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8월 15일에 개통한 서울의 지하철 1 호선 구간은
일본의 건설회사의 설계와 기술로 조성된 것이었다.
물론 차량은 hitachi 가 제조한 것을 수입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와 언론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당시 군사독재국가였던 한국은 반일 무드가 지금보다 세었던 시대였다.
그리고 국책 사업이나 거창한 토목 건설을 완공할 때마다 그러한 이벤트를
국민들의 애국심과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정권을 홍보하는 업적, 수단으로 삼았던 시대였다.
커팅 테이프를 끊는 자리에서는 항상 박정희 대통령이 등장했다.
그날 지하철이 개통이 되었을 때 일본 건설회사에서는 기모노 의상을 착용한
일본 여성 모델을 차량에 탑승시켜 서울 지하철이 일본의 기술로 만든 것임을
탑승객들에게 간접적으로 시사하려고 하였다.
많은 시민들이 이 일본 여성을 보고 궁금증을 느꼈다.
왜 기모노 전통의상을 입은 일본 여성이 객차 문 곁에 저렇게 서 있는가 ? 하고 말이다.
그 일본 여성을 보면서 서울 지하철을 시공한 일본 회사의 조치였을 것이다 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 날 이후 다른 노선을 공사할 때마다 전철 공사판의 간판에는
시종 "우리 기술, 우리 지하철"이라는 지금의 관점으로 본다면 어처구니 없고
우스운 슬로건이 씌어 있었다.
"우리"라는 말을 굳이 강조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국의 기술로 시공한다는
자신감이 없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문구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