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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광개토대왕 비석을 망상으로 해석하고 있어?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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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 255 nakazima 633,870 / 2,811,753


王健群이 광개토대왕릉비 근처에서 거주하며 오랫동안 탁본업을 하던 初天富에게 얻은 필사본 입니다.

비석에 오물이 발라져 불태워지기 전에 필사한 내용 입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437499





 다케다 교수는 문제의 신묘년 기사는 같은 해 광개토대왕의 치적을 기록한 본문 앞에 배치돼 있기 때문에 통상 전치문(前置文)으로 불린다면서 각 연도의 전치문은 “고구려에 있어 불리한 국제정세를 기술, 강조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예외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묘년 기사 역시 불리하고 곤경에 빠진 대외정세를 중심으로 기술한 기사로 보인다면서 “‘왜는 신묘의 년(年)에 바다를 건너 와서 백잔(백제)을 파(破)하고 동쪽에서는 신라를 □해서 신민으로 삼았다’와 같이 해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437499&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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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도쿄대 사학과 교수 武田幸男도 百殘의 다음 문자는 東으로 파악하고 있다.


가야라는 망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거야?






일본인가 나타나자 (고구려가 일본인와 동맹관계의) 백제를 渡海破하고 (동진하여) 신라를 신민으로 삼아 (보호 했다.)라는 한국의 해석은 교차검증이 되지만,


일본인는 무엇으로 망상하고 있어?











冬十月, 攻䧟百濟關彌城. 其城四面峭絶, 海水環繞, 王分軍七道, 攻撃二十日, 乃拔.
겨울 10월에 백제 (關彌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그 성은 사면이 가파른 절벽으로 바닷물이 둘러싸고 있어 왕이 군사를 일곱 길로 나누어 20일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삼국사기 고구려본기 391년)










증거가 없으면 고구려가 마음대로 착각한 이야기 w


















391년은 광개토대왕의 즉위 원년 입니다. 즉위 원년에 최초로 시행한 부왕의 군사 원정은 꼭 기록하고 부왕의 공덕을 찬양하고 싶은 것.
그런데도 渡海破의 주체는 일본인라고 망상이 절호조 www

渡海을 하면 전부 주체가 섬나라 토인이 되는건가?w 삼국사기로 (392년 ==> 誤記 입니다. 광개토대왕릉비의 391년 = 삼국사기의 392년이라는 것을 즉위 원년을 비교하면 알수 있다) 백제의 요새를 수군으로 정복해
396년에는 비석에 한강 이남의 백제를 한강을 건너서 수군으로 정복 했다고 기록 되어있는데 wwww


번역문보기

何で広開土大王碑石を妄想で解釈している?w


王健群がカンゲト大王陵碑近くで居住して長い間拓本業をした 初天富に得た筆写本です.

碑石に汚物が塗られて燃やされる前に筆写した内容です.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437499





竹田教授は問題の神妙年記事は同じ年広開土大王の政治功績を記録した本文の前に配置されているから通常ゾンチムン(前置文)と呼ばれると言いながら各年度のゾンチムンは “高句麗において不利な国際情勢を技術, 強調しているしここには例外が見えない”と指摘した. それとともに神妙年記事も不利で困境に陷った対外情勢を中心に記述した記事に見えると言いながら “‘なぜは神妙の年(年)に海を渡って来てバックザン(百済)をなが葱(破)と東では新羅を □して臣民にした’と一緒に解読することができる”と主張した.
出処 : SBS ニュース
原本リンク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437499&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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付け加えて 東京大学史学科教授 武田幸男も 百残の次の文字は 東で把握している.


伽揶という妄想は一体どこで出たの?






日本か現われよう (高句麗がイルボンインワ同盟関係の) 百済を 渡海破と (東進して) 新羅を臣民にして (保護した.)という韓国の解釈は交差検証になるが,


イルボンインヌン何に妄想している?











冬十月, 攻?百済関彌城. 其城四面?絶, 海水環繞, 王分軍七道, 攻?二十日, 乃抜.
冬 10月に百済 (関彌城)を攻撃して陷落させた.その聖恩四面が険しい絶壁で海水が取り囲んでいて王が軍事を七道で分けて 20日を攻撃して陷落させた.(三国史記高句麗本紀 391年)










証拠がなければ高句麗がわがまま勘違いした話 w


















391年は広開土大王の即位元年です. 即位元年に最初に施行した父王の軍事遠征は必ず記録して父王の功徳をほめたたえたいこと.
それなのに 渡海破の主体はイルボンインラで妄想が絶好組 www

渡海をすれば全部主体が島国土人になるのか?w 三国史記で (392年 ==> 誤記 です. カンゲト大王陵碑の 391年 = 三国史記の 392年というのを即位元年を比べると分かる) 百済のこの頃を水軍で征腹して
396年には碑石に漢江以南の百済を漢江を渡って水軍で征腹したと記録になっているのに w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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