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단오제
935년 시초 이래 1000년의 역사가 있는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1930년대 일제에 의해 훼손되고 축소 되었지만 시장 상인들을 중심으로 은밀하게 진행되어
해방후에도 전승되고 있다
조선의 황국신민화 [皇國臣民化 정책은
한국인을 일본 천황의 신민으로 만드는 일종의 민족말살 정책이다
제도화된 종교와 다르게 농경생활에 근원을 두는 민속신앙은 일본 神道와 융합되는 것은 어렵다
일제는 민속신앙 뿐 아니라 불교 기독교 등 조선의 종교단체에도 神社건립해 참배를 강요하여
심한 반발을 불러 왔다
일제의 종교정책
1面 1 神社 건립으로 전국 곳곳에 神社를 건립해 참배를 강요 하여 천황의 신민으로 교육하고
2차대전으로 일본의 전시체제에 한국인을 끌어들이고 전쟁의 수단으로 한국인을 이용 하게
됩니다
풍수 지리의 나라 .조선
풍수를 초간단하게 소개하면
산 나무 바위 등 자연을 의인화 하여 사람으로 바라 보았다
해 [日]달 [月]은 -눈
바람 -호흡
천둥 -음성 [목소리]
초목 -체모
江-혈관
토양 -몸 전체
사람이 病이들면 치료를 받듯이 자연 또한 마찬가지 이다 라고 인식 합니다
1941년 필리핀 포로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던 일본군 대장
야마시타 도모유키
그는 영어가 유창했던 한국인 신세우氏의 변론 덕분에 종전후 전범재판으로
총살형에서 교수형으로 바뀌게 되었다 시체가 온전하게 되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는 죽기 전에 은인 신세우氏에게 고백을 하였는데
창덕궁 인정전 뒷산
지하18m에 석침 7개를 박았고
한반도 전역에 모두 365개 석침 혈침 [穴針]을 묻었다고 하였다
야마시타氏가 알려 주었던 장소에
인위적으로 만든 견고한 화강암 석침이 묻혀 있었는데 사람으로 치면 단중혈 .가슴과
가슴 사이의 혈이다
이것은
경복궁 수백채의 건물을 헐어내고 조선 총독부의 건설 현장 입니다
경복궁의 이 터는 풍수의 해석으로 자궁에 해당 됩니다 .즉 민족을 강간한 것입니다

이 바위는
충남 서산시 도비山 최정상에 있는 바위 입니다
이것을 토지 측량 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는
바위를 뚫어 석침을 넣고 그 위에 석회를 발랐다는 것입니다

일제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일제가 조선의 山川에 저주의 말뚝을 박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 일은 식민지 기간 동안 계속 이루어졌고
때로는 왜곡된 시선으로 폄화 되기도 했지만
일본은 그 당시 확고한 신념처럼 자리 잡고 있었던 조선인의 풍수 사상을 역이용했고
민중들에게 큰 상처를 입히는
말하자면 일본의 고도의 심리전이었습니다
일제가 堂山祭의 대상이 되는 성황당 堂山나무를 파괴 했던 일 하나를 생각해도
조선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신앙과의 단절 어쩌면 그 이상의 단절을 느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