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날의 전투를 이끌었던 장교가 나를 찾아왔다.그는 비교적 젊은 편이었으며 양반들의 긴 도포를 입고 있었다……
그는 자기들이 어떤 보람 잇는 일을 하고 잇음을 시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우리는 어차피 죽게 되겠지요.그러나 좋습니다.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보다는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어느 한 중년의 신사가 나를 찾아오자그는 자리를 떴다.그 신사는 한 관리를 대동하고 왔는데 지위가 매우 높은 사람이었다.나는 그가 이 지역의 의병대장임을 곧 알 수 있엇다…..나는 우선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그는 나의 사과를 즉시 막아버렸다.그는 오히려 그 날 아침 자기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의 부하들이 외국인에 대한 약속을 어길 뻔했던 일을 심히 불평했다…….."우리 의병들은 무기가 없습니다….총은 쓸모가 없으며 화약도 이제는 거의 떨어졌습니다....5천달러든,1만달러든 무기만 구해주십시오.."
(그러나 맥켄지의 조선인 호위 일꾼들도 총을 의병들에게 주라고 졸라댔지만, 맥켄지는 언론인의 의무상 의병의 위치를 일본군에 주는 것을 할 수 없는 것처럼,그러한 일을 할 수 없었다.)
p.191
(의병이 제천에서 승리를 이루자 일본군은 제천을 불태워 지도상에서 완전 없앴다.주민들은 집도 없이 언던에 앉아 있게 되었다.)

1915년 채응언은 군자금 모집중 밀고로 발각 일본군과의 격투 끝에 체포되었다 채응언의 체포로 국내에서의 의병활동은 끝을 맺게 된다 이때 체포된 채응언이 일본 헌병과 함께 맨발에 수갑을 찬 모습으로 찍은 사진이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