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그는 일본의 no.1 정치가를 저격한 테러리스트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는 조선민족을 위해 목숨을 내던진 구국의 열사이며,
대한민국 성역에 들어가 있는 인물이다.

1909년
북만주 하얼빈에서 3발의 총탄의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조선의 청년 안중근은 이렇게 3번 외쳤다.
COREA URRA! COREA URRA! COREA URRA!
위의 말은 러시아어로 "대한민국 만세"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일본제국의 NO.1의 정치가였던 이토 히로부미는 쓰러졌다.
이것은 분명 테러이고,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서는
조선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구국의 열사이다.
당시의 조선은 일본제국에 의해 식민지 奴가 되어가는 중이었고,
동양평화를 외쳤던 이토 히로부미는
사실상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원흉이었던 것이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역사와 비슷한 것으로
동유럽의 사라예보 사건이 있다.
세계 1차대전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유명한 이 사건은
세르비아의 청년 가브릴로 프린체프가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저격했던 사건이다.

위 사건의 명분은
대 슬라브 민족의 독립.
당시의 발칸반도는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대표되는 게르만 민족에 의해 와해되는 상황이었고,
이것이 지속된다면 슬라브 민족은 게르만 민족의 奴가 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그 청년은 오스트리아의 상징과도 같은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였고,
이것으로 분개한 오스트리아가 발칸반도를 침공, 1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알렸다.
비록 세르비아의 청년 가브릴로 프린체프는 테러리스트로 취급되고 있지만,
슬라브 민족의 입장에서는 민족을 위한 구국의 전사로 추앙받고 있다.
역사는 이런 것이다.
동유럽의 강대국 오스트리아 제국과 동아시아의 강대국 일본제국에 저항하기 위해서
조선과 세르비아는 정공법으로는 불가능했다.
때문에 위와 같은 테러행위가 유일한 저항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