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신문에서, 일부 시민단체에서, 심지어 언론학계에서도 포털의 사회적 책임을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을 하는 어떤 단체, 어떤 사람도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말하지는 않는다. 포털의 사회적 책임이라는게 무엇일까? 자신의 견해와 다른 뉴스나 댓글이 올라오는 것을 못하게 하는 것이 사회적 책임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것을 사회적 책임이라고 했다면 그 주장을 한 단체 혹은 사람들은 ‘사회적’ 책임이라는 용어를 남발한 옹졸한 사람임이 분명할 것이다.
적어도 포털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했을 때는 그에 부합하는 명분과 뚜렷한 사회적 의의가 있어야 한다. 사회적 책임이 무엇이고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이 있어야 한다. 가령 최소한 명예훼손과 같은 구체적인 피해에 따른 책임과 해결방안을 논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
포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나름의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 법은 포털의 사회적 책임을 적시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법원은 포털기사나 댓글 등을 통한 인격침해, 명예훼손 등이 발생할 경우 적절한 배상을 하도록 하는 판결을 내렸다. 뉴스와 댓글 등에 대한 포털의 책임을 처음으로 법적으로 확인한 판결로서, 포털이 미디어로서 기능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그에 따라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였다.
이 판결은 양날의 칼과 같다. 잠재적 혹은 명시적 위법성을 방지한다는 점에서는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한 방편이 된다. 그러나 이 판결은 포털이 잠재적으로 위협이 되는 기사에 대해 기사삭제, 심지어 댓글 삭제와 같은 적극적인 편집권을 행사하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로 인해 포털미디어는 뉴스 CP와의 계약에서 뉴스 콘텐츠 삭제권을 협약할 필요도 없어졌을 뿐더러, 향후 뉴스 편집에서도 완전한 독립성을 부여받게 되었다. 아슬아슬하게는 검열의 효과를 가질 수도 있게 됐다. 결국 이 판결은 사회적 책임을 위해 포털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결과를 가져온 셈이 되었다.
그런데 촛불을 계기로 이른바 조중동의 포털 책임론에 이런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흥미롭다. 지금까지의 법리와 포털의 전략을 미뤄볼 때, 조중동의 포털 책임론은 아고라로 인해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광고를 되찾는 것보다 내줘야 할 게 더 많은 주장을 스스로 하고 있다. 결국 조중동, 아니 다른 어떤 매체도 포털미디어의 편집행위에 대해 말할 도덕적 법적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당연히 제기되어야 할 포털 책임론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포털이 신문이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조중동의 다음 기사중단 선언, 그 다음은?
최근 조중동은 한 목소리로 자사의 뉴스를 다음에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조중동이 특정 포털에 뉴스를 주지 않겠다는 것을 굳이 선언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사자간 계약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실 논평거리도 되지 않는 사안이다.
그러나 이 문제와 관련해 당연히 문제제기되어야 함에도 전혀 이야기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어느 한 신문이 아니라 조중동이라는 신문시장의 절대 강자 3인방이 특정 포털미디어를 대상으로 집단 카르텔을 형성했다는 사실이다. 이 행위의 법적인 문제를 너머, 자신의 입장과 다른 매체 혹은 집단, 개인에 대해 여론시장의 다수집단이 모종의 집단행동을 한 것은 그 자체로서 다수자의 횡포이자 민주주의의 후퇴이다. 그 자체로서 ‘포털 길들이기’이며, 다음 뉴스 이용자를 담론의 적으로 돌리는 교만이다.
어쨌든 이 선언은 7월7일자로 실현되었다. 이제 다음 이용자들은 다음에서 조중동 기사를 보지 못할 것이다. 조중동 기사를 보고 싶으면 해당 닷컴사에 직접 가든지, 다음이 아닌 다른 포털에 가야 한다.
이제 흥미로운 것은 이 선언에서 누가 이익을 볼 것인지를 지켜보는 것이다. 이제 다음은 주요 뉴스공급처를 잃은 대신, 콘텐츠 수급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조중동은 자사의 뉴스를 주지 않아 다음을 의제설정에 있어 수세에 몰리게 할 수 있는 대신, 거래 대가와 다음에서의 광고 수익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자사의 뉴스를 노출하는 주요한 창구 하나를 놓칠 것이다.
누가 더 많은 이익을 챙겨갈지, 아니면 누가 더 많은 걸 잃을지 주판알은 각자 알아 튕겨보기 바란다. 중요한 것은 뉴스 제공 중단 그 다음이다.
네이버의 뉴스편집 중단?, 이상론에 갖힌 네이버
이런 와중에 네이버는 뉴스편집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흥미로운 대목이라 앞으로 주목해볼 만 하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재 네이버는 여전히 자신이 하지 않겠다는 뉴스편집을 하고 있다. 그런 한에서 “네이버는 언론이 아니다”라는 대외명분을 스스로 뒤집고 있다.
그러면 향후에라도 네이버는 과연 전혀 뉴스편집을 하지 않을까? 솔직히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왜 그런고 하니 이 말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네이버 안마당을 여러 언론매체에게 개방해야 하는데, 기업의 안마당을 타자에게 내놓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당키나 한 일일까? 그 안마당은 조중동에게만 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최소한 수십여개의 뉴스 CP에게도 똑같이 안마당을 내줘야 한다. 지켜볼 일이지만, 실현되기 힘든 이상론에 스스로 발목이 잡힌 꼴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네이버가 이런 지경에까지 오게 된 데에는 ‘기계적 중립’이라는 실현 불가능한 가치를 자사 방어 논리로 활용해 왔기 때문이다. 기실 뉴스를 다루는 한 기계적 중립은 존재할 수 없다. 미디어가 기계적 중립을 취한다 하더라도, 뉴스가 다루는 사안 자체가 이미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기계적 중립은 그 자체로서 편향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외명분으로서 “우리는 미디어가 아니다”, “기계적 중립을 지향한다”라는 전략은 결국 자신의 논리를 궁색하게 하고, 포털의 문화와 사회적 위치를 후퇴시키는 부메랑일 수밖에 없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지 않으며, 수박의 줄 지운다고 호박되지 않는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지 않고, 수박의 줄 지운다고 호박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포털의 뉴스 서비스와 관련된 주장에는 논리적 모순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숨어 있는게 아니라 ‘드러나’ 있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이런 몰상식한 담론은 사회적 의제는 ‘나’만 독차지해야 한다는 ‘1등주의 저널리즘’ 의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매체환경 변화가 가져오는 저널리즘의 변화 자체는 제쳐두고 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중동의 전략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바로 그 지점에서 어떻게 하면 전략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네이버와 마찬가지로 때로는 호박에 줄긋고, 또 때로는 수박의 줄을 지우는데 열중해서는 논리적 자가당착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국면을 모면하려는 얇은 계산만으로는 이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를 넘어서지 못한다. 공룡은 결코 힘이 없어 멸망하지 않았다.
문제의 핵심은 인터넷이 융합의 매체이며 쌍방향적이라는 너무나 자명한 이치에 있다. 뉴스와 매체간 일대일 관계가 해체되면서 환경-미디어-콘텐츠가 제각각으로 절합(articulation)하는 융합의 한 가운데에 뉴스 생산과 소비행위가 일어나고 있다. 거기에는 또한 지금까지 알리지 못한 진실이 공공연하게 이야기되고 있다. 사실상 조중동의 지속적인 ‘오버’가 그들을 옥죄는 융합과 쌍방향의 일정을 앞당기고 있다. 또한 누가 봐도 명백한 미디어 행위를 그들 스스로만 부정하려는 포털미디어의 약삭빠름이 더 많은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다.
이 사실을 외면하고서는 백약이 무효다. 인터넷이 그 자체로서 융합적이고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 저항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임종수/세종대 신문방송학과>
출처: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