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인들이 보는 비도술(飛刀術)을 사용하는 연개소문과
당태종(唐太宗) 그리고 설인귀(薛仁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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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태종 (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중 하나로 평가 받고있는 제왕이다.
정치 군사 병법 등 모두 설렵한 뛰어난 군주라고 평가 받지만
유난히 고구려 연개소문과의 이야기에서는
굴욕적인 전설만이 내려와 많이 남아있다.

중극 경극 독목관 대본 표지. 薛仁貴(좌측) 고구려 연개소문(우측)
연개소문이 만리장성을 넘어, 북경 지역 깊숙이 들어갔다는 주장의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북경시 순의현의 고려영(高麗營) 유적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신채호는 고려영은 연개소문의 고구려군이 주둔했던 성으로 보았다.
『북경 순의현지』에는 당나라 때 지금의 북경에 고구려인이 이주해왔다는 단 한 줄의 기록이 남아있다.
연개소문이 북경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만리장성을 넘어야했다. 그런데 당시 만리장성은 그리 대단한 장벽이 아니었다. 5호 16국시대, 남북조 시대 많은 북방민족들이 만리장성을 넘어 나라를 세웠기 때문이다. 만리장성같이 일직선상에 쌓은 성은 어느 한 곳이 무너지면 적군의 통로가 되기 때문에 성으로서의 의미를 잃는다. 그러므로 연개소문이 만리장성을 넘기란 누워서 떡먹기처럼 쉬었을 것이다.
북경민족대학 황유복 교수는 북경 동북쪽의 황량대에서 ‘고려포보(高麗鋪堡)라 새긴 비석을 발견하였다. 이는 연개소문의 중원지역 공략설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고구려 정복을 운운하던 당 태종이 이런 쇼를 벌인 것은 고구려가 적어도 1일권 안에 있었음을 반증한다고 했다. 그가 발견한 황량대를 연결하면 고구려군이 활동하던 것은 북경 일대로 추정된다. 당시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본다면 연개소문이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 깊숙이 지금의 북경까지 쳐들어갔다는 주장은 설득력있어 보인다.
그런데 위의 전설 말고도 산동성과 강소성에는 연개소문에 관련된 전설이 무려 6가지나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1산동성 봉래시의 전설: 봉래 인근에서 唐 태종과 연개소문이 전쟁을 벌였는데 이 때 당태종의 형이 戰死를 한다.
2산동성 즉묵시의 전설: 唐 태종이 산동성 즉묵 마산에서 연개소문에게 포위되어 사로잡힐 뻔 할 때 신라출신 용양장군 김걸이 당 태종을 구하고 자신은 연개소문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는 전설
3강소성 비주의 전설: 고구려군과 唐의 薛仁貴軍 간의 격전
4강소성 숙천의 전설: 연개소문이 唐의 설인귀군(薛仁貴軍)과 전쟁에서 연전연승했다는 전설
5강소성 염성: 염성 건호현에는 몽롱탑(蒙朧塔)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이는 唐太宗 이세민이 연개소문에게 쫓겨 달아나다가 거미줄이 쳐진 빈 우물에 숨어 살아났는데 나중에 이 은공을 잊지 못해 그 우물이 있는 곳에 탑을 세웠다고 한다. 어둡고 어려움(朦)에 처해 있을 때 우물 속 거미줄이 몸을 보호해 줘 목숨을 건진대서 몽롱(蒙朧)라는 단어가 생겨났다고 한다.
6강소성 금호: 고려성(高麗城) 있는 지역
위의 전설들은 고구려 연개소문이 수군으로 중원의 산동.강소성 일대를 대대적으로 침략을 했으며이에 당태종은 친히 정벙하기 위해 나섰지만 오히려 연개소문에 전략에 휘말려 당태종 자신이 죽을 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위 전설은 현재까지 중국에서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唐太宗 이세민은 마지막 고구려 침략에서
안시성(安市城)의 성주(城主) 양만춘(梁萬春)에게
대패해서 목숨을 겨우 건져 돌아간후
병세가 악화되어 죽기직전
고구려 침략을 다시는 하지마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