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은 ‘독립운동의 영웅’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삶은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이 있다. 그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에 재산을 잃고 가난해진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방탕과 사업실패로 가난한 삶을 살았던 노동자이다. 그리고 그는 일본의 차별 정책에 끊임없이 불만을 가지면서도 식민지근대의 향락문화를 소비한 ‘모던보이’였다.
‘독립운동의 영웅’과 ‘모던보이’는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상반된 이미지 같지만 이봉창의 삶은 그것이 한 인간의 삶 속에서 모순되지 않고 결합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봉창의 이야기는 독립운동가의 인간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이면서도 유독 아프다. ‘모던보이’의 삶을 살면서 ‘황국신민’이 되기를 꿈꾸었던 한 식민지청년이 제국의 심장인 천황을 향해 폭탄을 던지게 된 사연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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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나는 불행한 인간이다. 왜냐하면 조선인으로 태어나 아직 이태왕(고종) 전하의 옥안을 뵈온 적이 없으며, 일한 합병 후 "신일본인"이 되어 천황폐하의 옥안을 뵌 적도 없다. 또 조선 역사도 안 배웠고, 일본 역사를 배운 적도 없다. 실로 부끄러운 인간이며 가치 없는 인간이다. 한 국민으로서 그 나라의 역사도 모르고 그 나라 국왕의 옥안도 뵌 적이 없는 것이 참으로 스스로 부끄러웠다.
이때 이봉창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스물일곱이 되어서야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 나라의 역사도 모르고 왕의 얼굴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란 것을 처음 깨달은 것이다. 일본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면서 생활이 안정되자 이봉창은 천황의 얼굴을 봐야만 제대로 된 진짜 일본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비록 자신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가난한 노동자이지만 돈을 빌려서라도 반드시 천황의 얼굴을 보겠다고 다짐했다. (94쪽, "제2부 "신일본인"의 꿈과 좌절"에서)
배경식 -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에 한국역사연구회에 연구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했고, 2008년 현재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중이다. 석사과정 때부터 한국현대사를 공부했고, 박사과정에 들어오면서 전문성과 대중성을 담보한 대중적인 역사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방향을 모색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어떻게 살았을까(1,2,3)>(역사비평사)의 공동기획과 집필에 참여했고,<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와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를 기획했다.
1876년의 백범의 출생으로부터 백범이 살았던 70여 년의 활동을 추적하고 객관적인 자료와 비교 검토하는 작업은 고단한 번역작업과 함께 오랜 시간의 인내와 준비를 요구했다. 10년에 걸쳐 <백범일지>를 정확하게 번역하고, 해제와 새로운 해석을 달아 일반 독자들이 <백범일지>를 균형 잡힌 시각에서 읽도록 하는 작업을 해 출간했다.
프롤로그 살아 있는 인간의 이야기로서의 독립운동사
제1부 방황하는 식민지 청년
불우한 어린 시절
일본인 과자점 점원
용산역 전철수
“거지가 되더라도 이런 일은 싫다”
방황 1년 6개월의 행적
일본에 가면 차별받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
제2부 ‘신일본인’의 꿈과 좌절
첫 좌절
영양실조로 각기병을 앓다
“조선인이 인간인가”
인생의 전환점이 된 유치장 구금 아흐레
나는 누구인가? - 식민지 청년의 자기반성
도쿄에서의 방황 1년
“나는 조선인이다” - 상해로
제3부 상해 1년, 운명을 바꾼 만남
운명을 바꾼 만남
취중진담, “왜, 천황은 못 죽입니까?”
‘왜영감’, 이봉창
운동화만 신고 다녀도 사치
만주사변, 기회가 오다
거사준비1 - 폭탄준비
거사준비2 - 자금마련
‘한인애국단 1호’ 이봉창
“저를 어떻게 믿고 그런 거액을 주셨습니까?”
기쁜 얼굴로 사진을 찍읍시다
천황 폭살은 무모한 계획이었나?
제4부 마지막 20일의 기록
오사카에서의 3일
도쿄 도착
“상품은 1월 8일에”
사전답사
마지막 하루
천황의 행렬을 놓치다
“실패했구나!”
“범인은 나다!”
왜 천황을 죽여야 하는가?
에필로그 남겨진 이야기
부록1 이봉창의 옥중수기 「상신서」
부록2 동경작안의 진상
기노시타 쇼조는 이봉창의 일본식 이름이다. 이봉창은 생활의 편의를 위해 일본식 이름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한 때 자신이 일본으로 데려온 조카딸과의 연락마저 끊을 정도로 진짜 일본인이 되고 싶어서 ‘최선’을 다했던 식민지 백성이었다. 그런 그가 감히 누구도 상상하거나 실행하지 못했던 천황을 향해 폭탄을 던진 것은 극적인 인생반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