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눈밭이 우리를 삼켰다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매일이 죽음과의 경계였다
이름이 아니라 번호로 불렸다
손끝이 얼어붙어 나무도 쥘 수 없었다
동지의 시체 위에서 잠을 청했다
태양을 본 날은 축복이었다
한 조각의 빵이 전부였다
굶주림이 인간성을 삼켰다
얼음 위에 묻힌 눈물조차 얼었다
살아 돌아올 줄 몰랐다
언 손으로 곡괭이를 쥐었다
시체를 메며 눈보라 속을 걸었다
사람의 온기가 가장 그리웠다
하루하루가 벌이었다
시체 더미에서 살아 있는 자를 찾았다
해방 소식이 거짓말처럼 들렸다
겨울은 지옥보다 길었다
수용소의 공기는 냉기와 절망뿐이었다
내일이란 말이 무의미했다
눈 덮인 철조망이 내 세상이었다
병들어도 약은커녕 눈을 핥았다
말보다 눈빛으로 통했다
동료가 쓰러지면 눈으로 덮었다
시체의 옷을 벗겨 입었다
인간이 아닌 짐승처럼 취급받았다
뼈마디가 얼음처럼 갈라졌다
한숨이 하얗게 얼어 공중에 흩어졌다
굶어 죽은 이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나무껍질과 쥐를 먹었다
죽지 않기 위해 일했다
생환은 기적이었다
일본으로 돌아왔어도 마음은 수용소에 남았다
꿈속에서 아직도 눈보라가 분다
친구의 이름을 부르다 잠에서 깬다
얼음처럼 굳은 손을 펴며 울었다
살기 위한 죄책감이 평생을 따라다녔다
소련 병사들의 눈빛은 냉혹했다
말 한마디로 생사가 갈렸다
인간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알았다
눈 덮인 대지에 일본의 노래가 메아리쳤다
하루의 끝은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해가 떠도 따뜻하지 않았다
凍傷으로 잘려 나간 손가락이 수두룩했다
배급의 빵 냄새가 천국 같았다
돌아간다는 희망만이 유일한 불씨였다
시베리아의 바람은 영혼까지 얼렸다
생환 후에도 밤마다 눈 속에 갇혔다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이 남았다
결국 우리는 죽어서도 그 눈 속에 있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밤마다 우리는 얼어붙은 곡괭이를 들고 끝도 없는 동토 속으로 끌려 나갔고, 그 속에서 인간이라는 감각이 점점 사라져 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옆에 있던 동료가 차갑게 식어 있었고, 우리는 그를 눈으로 덮은 뒤 아무 말 없이 다시 삽을 들었다.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서로의 눈빛이 짐승처럼 바뀌는 순간, 인간의 존엄이라는 말이 얼마나 허망한지 깨달았다.
시베리아의 하늘은 낮에도 어두웠고, 그 어둠은 우리 마음속까지 스며들어 희망의 불씨를 꺼뜨렸다.
손가락이 부러지고 얼어붙어도 일손을 멈출 수 없었는데, 멈추면 바로 총구가 등을 겨눴다.
눈보라 속에서 들려오는 울음인지 바람소리인지 모를 소리에, 나는 내가 살아 있는지조차 의심했다.
凍傷에 걸린 다리를 스스로 잘라내며 피가 얼어붙는 그 냉기를 지금도 몸이 기억하고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건, 죽음이 오히려 해방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름 대신 수용소 번호로 불렸고, 그것이 우리의 존재 전부였다.
고향의 어머니 얼굴을 떠올리면 잠시 따뜻해졌지만, 눈을 뜨면 다시 눈밭뿐이었다.
추위보다 무서운 것은 배고픔이었고, 배고픔보다 더 무서운 것은 동료의 죽음이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얼어붙은 감자 하나를 나누며 우리는 그것이 마지막 식사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쓰러진 이의 옷을 벗겨 입히며, 그것이 생존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쓰라렸다.
하루 종일 나무를 베고 돌을 나르며도 우리는 살아 있다는 말을 믿지 못했다.
밤이 되면 눈 속에서 서로의 체온으로 몸을 녹이며 잠을 청했다.
소련 병사들의 눈빛에는 연민도 증오도 없었고, 그저 의무감만이 있었다.
눈발 속에서 일본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면 눈물이 얼어붙었다.
돌아가고 싶다는 말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던 나날이었다.
생존자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죽은 자는 눈 속에서 평온해 보였다.
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뼈가 아픈 게 아니라 영혼이 아팠다.
내일은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매일 아침마다 찾아왔다.
시체를 옮기다 쓰러져도, 누군가 그 시체 위에 또 나를 덮었을 것이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로 생사가 갈리는 세상에서 우리는 침묵을 배웠다.
그곳에서는 기도도 얼어붙었다.
수용소의 겨울은 인간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지워버리는 계절이었다.
해가 떠도 따뜻하지 않았고, 웃음이 터져도 그건 미친 듯한 울음이었다.
고향의 벚꽃이 아니라 시베리아의 눈송이가 내 마지막 기억이 될까 두려웠다.
친구의 시체 위에서 몸을 녹이며, 그 온기가 마지막 작별 인사였다.
배급의 빵 냄새 하나가 천국보다 달콤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자신이 전쟁의 패자가 아니라, 인간의 끝을 본 증인이라 생각했다.
밤마다 눈 속에 묻힌 이름들을 되뇌며 살아 있는 자신을 다그쳤다.
그곳의 공기는 숨을 쉬는 것도 죄처럼 느껴질 만큼 무거웠다.
생환의 순간, 나는 기쁨보다 공허함을 느꼈다 — 너무 많은 이들이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 땅을 밟고도 발밑의 눈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살아 돌아왔지만, 내 일부는 시베리아의 바람 속에 남았다.
눈보라 속에서 서로 부둥켜 울던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군인도 적도 아니었다.
살기 위해 거짓말을 했고, 살아남고 나서 그 거짓이 내 가슴을 짓눌렀다.
생존이 죄처럼 느껴져, 돌아온 뒤에도 늘 죄의식에 시달렸다.
귀환선 위에서 울던 그 눈물은 해방의 기쁨이 아니라 미안함이었다.
수용소의 벽보다 더 차가운 것은 사람들 사이의 침묵이었다.
고향에 돌아와도 사람들의 시선 속에 시베리아의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내 몸은 돌아왔지만, 마음은 아직 그 얼어붙은 평원에 묶여 있다.
죽은 자를 묻을 땅조차 얼어붙어 있었고, 우리는 눈 위에 돌무더기를 쌓았다.
동상으로 잘려 나간 손가락보다, 기억으로 잘려 나간 마음이 더 아팠다.
눈 덮인 들판에서 불러 본 일본 노래는 고향의 바람처럼 잠시 따뜻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우리의 싸움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시베리아의 바람이 얼굴을 때릴 때마다, 나는 아직도 그곳의 냄새를 느낀다.
생환의 길은 귀환이 아니라 속죄의 길이었다.
그 추위는 육신을 얼렸지만, 부끄러움은 평생을 태웠다.
나는 결국 살아남았지만, 시베리아는 아직도 내 안에서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