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조선 후기 石北 申光洙(1712~1775년)의 문집인 石北集에 나
오는데 申光洙가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임진왜란은 조선, 일본, 중국의 군사력이 충돌한 國際戰으로 그 전란의
충격과 피해가 엄청난 비극이면서 동시에 동양 삼국의 무술이 경합을 벌인
무대였다.
흔히들 조선의 활, 중국의 槍, 일본의 칼을 언급하는데 무를 천대한 조선은
소수의 수련자를 통해 무술이 전수되어 왔다. 石北集에는 그런
逸話가 적혀 있다.
옛날 한 문인이 五臺山의 寺刹에서 글공부를 하며 지내다가 그 곳 스님
과 친해졌다. 스님이 어느 날 밤에 밤새 哭을 하며 울어 그 이유를 물으니
그 스님은 원래 임진왜란 때 카토 키요마사의 병사로 조선에 출전한 일본
인이었다.
일본군 카토 키요마사의 군대는 조선의 수도인 한성을 지나 함경도로 북상
하는데 뛰어난 정예병을 선발해 함경도를 공격하여 경성에 이르렀다. 어느
날 일본군들이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언덕 위에 삿갓을 쓴 조선인이 보여
총을 쏘니 조선인은 탄환을 모두 가볍게 막아내고는 언덕을 바람같이 내려
와 일본군을 풀을 베듯이 베어버리니 모두 죽고 단 두 명만 남았다. 그가
말하기를 “너희들은 怨讐이지만 모두 죽일 수는 없구나. 지금부터 나에게
복종해라.” 일본군 2명은 조선인의 검술에 놀라 10년 동안 스승으로 모시
고 따라다녔으나 스승의 이름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에게 검술의 비법
을 모두 배운 어느 날 스승이 신을 신으려 몸을 낮추자 일본군 하나가 스승
을 베고는 “이제야 怨讐를 갚았다.”고 하였다. 다른 제자는 분노하여 스승
을 죽인 놈을 베어 스승의 복수를 하고는 스님이 되어 오대산의 寺刹에
있으며 스승의 제사를 지냈는데 어제 밤이 스승의 忌日이라 울었다고 하면
서 자신의 검술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 逸話가 사실이라고 믿기는 어려우나 武를 賤待한 조선시대에도
산중에서 師弟간에 무술이 전해졌음을 알 수 있고, 일본인들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겉으로는 복종하면서 뒤에서 칼을 뽑는 인간과 스승을 끝까
지 모시는 절대 충성의 모습이다. 물론 이 逸話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일본인의 두 가지 특성을 잘 묘사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