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倭)민족들이 사용하는 국호 ’일본(日本)’에 대해서 가르친다
三韓이 만든 지명인 ’일본’을 백제인들이 열도의 국호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 동쪽을 바라보았을 때 일본이라는 땅은 분명히 ’해가 돋는 곳의 밑’이다. 그래서 부르는 말이 ’해의 밑-해 밑’이라 불렀고 그 ’해 밑’을 한자로 옮기면 바로’일본(日本)’이요, 또 우리말로 ’해돋이’라는 말이 ’해돋이-해닫이-히다지(日立)’가 된다.
따라서 일본인들 스스로가 자기네 나라를 ’해 밑’이라는 뜻의 일본(日本)으로 쓰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일본에서 ’해 밑’은 분명히 하와이쯤이 되어야 옳다. 우리나라에서 보았을 때는 ’해 밑:日本’이라는 말이 성립되지만.
심지어 일본의 국수주의(國粹主義)자들과 군국주의(軍國主義)자들은 일본이라는 국호가 본래 한민족(韓民族)이 사용하던 열도의 지명이었고 국호 형성에 큰 관여를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1907년 발간된 ’대일본지명사서(大日本地名辭書)’의 국호편(國互篇)에 ’일본이란 나라이름은 한민족이 처음으로 쓰기 시작하였으나 우리 일본 사람들이 그 이름이 아름답고 우리나라 이름으로 쓰는 것이 어울린다고 만고불변(萬古不變)의 국호로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일본지명사서’의 저자는 일본 명치시대를 대표하는 학자 요시다도고(吉田東伍)였다. 또 이 책의 머리에 서명한 사람 중에는 당시 수상으로 철저한 군국주의자였던 가츠라다로(桂太郞)와 당시 교육부장관 마키노 노부아키(牧野 伸顯)와 대표적 황국사상가(皇國思想家)인 고대사학자 호시노히사시(星野恒)등이 있다.
당시 일본의 역사학자들도 이미 ”일본’이라는 나라이름은 백제(百濟;고이왕(古爾王;재위 234∼285) 때 고대국가의 기반을 갖추었으나 660년 신라에게 멸망)때 사람들이 쓰기 시작한 것을 우리나라(일본)가 그 이름이 아름다워 국호(國號)로 삼았다”는 논문까지 발표했었다.
일본의 역사책 ’일본서기(日本書記)에 따르면 668년에 왕위에 오른 덴지왕(天智王)과 그 뒤를 이은 덴무왕(天武王)때 중앙집권제가 완비되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일본’이라는 이름(말)은 한국계의 도래인(渡來人)이 갖고 간 것이 확실하다. 또한 이때 오키미(大王)라는 명칭 대신 신격화한 천황(天皇)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아키히토(明仁)日王이 “7세기에 일본은 한국으로부터 국가건설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분명히 말했다. 한·일간에 불행했던 과거사를 반성하는 자리에서 7세기의 도움을 말한 것도 ’일본(日本)’이라는 국호와 ’천황’이라는 칭호를 처음 사용했던 때를 가리킨 것이다.
일본의 저명한 학자 요시다가 도고가 저술한 ( 대일본지명사전 )
역사학자 요시다 도고(吉田東伍)가 일본이란 국호는 한국인이 만든것,
일본에 저명한 역사학자 요시다도고(吉田東伍)가 펴 낸 ‘ 대일본지명사서’(大日本地名辭書)의 일본국호론(國號論)과 명치(明治) 33년 1월에 발간된 역사지(歷史雜誌)에 쓰여있다.
그의 저서를 인용하면
(伴信友) 야아마토,일본日本’이라는국호는 원래 한국인들이 일찍부터 써온 것인데, 우리나라가 그 이름이 아름답기 때문에 국호로 정했다. (星野恒) 야아마토(y,aAmato) , 日本이라는 문자(文字)는 오랜 옛날부터 사용해온 ’ 히노모도 ’라는 말에 한자를 충당해서 쓴 것이며 일본
<日本>이라는 이름 그 자체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한(三韓)사람들이 쓰기 시작한 것이다. (木村正辭) ,야아마토,일본(日本)이라는 국호는 원래 한국인들이 쓰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나라 (열도의) 국호로 됐다.
그외 메이지(明治)시대의 석학(碩學)들이 입을 모아 증언(證言)하고 있다.
과거 삼국시대에는 해가 뜨는곳(지역)을 야아마토(y.aAmato)라고 불렀다.
요시다도고(吉田東伍)가 펴낸 ’대일본지명사서(大日本地名辭書)’의
’국호론(國號論)’과 명치(明治) 33년 1월에 발간된 ’역사잡지(歷史雜誌)에
일본
<日本>이라는 문자(文字)는 상고(上古)로 부터 사용해온 (히노모도)라는 말에 한자를 충당해서 쓴 것이며
일본
이라는 이름 그 자체는 삼한(三韓)사람들이 쓰기 시작한 것이다.(星野恒)
일본
<日本>이라는 국호는 원래 한국인들이 쓰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나라 국호로 됐다. (木村正辭)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는 원래 한국인들이 일찍부터 써온 것인데, 우리나라가 그 이름이 아름답기 때문에 국호로 정했다.
(伴信友) 메이지(明治)시대의 석학(碩學)들이 입을 모아 증언(證言)하고 있듯이
일본’日本’이라는 이름은 한민족(韓民族)이 오래 전부터 써 왔다.
그런데 백제의 속령(屬領)이던 열도에서 백제 멸망후 건너간 백제인들에 의해 ’ 일본 ’으로 국호를 삼았음을 알 수 있다.
’日本’이라고 한자로 쓴 것을 그 당시에는 ’야마터’라고 읽었었는데
근세에 한자음(漢字音)으로 읽게 되면서부터 그것을 소리 바꿈한 ‘닙뽕’이라고 하다가
지금은 ’ 니혼 ’이라고 발음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메이지(明治)초기에 일본정부는 그것을 바로 잡아 ’ 닙뽕 ’ 이라고 고쳐 발음하도록 긴급 결의(決議)한 적이 있다
일왕 아키히토의 스승이자 저명한 학자인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1927∼ ) 교토대학 사학과 명예교수는 말한다
현재의 열도인들이 칭하는 kudara(백제)의 어원은 한국어인 ’큰 나라’ 입니다.
백제의 왕은 칠지도(七支刀)를 열도의 侯王(倭王)에게 하사했다 .
일왕의 스승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1927∼ ) 교토대학 사학과 명예교수는
일본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국보급인 고대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을 자택 서재에 보관하고 있다.
우에다 교수는 “비다쓰 천황은 백제 왕족입니다”라고 확언했다 ( 2004년 7월11일 )
또한 학자들은
” 백제 무령왕의 동생이 일본의 왕이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곧 倭國은 백제의 지방정권이였던것이 확실하다.
분명 일본의’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에 의하면 일본의 왕들은 백제왕족 출신이 다수.
”일본은 원래 백제땅 일컫는 말이었다”
지난해 7월 중국 서안 골동시장에서 발견돼
현지 학술지에 공개된 백제인 ‘예군’의 묘지명 탁본. 점선 부분이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일본(日本)’ 글자다.
최근 이 글자가 일본 국호가 아니라 백제땅을 뜻한다는 학설이 나와일본 학계가 충격에 빠졌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36435.html
”일본
<日本>이라는 국호는 원래 한국인들이 쓰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나라 국호로 됐다. (木村正辭)”
왕 친동생’
고바야시 야스코(小林惠子),가토 에이코(加藤瑛子)교수
주장
본토 왜인이 왕이 되었다라는 물증을 찾는게 더 어려울 것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1927∼ ) 교토대학 사학과 명예교수는
일본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국보급인
고대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을 자택 서재에 보관하고 있다.
우에다 교수는 “비다쓰 천황은 백제 왕족입니다”라고 확언했다. (2004년 7월11일)
왜인은 스스로 나라를 통치할 수 없었다.
하야시 세이고(林靑梧)는 그의 저서
<일본서기의 암호>“일본 왕통 혈족의 만세일계(萬世一系) 세습제부터가 날조이며,
일본 개국왕은 김수로왕 후손임은 상식인데도 이를 부정,
징구왕후라는 유령을 내세웠다”고 밝혔다.
또 “임나일본부 설치를 날조했을 뿐 아니라
오오진(應神)왕이 백제계 부여(夫餘) 후왕인 의라(依羅)이며,
기토라 고분의 40대 텐무(天武)왕은
신라 김다수(金多遂)임에도 일본인으로 변조했다”
문명이 100년 이상 뒤쳐졌던 왜인에게 은혜를 준게 누구입니까?
하니하라 가주로(埴原和郞) ...
나라시대(奈良時代- 제50대 칸무(桓武) 왕이 784년
헤이안(平安)으로 천도하기 이전)까지도
한복을 입고 한국음식을 먹었으며 심지어는 한국말까지 사용했는데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 만엽집(万葉集) 등에
아직 조작되지 않은 부분은 한국어의 한국식 한자용어가 남아있다”고
말해 전체적으로 일본 고사기들이 조작되었음을 밝혔다.
지배층은 한국인이며 奴隸 피지배 토착민 계층은 왜인이라는 간단한 등식이 성립
前구마모토 대학 시미즈 기요시(淸水記佳) 교수
‘아나타는 한국인’에서 “오늘날 일본어의 모어(母語)는 한국어이며,
일본의 역사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실려 있는 신화와 전설은
전부 고대 한국인의 이야기다”고 말했다.
열도를 한국 지방의 역사 정도로 밖에 성립하지 않는다 애초에 倭奴에게 독자성이란 없다
’일본 문화 훈장’을 받은
존 코벨(John Cater Covell,1910~96)여사:[한국 문화의 뿌리를 찾아]~
’일본의 신도(神道).. 日王의 뿌리..일본고분에서 출토되는 유물등...
한반도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다..놀라운 일이다.
심지여 1945년 8월15일 日王이 자신이 타고 다니던 백마를 맥아더에게 넘기는 것으로
항복을 표현하는 것조차 한국식 이다’ 모든게 한국으로부터...
토쿄대 사학과의 이노우에 미쓰사타(井上光貞) 교수
’일본은 고대 한국인이 세운 나라이다”(‘日本國家の起源, 1967)
한국인의 일본열도 개척 및 정복에 의해 일본이라는 나라 탄생
한국인이 오기 전 왜인들의 현실
北史 列傳 倭國
人庶多跣足 - 맨발에
故時, 衣橫幅, 結束相連而無縫
옷에 바느질도 하지 않고
頭亦無冠
冠도 없고
有弓·矢·刀·弩·斧, 漆皮爲甲, 骨爲矢鏑
무장수준은 지금의 아프리카 원시인 수준
無文字, 唯刻木結繩. 敬佛法, 於
<百濟>求得佛經, 始有文字
학문은 전혀 몰랐고
俗無盤俎, 藉以葉
접시도 없고
食用手
손으로 밥을 먹고
월래 문명과 관계없는 왜인들의 삶
카큐슈우인대 오오노 스즈무(大野 晋, 1919∼) 교수
’한국인은 일본열도에 금속 제조및 사용법
야금·금공 기술 염색·피혁제조·베틀 직조·기와 제조
·의학·역법·천문학·조불(造佛)·사찰 건축·조탑 조경술등 모든것을 가져왔다’
(‘日本語の 世界’, 1980)
”섬의 문명은 모두 한국인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과거 열도의 주체는 왜인들이 될 수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