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이혼’하는 日후쿠시마 부부들
방사능 오염 사고 이후 후쿠시마에서 태어난 귀 없는 토끼.
동일본대지진 이후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일본에서 결혼과 가족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큰 재해가 또 언제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혼자 외롭게 지내기보다 배우자, 자녀 등 가족과 함께 있는 편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것인데요.
초식남 등 결혼에 무관심했던 일본 젊은이들이 동일본대지진 영향으로 ‘혼활(婚活: 콘카츠, 결혼활동)에 적극 나선다는 분석도 제기됐습니다. 그런데 시사주간지 슈칸아사히(週刊朝日) 최신호가 이와는 정반대의 내용을 보도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한 방사능 오염사고가 장기화되면서 부부가 이 문제로 갈등을 겪다 헤어지는 ‘방사능 이혼’이 두드러진다는 내용입니다. 방사능 문제가 건강뿐 아니라 이제는 일본의 가정생활에도 위기를 초래하는 것일까요?
방사능으로 인한 가족 내 불화와 갈등 문제는 사실 일본의 다른 언론에서도 지적된 바 있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세포분열이 왕성해 방사능 오염에 노출될 경우 더 위험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엄마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방사능 오염물질로 인한 체내피폭으로 변형된 유전자의 모습. 원래 X자 형태가 정상이지만 원형 등 달라진 형태가 보인다.
어린 자녀를 둔 일본의 엄마들은 아이 손을 잡고 원전 반대와 사태 수습을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내에게 “유난을 떤다”며 타박하는 남편이 적지 않아서 부부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는데요.
슈칸아사히는 방사능 오염이 일본 여성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며 이 같은 문제로 이혼에 이른 부부들의 실제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또 잡지는 ‘방사능 이혼’ 문제와 함께 지진 구호에 나선 자원봉사자와 이재민이 결혼한 사례에 대해서도 소개했습니다.
‘방사능 이혼’의 사례 중 하나로 소개된 것은 주부 Y씨(41)의 얘기입니다. Y씨는 잡지 측에 “이번 지진 재해를 통해 남편이 얼마나 돼먹지 않은 인간인지 알게 됐다”며 강한 분노를 표출했다는데요.
Y씨는 “원자력 발전을 원망했었는데 저런 사람(남편)과 확실히 헤어지도록 결심을 하게 된 것만큼은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Y씨는 방사능 오염사고가 터지기 전만 해도 후쿠시마(福島)현에서 남편, 초등학생 아들, 유치원생 딸과 함께 사는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교토의 불 축제에서 후쿠시마 지역의 소나무를 사용하려다 방사능에 대한 불안이 증폭돼 취소된 소식을 전하는 일본 뉴스 화면.
하지만 그녀는 현재 후쿠시마현에서 멀리 떨어진 큐슈(九州)의 히로시마(広島)현에서 두 자녀만 데리고 피난생활을 하는 중입니다. 남편과는 헤어진 상태로 지내고 있습니다. Y씨의 가족에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Y씨도 방사능 오염사고 직후엔 집이 사고 현장에서 50km 이상 떨어진 곳에 위치해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본 정부가 위험지역으로 통보한 범위는 반경 30km까지였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거짓말이 반복되고 언론에선 방사능 오염과 피해가 갈수록 확대된다는 보도가 나오자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두 자녀에게 집밖에서 놀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체내피폭을 우려해 식재료 출처가 의심스러운 학교 급식도 먹지 않게 했습니다.
이런 조치들을 취했지만 불안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습니다. 아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가족과 함께 먼 지역으로 이사 간다는 얘기도 들려왔습니다. 남편은 이사를 고민하는 그녀에게 “괜찮다”며 무관심한 답변만 되풀이할 뿐이었습니다.
후쿠시마 지역에서 방사능 오염이 의심되는 소가 867마리에 이른다는 소식을 전하는 일본 뉴스 화면. 일본에선 세슘 소고기 파문으로 먹을거리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그러던 중 Y씨는 어린 자녀를 둔 지인이 10만엔 이상을 호가하는 방사선량 측정기를 구입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데요. 일본에선 정부의 발표를 믿지 못해 이처럼 시중에서 판매하는 방서선량 측정기를 구입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습니다.
Y씨도 아이들이 걱정돼 이 기기를 샀습니다. 그런데 집에 방사선량 측정기가 있는 것을 본 남편이 불같이 화를 내며 부부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왜 그런 비싼 물건을 샀냐”며 따졌습니다.
남편은 또 “방사능에 과민반응을 할 필요 없다. 그런 와중에도 애들은 다 자란다”고 Y씨가 오버한다고 탓했습니다. 자녀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해 샀다는 그녀의 설명도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남편은 Y씨에게 “내 돈으로 그런 비싼 물건을 사지 말라”면서 반품을 요구했습니다. Y씨가 이를 거절한 뒤 이들 부부는 방사선량 측정기 문제로 거의 매일 부부싸움을 하며 갈등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도쿄에서 시민이 방사선량 측정기로 직접 오염 정도를 확인한 모습. 일본 정부의 축소, 은폐 의혹으로 인해 시민들이 직접 이 같은 측정기를 구입해 방사능 오염을 경계하고 있다.
Y씨는 “남편이 근처에 사는 시부모까지 데리고 와서는 왜 그런 비싼 물건을 사느냐, 당장 반품하라면서 끊임없이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그런 주제에 여진이 발생하면 (남편이) 나와 애들은 방치해두기 일쑤”라는 얘기도 덧붙였습니다.
Y씨는 “나는 필사적으로 애들을 지키려고 갖은 애를 다 쓰는데 나중에야 ‘너희도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말만 한다”며 “이렇게나 돼먹지 않은 사람이었나를 깨달으면서 모든 게 나쁘게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에 대한 불만은 그렇게 계속 쌓였습니다.
결국 그녀는 지난 6월 초 남편에게 이혼서류만 남긴 뒤 두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와 버렸습니다. Y씨는 “원자력 때문에 나와 아이들의 삶도 바뀌었다”며 “후쿠시마의 친구에게 들었는데 현지에선 요즘 방사능 문제로 갈등이 생겨 갈라서는 부부가 많다더라”고 말했습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 반경 20km 안쪽의 위험지역 해안가 마을에 거주했던 30대 주부 T씨도 방사능 오염 때문에 이혼을 결심한 사례입니다. T씨는 원전에서 방사능 오염 사고가 발생한 뒤 남편과 계속 부딪혔다고 털어놓았는데요.
방사능 오염물질로 인한 체내피폭을 당할 경우 발생하는 염색체 변이의 시뮬레이션. 절단된 염색체의 일부가 다른 염색체와 결합해 돌연변이를 일으켜 암 유발, 기형아 출산 등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
T씨의 남편은 후쿠시마 제1원전의 작업원이라고 합니다. 정부가 설정한 대피지역에 살던 마을이 포함되면서 그녀의 가족은 같은 마을에 살던 시부모와 함께 사고 현장에서 58km가량 떨어진 후쿠시마현 코리야마(郡山)시의 친척집에서 피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남편이 사고가 터진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작업원으로 다시 일해보자는 권유를 받고 현장으로 투입되며 불거졌습니다. 남편이 사실상 외부와 차단된 원전으로 들어가 작업하며 T씨와 시부모 사이에 방사능을 둘러싼 갈등이 커진 것입니다.
T씨와 남편 사이엔 초등학생 외동딸이 있는데요. 그녀는 방사능 오염 사고 이후 딸이 부쩍 머리가 아프거나 콧물이 자주 나는 것을 보면서 피폭을 당한 것이 아닌지 노심초사하게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부모는 달랐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 오염물질과 피폭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딸에게 밖에서 놀지 말라고 주의를 주면 시부모는 “애가 밖에 나가고 싶어 하는데 왜 막느냐”며 T씨를 이상한 여자로 취급했습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의 오염수 처리장치에 또 다시 이상이 발생해 가동을 중단시켰다는 소식을 전하는 일본 뉴스 화면. 일본 방사능 오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시부모는 “원전 근처에 살 때에도 밖에서 놀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여기는 원전에서 멀어서 괜찮다”고 며느리가 과민반응을 보인다고 몰아세웠습니다. 남편은 T씨가 전화로 이런 불만을 얘기할 때마다 “여기도 일 때문에 난리”라며 화만 냈다고 합니다.
때마침 도쿄전력이 대피 지역 주민에게 세대당 배상금 100만엔을 임시로 배분한다는 얘기가 나오자 T씨는 그 돈으로 집을 임대해 시부모와 따로 살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행여 시부모의 간섭 때문에 방사능에 피폭을 당할까봐 우려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부모는 “우리가 받을 100만엔과 합쳐서 더 넓은 집을 빌리자”며 같이 살자고 요구했습니다. T씨는 시부모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남편에게 조치를 취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나도 원전에 있으니까 네가 부모님과 함께 지내줘야 안심”이라는 대답만 들었습니다.
이들은 결국 이 문제로 전화할 때마다 부부싸움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T씨는 “이젠 이혼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 딸만 데리고 집을 나왔다고 합니다. 그녀는 후쿠시마현에서 따로 집을 마련한 뒤 아르바이트로 생계비를 버는 중입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 복구 작업을 진행한 일본 자위대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텐트 등을 보관 중인 사실을 전하는 일본 뉴스 화면.
T씨는 “더 이상 남편 얼굴도 보고 싶지 않은데 이혼도 해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나타냈습니다. 방사능 오염에 대한 인식 차이가 고부 간 갈등을 초래하고 부부까지 갈라서게 만들며 가정파탄의 결과를 낳은 셈입니다.
일본에선 1995년 발생한 한신대지진 당시에도 비상 상황에 직면한 부부가 가치관 차이로 이혼하는 사례가 이어지며 ‘진재(震災) 이혼’이라는 말이 등장한 바 있습니다. 잡지는 동일본대지진의 경우 방사능 오염에 대한 공포까지 겹치면서 갈등이 더욱 커졌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현지에선 방사능 오염 문제로 이혼을 고려 중이라는 부부들의 고민 상담이 증가세를 나타냈다는데요. 이혼 상담건수 추이만 봐도 지진 발생 이전인 2월과 비교할 때 3월엔 80% 감소, 4월엔 70% 감소였으나 5월에 20% 증가로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피해가 워낙 커서 처음엔 부부 문제를 참고 참다가 한꺼번에 폭발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상담 내용 중에도 지진 피해, 방사능 문제로 인한 가치관 차이나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다” “혼자 도망쳤다” 등 배우자에 대한 불만이 많다고 합니다.
지난 8월 1일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1만 시버트 이상의 방사선이 검출된 소식을 알리는 일본 뉴스 화면. 인간이 이 정도의 방사선을 쐬면 즉사할 수 있다.
지진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땅 위에 원자력발전소 건립을 강행한 일본의 무모한 욕심. 사고 이후엔 왜곡과 은폐로 방사능 오염의 폐해를 키운 무책임한 태도. 그 두 가지가 낳은 결과물은 전 세계 환경을 파괴하고 이제는 일본의 가정까지 파괴하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