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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학 교수 주장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6세기 고구려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백제와 일본이 단순한 외교적 협력 관계를 넘어 연합정권 성격의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는 주장이 제기했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 문화유적학과 교수는 동아시아고대학회의 학술지인 "동아시아고대학" 최신호에 발표한 연구논문 "마한 잔여고지 전방후원분의 조성 배경"에서 이 같은 분석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한반도 서남부 지역에서 발굴된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에 주목했다.
전방후원분은 앞부분에 편평한 방형 기단이 있고 뒷부분에 둥그런 형태의 봉분이 있는 무덤양식으로, 일본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교수는 전방후원분 13기가 노령산맥 이북과 영산강 유역, 해남반도에 이르는 3개 권역에 분포돼 있다면서 이들 지역은 "369년 백제 근초고왕이 금강을 건너 평정한 마한 잔여(馬韓 殘餘) 지역"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백제군은 왜군과 합동 작전으로 이 지역을 평정했다.
이 교수는 백제군과 왜군이 합동 작전으로 평정한 지역에 일본계 전방후원분이 조성됐다는 것은 "피장자(무덤에 묻힌 주인공)의 성격을 암시해주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특히 전방후원분이 백제가 고구려의 침입으로 어려움을 겪던 6세기 전반에 조성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웅진성으로 천도한 백제의 최대 현안은 고구려의 군사적 위협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이 교수는 전방후원분에 봉분된 왜인들이 "369년 백제가 이곳을 점령할 때 활약했던 왜장(倭將)과 한부(韓婦) 사이에 출생한 후예거나 백제와 관련을 맺은 가문으로 확인됐다"면서 "전방후원분 피장자들은 백제와 연고를 맺고 있는 왜인들이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근초고왕대 이래 백제와 왜는 우호를 다졌으며 동시에 공동의 이익을 위해 지속적으로 운명을 함께하는 관계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백제가 고구려의 군사적 위협에 직면한 6세기 "왜인이 백제의 관료로 활약했을 뿐 아니라 백제 관료가 왜로 파견된 기록을 찾아냈다"면서 "유례가 극히 드문 이러한 사례의 본질은 연합정권적 성격을 가리키는 증좌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고구려의 군사적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상황에서 "공동정권적 체제"를 구축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백제와 왜의 관리들이 상호 왕래하며 상대방 조정에 배치될 수 있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왜왕의 혈통에도 백제 왕실과의 연관성이 엿보이고 있다"면서 "백제대정(大井)" "백제천(川)" "백제궁(宮)" 등 왜 조정의 주요 지명에 백제라는 국호가 다수 등장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