의 핵실험 장소 위성촬영 사진.ⓒ연합뉴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NK비전 6월호 기고를 통해 한국이 마음만 먹으면 6개월 이내에 기폭장치와 투발수단을 갖춘 핵무장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한국은 이미 고리, 월성, 영광 등에 21개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며 신고리 등에 7기를 건설하고 4기를 건설 준비 중인 세계 5대 원자력강국”이라고 설명했다. 또 나아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로 흔들린 러시아와 일본을 제치고 세계 3대 원자력강국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 교수는 “한국에 핵무기는 없지만 레이저 재처리 우라늄 농축 기술과 플루토늄 추출 기술, 원심 분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특히 레이저 농축기술은 세계가 괄목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러 있고 유사시 단기간에 핵무장을 할 수 있는 재정적 기술적 역량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우리나라 원전에 쌓인 사용 후 핵연료는 1만 톤을 넘고 이중 플루토늄이 수십 톤으로 플루토늄 폭탄을 대량 생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핵폭탄 한 발에는 플루토늄이 10kg 정도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교수는 “공식적으로 표명하지 않지만 핵무장에 필요한 고농축 핵물질 제조기술은 천연 우라늄 농축에서 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통한 플루토늄 농축에 이르기까지 대량 생산이 가능한 수준”으로 “최소한 6개월 이내에 기폭장치와 투발수단을 갖춘 핵무장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핵폭탄실험을 통한 물리적 공간이 필요하지만 세계 초일류 디지털 시술을 보유한 대한민국의 능력으로는 슈퍼컴퓨터를 사용한 가상실험을 통해 충분히 대체가 가능하며 가상공간에서 핵폭탄 실험을 구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Why] 어느 사업가의 고백 "내가 ICBM (대륙간 탄도미사일)한국에 들여왔다"

조선일보| 기사입력 2011-06-25 14:38 | 최종수정 2011-06-25 20:08 기사원문 광고 러시아서 스파이 혐의로 4년째 입국 금지… 현지 부동산·사업체 다 날릴판

"김대중 정권 시절 러시아 극동지역에 배치됐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고철로 위장해 한국에 가지고 왔습니다. 목숨 걸고 일했는데, 제가 곤경에 처하니 국가는 저를 포기하더군요." 중견 기업인으로 얼마 전까지 국내 한 체육단체의 회장을 맡았던 K씨의 발언이었다. 국가정보원에 확인한 결과,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가 들여온 건 고철 수준에 불과했다"고 했다. "삶을 포기했다"는 K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ICBM 프로젝트에 참여하다

K씨는 1996년부터 한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사업을 했다. 캄차카 반도의 도시 페트로파블로프스크캄차츠키에 그의 회사가 있었다. K씨는 못쓰게 된 선박을 절단하고 고철 형태로 만들어 포스코 등에 납품했다. 사할린 북동쪽에 위치한 캄차카는 미국 본토를 향한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지가 있는 등 전략적 요충지였다. 군사장비를 많이 취급했던 K씨는 러시아 군부 인사들과 가깝게 지냈다.

1997년 러시아 국방부는 그의 회사에 대륙간탄도미사일 폐기 용역을 맡겼다. 길이 30m 둘레 5m가 넘는 탄도미사일을 30cm 이하로 잘게 분쇄하는 일이었는데 고체연료 때문에 매우 위험한 작업이었다고 한다. 미사일 잔해는 러시아 측이 전량 회수해 태평양 등 제3의 장소에 투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러시아는 미국과 맺은 전략무기감축협정에 따라 캄차카 해안에 배치된 일부 탄도미사일을 없애기로 했다. 폐기될 미사일들은 원래 우크라이나 기지에서 유럽 전역을 커버했으나 1991년 우크라이나가 독립하면서 캄차카로 이동 배치된 것이었다. 1956년 미국보다 먼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했던 러시아는 당시 사정거리 5500km 이상의 SS-18, SS-19, SS-25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K씨는 서울에서 국정원 요원들에게 자신이 맡은 용역을 설명했고, 이때부터 국정원과 그는 극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K씨는 국정원의 주선으로 전문가들을 연쇄 접촉했다. 당시 국정원 측은 탄도미사일 모형을 보여주며 훼손을 최소화하고 반드시 확보해야 할 부위를 알려주었다.

K씨는 1997년 여름 도시 한복판에 있는 캄차카 형무소에서 탄도미사일을 처음 보았다. 몸통이 3, 4개 토막으로 잘려 있었고, 엔진 등 추진체 부위는 별도 공간에 보관되어 있었다. 기밀 유지 차원에서 형무소 일부를 작업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당시 캄차카에는 미사일 폐기를 확인할 미국 감시요원도 있었다.

K씨는 "정상적 방법으로는 미사일을 빼내기가 불가능해 보였다"면서 "그 무렵 베트남에서도 탄도미사일을 밀반입하려다 적발돼 이에 협조한 해군 제독이 숙청된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K씨도 러시아 군부 인사를 활용하기로 했다. 폐기 작업을 관여하는 미사일기지 사령관(대령)과 정보 장교들이 주요 접촉 대상이었다. 이들과 자주 어울렸고 용돈도 주었다. 덕분에 그의 회사 차량은 형무소 출입이 자유로워졌다.

프로젝트 진행 상황이 수시로 국정원에 전달됐고 지시도 내려왔다. 국제담당 국장과 러시아 과장을 만나 회의도 열었다. 국정원 간부인 처남도 그리 멀지 않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K씨의 활동을 지원했다.

◆고철 더미에 숨겨 온 탄도미사일

1998년 "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는 달빛 없는 새벽에만 움직였다. 캄차카 상공을 수시로 지나가는 미국과 러시아의 인공위성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파쇄하지 않은 탄도미사일 부품을 트럭에 싣고 12km가량 떨어진 부둣가 야적장으로 운반했다. K씨 회사 소유인 이 야적장에는 한국에 납품할 수천t의 고철이 쌓여 있었다. 그는 고철 더미 사이로 탄도미사일 부품을 재빨리 숨겼다. 이러길 10여 차례, 탄도미사일 1기에 해당하는 부품이 그의 회사 야적장으로 옮겨졌다. "포섭"한 군 간부들에겐 "탄도미사일에 사용된 비철금속을 한국 기업에 팔면 돈이 꽤 된다"고 둘러댔다.

문제는 엔진 등이 있는 추진체 부위였다. 이 부품을 갖고 가겠다고 하면 아무리 친분 있는 군 간부라 하더라도 용도를 의심할 게 뻔했다. 게다가 블라디보스토크에 주둔 중인 러시아 극동함대사령부의 보안부대와 FSB(KGB의 후신)가 K씨의 동선(動線)을 주시하고 있었다. K씨가 총영사관 소속 한국 정보요원과 접촉하는 모습이 목격되었기 때문.

K씨는 달러를 준비했다. 미사일기지 사령관 등 4명에게 모두 70만달러(약 8억원)를 주면서 "엔진에 대해 더 이상 묻지 말아 달라"고 했다. 당시 70만달러는 거금이었다. 방 3개짜리 캄차카 아파트 한 채가 6000달러(약 700만원) 할 때였다.

이렇게 해서 엔진 2개 등 탄도미사일 1기 분량의 핵심 부위가 형무소에서 야적장으로 운반됐다. 여기까지 6개월이 걸렸고 1998년 6월쯤이었다. 이젠 미사일을 한국으로 옮길 차례였다. 캄차카 항구를 떠나는 화물선마다 러시아 정보요원이 승선하는 등 다음 작전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K씨는 야적장에 고철이 모두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 통상 고철 1회 선적 분량은 5000t 정도 되는데 양을 다 채우기 전에 싣고 떠나면 의심을 받기 때문이었다.

1998년 11월 하순 출항이 결정됐고, 길이 130m 되는 러시아 선적(船籍)의 화물선을 빌렸다. K씨 회사의 전용 부두에서 선적이 시작됐다. 15층 건물 부피의 고철 5000t을 배에 싣는 데 꼬박 닷새가 걸렸다. K씨는 고철 더미에 감춰진 미사일 부품 위치를 눈에 꼭꼭 담아 두었다. 한국에서의 신속한 하역을 위해서였다. 러시아 정보 요원들이 선적 작업을 살피러 올 때마다 가슴이 쿵쿵 뛰었지만 다행히 의심을 받진 않았다.

드디어 화물선 닻이 올라갔다. 오호츠크해와 사할린 남단을 지난 배는 동해로 진입했고 한반도를 돌아 일주일 만인 11월 30일 오후 인천항에 접근했다. 배는 무사히 동국제강 전용 부두에 접안했다. K씨는 출항 직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 항공편을 이용해 한국에 들어와 배를 기다렸다.

◆작전은 모두 세 차례

국정원도 긴박하게 움직였다. 1961년 국정원 창설 이래 가장 큰 프로젝트가 성사되기 직전이었다. 요원들이 먼발치서 숨죽이며 하역 작업을 지켜봤다. K씨는 탄도미사일이 은닉된 부분과 순수 고철 부분을 신속하게 분리 하역했다. 사흘 만에 고철을 모두 풀어놓은 화물선이 항구를 떠났다. 국정원은 K씨에게 탄도미사일 부품을 대전 항우연까지 직접 운송해줄 것을 주문했다. 국정원이 "물건"을 인계받을 경우 주변 열강의 감시위성에 들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19t짜리 대한통운 트럭 2대에 탄도미사일 부품이 꽉 들어찼다. 트럭 2대가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를 거쳐 대전을 향해 전속력으로 내달렸고, 국정원의 헬리콥터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트럭의 뒤를 쫓았다. 4시간 만에 트럭은 대전 인근에 있는 국정원 건물로 빨려 들어갔다. 1998년 12월 2일 해질 무렵이었다.

K씨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성대한 자축연이 이어졌고 국정원 요원들은 전무후무한 쾌거라고 기뻐했다. VIP에게도 작전 성공 사실이 곧바로 보고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듬해 3월 13일 당시 이종찬 국정원장은 K씨에게 표창장을 주었다. "특히 국가안전보장에 기여한 공이 크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K씨와 국정원의 프로젝트는 이후 두 차례 더 진행됐다. 2000년 12월 2일에는 탄도미사일 세부연결 부품을 가져왔고 2001년 11월 10일에는 엔진 3개와 노즐 연결 부품을 들여왔다. K씨는 "국정원측은 당시 반입한 탄도미사일을 복원해 위성 개발에 참고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국정원은 러시아의 다른 전략무기도 가져와 달라고 요구했지만 K씨는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적발되면 사업은 고사하고 목숨까지 위태로워지는데 쉽게 할 일이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

K씨는 본업에 전념했고 사세는 번창했다. 고철 수입과 선박 절단 사업 외에도 부동산 개발 및 여행 사업을 벌였다. 캄차카에 호텔 건립을 추진하는 등 계열사 5개를 두었다. K씨는 "프로젝트를 성공하고 국정원에서 격려금 1만달러를 받았지만, 워낙 사업이 잘됐기에 국가를 위해 일했다는 데 만족했다"고 했다. 러시아 미사일기지 사령관 등은 뇌물을 받고 얼마 뒤 모두 전역해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돌발 상황과 외면하는 정부

그렇게 6년이 흘렀다. 문제는 2007년 4월 벌어졌다. K씨가 서울에 왔다가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으로 되돌아가는데 입국이 금지된 것. 당시 러시아 극동사령부 고위 관계자에게 경위를 물어보니 "스파이와 테러리스트 혐의를 받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K씨는 계열사로 둔 법무법인을 통해 자체 조사에 나섰다. 한국 정보기관에 협력하는 기업인으로 찍혀 5년간 입국과 사업 행위가 금지된 것으로 파악됐다. 다행히 러시아 측은 탄도미사일 프로젝트를 모르는 듯했다. 당시 극동 일대에서 한·러 간에 심각한 외교 갈등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K씨가 유탄(流彈)을 맞은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그는 난감해졌다. 대부분의 재산이 러시아에 있었기 때문. 국정원에 도움을 요청하자 "우리가 나서면 더 오해받는다"며 난색을 표했다. 외교통상부를 찾아갔지만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는 직원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러시아 정보국 간부로부터 "모스크바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러시아 외교국으로 공문을 보내면 입국금지가 쉽게 풀릴 수 있다"는 암시를 받았지만, 외교부의 문턱은 높기만 했다. 민원실 직원들은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상급자를 만날 수가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렇다고 말단 직원에게 극비 사항을 공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빠른 시간 내에 러시아로 돌아가 200억원가량 되는 자산을 처분하고 싶었지만, 현지 직원 월급만 축내는 시간이 계속됐다. 국내 금융기관에선 자금 압박이 시작됐다.

그는 2009년 12월 28일 청와대 신문고에 정식 민원을 넣었다. 탄도미사일 프로젝트를 언급하면서 입국금지를 풀어달라고 했다. 그러나 민원은 법무부로 이첩됐다가, 일주일 뒤 국민권익위원회로 넘어갔고, 다시 대통령 외교안보수석실, 외교통상부에 재배정되었다. 민원은 탁구공처럼 왔다갔다를 반복했고 정부는 담당 부처가 어디인지도 몰랐다. 마지막으로 민원이 배정된 국정원에선 인터넷 사이트에 "처리 완료"라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그는 "울화통이 터져 국정원에 항의했더니 민원 담당 직원이 자세히 설명해보라고 요구하는 등 2년간 외교부에서 겪은 일이 그대로 반복됐다"며 "내 신분과 민원접수번호를 알려주고 회신을 기다렸으나 반응이 없었고 그 뒤부턴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최근 국정원에서 통보를 받았다. 입국금지 조치가 탄도미사일 반입과 무관한 것으로 보여 국정원에서 실질적으로 도와줄 방법이 없고 그 담당 부처도 외교부라는 것이었다. K씨가 러시아에 못 들어간 지 4년째, 최근 그의 재산은 현지 은행과 경쟁업자에게 압류되었다고 한다.

그는 "올해 초만 해도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다"면서 "목숨 바쳐 일하고도 국가에서 버림받는 나 같은 국민이 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미국인 기자가 분석하는 DJ 신화와 편견

[강훈 기자 nuku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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