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굴욕. 한국 언론이 최근 자주 내보내는 프레임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일본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일본은 한국 언론이 보는 것처럼 정말 저물고 있을까? 일본의 저력을 얕보지 않아야 할 이유는 너무도 많다. 2010년 한 해 동안 일본의 자존심은 많은 상처를 입었다. 2010년 5월 28일 하토야마 총리와 오바마 대통령은 미·일 군사협약을 재확인하고, 오키나와의 ‘후텐마’ 미군 기지를 계속 유지하는 협정에 서명했다. 후텐마 기지 이전을 관철하지 못한 일본 정부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세졌고, 미국과 대등한 자주외교를 내세웠던 민주당 정권은 불과 8개월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2010년 2월부터 불거진 도요타 자동차의 대량 리콜 사태와 4월 한국의 천안함 침몰사건 등을 통해 일본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계기였다.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자존심도 무너졌다. 2010년 8월 12일, 전 세계 언론은 2010년 2/4분기 동안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1조 3,360억불로 일본의 1조 2,883억 원을 추월했다고 보도했다. 2010년 3/4분기에서도 일본은 1조 3,700억을 기록하면서 중국의 1조 4,150억불에 못 미쳤다. 2020년이 되어야 중국에 역전될 것이라는 예측이 무려 10년이나 앞당겨 실현되었다. 뒤이어 9월 3일 영토분쟁 지역인 조어대에서 발생한 중국어선의 나포 사건에서도 일본은 무기력했다. 사건 발생 초기 일본은 중국 선장을 포함해 어민 10여명을 구속하고, 중국 정부의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첨단 장비의 원자재인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고, 군사보호 구역 촬영을 구실로 일본 민간인을 구속하는 등 중국 정부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치면서 일본 정부는 굴욕외교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중국 정부와 타협을 했다.
1980년대와 9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는 일본 때리기(Japan bashing)가 유행이었다. 미국에 대한 일본의 무역흑자는 줄어들지 않았고, 국제시장에서 유럽은 일본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다. 일본의 보호주의 정책, 저평가된 엔화 및 외국기업에 대한 지나친 규제 등에 대한 비난이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일본의 경제침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이를 배경으로 마이클 클라이튼(Micaheal Crichton)의 일장기(Rising Sun), 톰 클랜시 (Tom Clancy)의 적과 동지(Debt of Honor), 팻 코에이트(Pat Choate)의 권력자(Agents of Influence) 및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Clyde Prestowitz)의 거래소(Trading places) 등의 소설이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0년 일본의 니케이(Nikkei) 종합지수는 1만 545엔으로 마감되었고, 이는 1990년의 3만 8915엔의 30% 수준에 불과했다. ‘일본 때리기’ 시대가 이미 저물고, ‘일본 건너뛰기’(Japan Passing)’ 시대가 왔다는 말도 나온다.
1980년대 후반 부동산 거품이 붕괴된 이후 지난 20년 동안 일본 경제가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했을 때 일본의 성적이 반드시 나쁘지는 않다. 일본은 여전히 중국 다음으로 많은 1조 693억불의 국부(國富)를 갖고 있으며, 무역흑자도 지속되고 있다.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미국 달러당 일본 엔화의 교환 비율을 250엔대에서 120엔대로 수직 상승했다. 미국에 대한 일본의 무역수지 흑자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줄어들지 않았고, 미국 달러화는 더욱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1987년의 루브르합의와 1994년 미국의 강한 달러정책 등 미국과 유럽의 잇따른 환율 공세에도 불구하고 일본 기업의 국제경쟁력 역시 강화되었다. 1997년 아시아 위기가 발발한 직후부터 미국, IMF, 유럽 국가들은 일본식 모델의 폐기와 일본의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요구했다. 당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태국 등에 많이 진출해 있던 일본 기업들은 막대한 손실을 감당했고, 일본 정부와 금융권은 막대한 부채를 질 수밖에 없었다. 부실기업을 정리하지 않고 ‘생존’의 길을 열어준다는 일본식 구조조정은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가 덮쳤을 때 국제사회는 일본과 동일한 조치를 취했다. 뿐만 아니라, 1998년 미야자와 선언, 2000년 치앙마이선언, 2005년 아시아벨라지오그룹, 2006년 아시아채권시장 및 아시아통화단위 등 아시아 국가들 간 집단적 금융안보 체제를 구축하는데 있어 일본은 항상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 즉 ‘잃어버린’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얻은 부분’도 있었던 지난 20년이었다. 금융에서만이 아니라 군사·안보 측면에서도 일본의 건재는 확인된다.전후 일본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국방비 지출의 부담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측면이 있다. 군사비를 줄이는 대신 일본은 ‘해외원조’의 상당부분을 떠맡았고, 국제사회에서 이는 일본이 지불하는 간접 경비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991년 걸프전 이후 ‘전쟁 비용’을 분담하는 일본의 ‘수표책 외교(checkbook diplomacy)’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고, 일본 역시 ‘정상적’인 국가로 거듭나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2010년 6월 하토야마 민주당 총리와 같이 동반 퇴진한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이 1991년 발표한 『일본 개조론』에서도 그 필요성은 잘 드러나 있다. 일본은 그 이후 자위대의 파견 등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평화헌법에 대한 논의도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미국에 대한 지나친 안보 의존을 벗어나기 위해 중국과 한국 등과 군사교류도 시작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과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도 진행되었고,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평양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2년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고 ‘중국에 대한 전략적 경쟁자’ 선언, ‘글로벌 미군 재배치 계획’ 및 ‘광대역미사일망 구축’ 등을 추진하면서 동북아 상황은 변해갔다. 2002년 고이즈미 총리는 미국의 이러한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했으며, 이 전략은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영국이 취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2009년 이후 일본 정부 역시 변화를 모색했고, 2009년 8월 하토야마 정권의 출범은 이런 배경에서 출범했다. 2010년에 접어들어 한반도 안보 위기가 심화되고, 미국의 역할이 증가함에 따라 미국보다 아시아를 중시하고자 하는 일본의 자주적 외교정책도 일단 유보된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취했던 전략을 돌아볼 때 앞으로도 일본이 독자적인 길을 모색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겉으로는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용히 준비하고 때를 기다리는 일본의 저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스톡홀름 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09년 12월 현재, 일본의 국방비 지출 규모는 468억불로 세계 7위에 해당한다. 더구나 이 금액은 GDP 대비 0.9%에 불과한 것으로 미국의 4%, 영국의 2.5%, 프랑스의 2.3%, 러시아의 3.5%에 비해 훨씬 낮은 수치다. 미국 1달러당 일본 엔화의 교환비율은 1949년 360엔이었지만, 2010년 현재는 약 100엔대에 머물고 있다. 경제력과 환율이 정비례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일본 경제의 미래는 어둡지 않으며, 국제예탁자산에서 엔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 달러, 유로, 영국의 파운드화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3% 수준이다. 또한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에서 일본이 갖는 투표권은 6%대로 미국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비록 중국에 역전당하긴 했지만 일본은 여전히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며, 포춘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에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71개사가 포함되어 있다. 일본의 저력은 언론매체에서도 잘 드러난다. OECD 회원국 내에서 유료일간지의 일일 발행부수가 가장 많은 곳은 6,700만부의 일본이고, 그 뒤를 4,900만부의 미국, 2,000만부의 독일, 1,500만부의 영국이 뒤따르고 있다. 전체 평균 발행규모로 봤을 때 전 세계 상위 10위권 중 5개는 일본신문사다. 일본의 요미우리 신문의 하루 평균 전체 발행부수는 1,000만부, 아사히는 800만부 수준으로 알려진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주듯 2009년 현재 일본외신센터(Foreign Press Center Japan)에는 42개국 203개 외국 언론에서 615명의 기자들이 등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미국은 39개사 224명으로 가장 많은 특파원을 보내고 있으며, 르몽드, 블룸버그 등 주요 매체는 일본에 총국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