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한인 日 대량학살…희귀기록물 공개
러 정부보고서 “전쟁직후 5000명 행방 묘연”
강제동원 1만2000명 명부도… 진상요구 전망
세계일보 | 입력 2012.08.14 19:23| 수정 2012.08.14 20:24
67주년 광복절을 맞아 사할린 한인에 대한 희귀 기록물들이 대거 공개됐다. 특히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할린 한인들을 대량 학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러시아 정부의 문서와 사할린에 강제동원된 한인 1만2000여명의 명부가 공개돼 진상 조사와 보상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기록원은 러시아 사할린 국립문서보존소와 일본 재일한인역사관에서 입수한 사할린 한인들에 관한 기록물들을 14일 공개했다. 공개된 자료에는 사할린 한인들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공문서와 사할린 한인들의 귀환운동에 관한 기록, 사할린 한인의 명부와 서신이 포함됐다.

탄광노동자들이 거주하던 탄광촌 모습.
특히 1946년 러시아 정부의 보고서에는 사할린 서북부 에스토루 지역의 한인들이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보고서는 “2차 세계대전 이전 이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은 1만229명이었으나 전후 절반(5332명)밖에 남지 않았다”며 ”한인이 급격히 줄어든 이유는 피란, 귀환뿐 아니라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한인 학살 때문”이라고 적었다.

사할린에 강제동원된 탄광노동자들이 교육받는 모습.
국가기록원 이강수 연구관은 ”일본군이 5000명을 다 살해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 정부는 한인인구가 급격히 감소한 이유로 명확하게 일본군의 한인 학살을 지목했다”고 설명했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8월21∼23일 사할린에서 일본 헌병이 한인 27명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사례가 알려진 적은 있었으나 이 같은 대규모 학살 가능성이 제기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할린에 강제동원된 여성 탄광 노동자들이 석탄을 고르는 모습.
행정안전부 제공
1950년대 일본에서 작성한 일본 귀환자 명부 2권(778명), 1960∼70년대 사할린귀환재일한인회에서 귀환희망자를 조사한 명부 4권(1만2600여명), 1980년대 일본과 한국에서의 귀환운동과정에서 생산된 명부 14권(6000여명)도 공개됐다. 중복된 수를 제외하면 명부에 적힌 인원은 총 1만1211명으로, 지금까지 공개된 사할린 강제동원 한인 명부의 3배가 넘는 규모다.
자료를 분석한 건국대 한혜인 교수는 ”지금까지 사할린 한인 관련 명부 일부가 확인된 경우는 있지만, 명부와 서신, 가족관계 및 활동,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귀환운동 관련 기록 일체를 총망라해 일괄 수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우리 역사에서 잊혀진 사할린 한인들에 대한 역사를 복원하고, 현재 추진 중인 사할린강제동원 보상사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태영 기자 wooahan@segye.com">wooahan@segye.com
‘日, 사할린 한인 대량학살’ 추정 기록 공개 파장…일제 강제동원 보상신청·소송 크게 늘듯
국민일보 | 입력 2012.08.14 19:44
.jpg)
국가기록원이 14일 공개한 1946년 러시아 정부 보고서는 향후 한·일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귀환한 이들의 육성으로만 전해졌던 일본의 사할린 한인 학살에 대한 근거가 외국 정부의 보고서를 통해 밝혀졌기 때문이다. 추가 조사 등을 통해 구체적인 사례가 드러날 경우 국제적인 이슈가 될 가능성도 있다.
국가기록원이 이날 공개한 보고서 초안은 한 장짜리다. 45년 당시 사할린 지역 현장을 조사한 러시아 민정국 인구조사담당자가 직접 손으로 쓴 보고서다. 이 담당자는 보고서 초안에서 사할린 에스토루 지역의 거주 한인 인구의 급격한 감소 이유 중 하나로 ’일본군국주의자의 한인 살해’를 꼽았다. 정확히 몇 명이 언제 어떻게 살해됐는지는 문서에 기록돼 있지 않지만 러시아 정부의 조사담당자가 직접 작성한 만큼 상당한 근거를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기록원 김갑섭 기록관리부장은 ”사할린 지역에서 귀환한 많은 사람들이 일본군의 학살을 증언했지만 그동안은 증언 외에 달리 근거가 없었다”며 ”이번에 나온 근거를 토대로 추가 자료가 있는지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외대 방일권 교수는 “45년 당시 현장을 누빈 러시아 정부 민정국 담당자가 일본 군국주의자의 사할린 한인 살해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민간인 살해라는 비인도적인 처사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증거가 나온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방 교수는 ”재판이나 조사기록 등을 추가로 확보해야 할 것”이라며 ”정보 계통이나 군 계통에 관련 기록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사할린에 강제 동원된 한인 1만2000여명의 명부와 서신, 가족관계 관련 기록 공개도 향후 대일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사할린 강제동원 보상 신청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사할린 강제동원 보상 신청건수는 2225건이며, 이 중 보상금 지급 결정이 난 경우는 1292건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보상 신청은 물론 대일 보상청구로까지 파장이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지난 5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기업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데 이어 대규모 강제동원 명부가 구체적으로 확인됨에 따라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 등의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다.
유엔 차원의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제기될 수도 있다. 박선영 전 의원은 자유선진당 의원 신분이던 지난 2010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발생한 일본의 사할린 한인 학살사건에 대해 유엔이 진상조사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했었다. 당시엔 큰 힘을 얻지 못했지만 일본의 학살 근거가 러시아 정부 문서를 통해 드러난 만큼 19대 국회에서 결의안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shjung@kmib.co.kr
‘일, 사할린 한인 대량 학살’ 추정 기록 공개
국가기록원, 1946년 옛 소련 정부 보고서 초안 입수
일 강제동원 2만2천여명 명부도…보상 급물살 탈 듯
경향신문 | 원희복 선임기자 | 입력 2012.08.14 21:17
일본이 사할린 한인을 대량학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옛 소련 정부의 1940년대 보고서 초안이 공개됐다.
국가기록원(원장 송귀근)은 광복 67주년을 맞아 러시아·일본 등에서 수집한 사할린 한인 관련 기록물을 14일 공개했다.
공개된 1946년 소련 정부 보고서 초안은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사할린 서북부 에스토루 지역에 한인이 1만229명 살았지만 전쟁 후에는 5332명밖에 남지 않아 한인 인구가 50% 감소한 것으로 적고 있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인구가 준 데엔 본국 귀국, 이주, 귀화 등의 요인이 있어 일본군이 5000여명을 모두 살해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하지만 소련 정부가 일본군의 학살을 인구 감소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사할린에서 벌어진 일본의 한인 학살 규모는 수십명 단위였다.
남사할린 서북부 에스토루 지역의 일본군에 의한 한인 학살 기록물.국가기록원은 또 수집한 1946년 러시아 중앙당 보고서에는 일본 정부의 사할린 강제동원자가 2만2817명으로 기록돼 있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한인 사할린 강제동원자 수천명보다 훨씬 많은 수준이다. 한국은 사할린 강제동원자를 7만~8만명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공개된 기록물 중에는 1948년 ’쿠릴 지역 한인을 사할린으로 이주시켜 일괄 통제하라’는 소련 1급 문서와 ’사할린 한인의 귀한 문제를 언급하지 말라’는 보도지침도 있다.
이번에 공개된 대량학살 증거와 강제동원자 명부는 일제 강제동원 보상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 신청된 사할린 강제동원 보상 건수는 2225건이며, 이 중 보상금 지급 결정이 난 경우는 1292건에 불과하다.
박인환 지원위원장은 ”국가기록원과 긴밀히 협조해 대량학살 진상조사에 착수할 것”이라며 ”추가 증거자료 확보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국가기록원이 광복 67주년을 맞아 14일 공개한 사할린 강제노역 관련 기록물. 한인들이 사할린 한 벌목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사할린 강제노역에 동원된 한인 여성들이 탄광에서 석탄을 선별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국가기록원은 이 밖에 사할린 벌목장과 탄광에서 나무를 베고, 탄을 캐는 강제노역 영상도 함께 공개했다.
한혜인 건국대 교수는 ”이 자료는 사할린 한인에 대한 역사를 복원하고, 현재 추진 중인 사할린 강제동원 보상사업에 실질적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wonhb@kyunghyang.com >
日, 끔직한 만행…한인 5천명을 몰아넣고
”日, 종전후 사할린 한인 학살했다”
첫 공개 러시아 보고서 ”한인 1만명 전쟁끝나니 5천명밖에 안남아”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잇따를듯
기사입력 2012.08.15 09:08:05 | 최종수정 2012.08.15 09:42:25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할린 한인을 대량 학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러시아 정부의 1940년대 보고서 초안이 공개됐다.
또한 사할린에 강제동원된 한인 1만2000여 명의 명부와 서신, 가족관계 관련 기록도 공개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 사할린 강제동원 관련 보상 신청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일본의 만행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유엔 진상조사 등으로 파장이 확산될 수 있다. 정부의 관련 위원회는 정부 보고서 공개를 계기로 진상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박인환 지원위원장은 ”국가기록원과 긴밀한 협조하에 대량학살 진상조사에 착수할 것”이라며 ”추가 증거자료 확보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국가기록원이 14일 공개한 1946년 러시아 정부 보고서 초안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사할린 서북부 에스토루 지역에 한인이 1만229명 살았지만 전쟁 후에는 5332명밖에 남지 않아 한인 인구가 50% 감소했다. 러시아 정부는 한인 인구가 5000명 가까이 줄어든 이유로 피난이나 귀환과 함께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한인 학살을 지목했다.
이강수 국가기록원 연구관은 ”일본군이 5000명을 다 살해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 정부는 한인 인구가 급격히 감소한 이유로 명확하게 일본군의 한인 학살을 지목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의 사할린 한인 학살은 1945년 8월 21~23일 일본 헌병과 경찰이 사할린 가미스카에서 남성 19명을, 미즈호에서 임신부와 어린아이를 포함해 27명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사례가 있다.
이번에 공개된 기록에는 1950년대 일본에서 작성한 일본 귀환자 명부 2권의 778명, 1960~1970년대 일본 사할린 귀환 재일한국인회의 사할린 귀환 희망자 조사명부 4권의 1만2600여 명, 1980년대 일본과 한국에서의 귀환운동 과정에서 만들어진 명부 14권 6000여 명 등이 포함됐다. 중복된 것을 제외하면 1만1211명이다.
이 같은 수치는 지금까지 일부 공개된 일본의 사할린 한인 강제동원 명부의 3~4배 규모이며, 서신과 가족관계 및 활동 관련 기록은 강제동원 사망ㆍ행방불명자 유족에게 보상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사할린 강제동원 보상 신청건수는 2225건이며, 이 중 보상금 지급 결정이 난 경우는 1292건에 불과하다.
러시아 정부의 인구 보고서 초안은 한 장짜리 질 나쁜 시험지로, 1945년 당시 현장을 누빈 러시아 민정국 인구조사 담당자가 직접 손으로 썼다. 이 담당자는 보고서 초안에서 사할린 에스토루 지역 한인 인구가 감소한 이유로 피난이나 귀환에 따른 인구이동과 함께 `일본 군국주의자의 한인 살해`를 꼽았다.
일본군의 사할린 한인 대량학살 근거와 함께 사할린에 강제동원된 한인 1만2000여 명의 명부와 서신, 가족관계 관련 기록이 공개됨에 따라 관련 보상신청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을 했던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경도 기자]

일본이 싫은 러시아가 증언하고 있네요
해방직후 사할린에서 한인 귀환 문제를 언급하지 말라는 보도지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