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왕실에서 제정된 법령은
백제신과 신라신을 제사 모셔야만 하는 왕실 법도가 확정돼 있다.
즉 왕실 법률인 ‘정관식’(貞觀式 871년 성립)이 조정에서 이뤄져 왜왕들은 대대로
한국 고대의 천신(天神)인 ‘백제신’ 두 명과 ‘신라신’ 한 명을 왕실에서 왕이 직접 제사드렸다고
기록돼 있다
이 한국신 제사 의식은 뒷날까지 계승된 왕실 법도인 ‘연희식’(延喜式 927년 왕실에서 제정)에
이르러서도 다시금 명문화되어 있는 사실(史實)
즉 그것은 ‘연희식’의 최초의 항목인 제사에 관한
‘신기(神祇) 제1’에 다음처럼 법도가 정해져 있다. “왕실에 모신 3신주에게는 매달 월차 제사와
1년에 한 번 신상제 제사를 모신다.”(宮內省坐神三坐, 月次祭 新嘗祭, 園神社, 韓神社二坐·
신라 신사당, 백제신 사당)
이 법도로 정하고 있는 월차제 제사는 일본 왕실의 안녕을 위해 매월 왕이 궁안의 사당에 모시고
있는 한국신 신주들을 제사 모시는 것이며,
신상제는 해마다 11월23일 밤에 한 번 올리는 가장 큰 왕실 제사이다.
제50대 간무왕은 서기794년에 헤이안경(교토)으로 천도했을 때, 왕궁(헤이안궁) 경내의 남과 북
두 곳에다 한 곳씩 한국신을 모신 사당을 세운 까닭이다
즉 왕궁 안의 북쪽에는 가라카미노야시로(韓神社·가라진자·백제신 사당),
남쪽에는 소노카미노야시로(園神社·소노진자·신라신 사당)를 세웠다는 것이
‘연희식’에 상세하게 밝혀져 있다.
교토대학 사학과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교수는 “왕실 문서 ‘연희식’에 의하면
‘가라진자’에서는 두 명의 가라카미(韓神)의 신주, 즉 백제 신 두분을 제사 모시고,
소노진자에서는 한 명의 신라신인 소노카미(園神)의 신주를 모셨다”
(‘日本神話’ 1970)고 지적했다
와세다대학 사학과 미즈노 유(水野 裕) 교수는 “삼신기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귀화인들의
신보였다고 본다. 옥과 거울과 칼이라는 신보를 천황이 갖춤으로써 비로소 주권의 표상인
삼신기가 성립되었다. 일본 고대왕조는 귀화인들에 의하여 성립되었다”(天皇家 秘密 1977)
한국신만을 ‘왕궁 안에 계신 세 신주’(宮內省坐神三坐)로서 최고위에 모셔 놓고,
일왕이 제관(祭官)들을 거느리고 궁 안 남북 두 곳의 한국신 사당에 가서 직접 제사를
모신다는 것이 ‘연희식’에 명문화돼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