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王健群이 광개토대왕릉비 근처에서 거주하며 오랫동안 탁본업을 하던 初天富에게 얻은 필사본 입니다.
비석에 오물이 발라져 불태워지기 전에 필사한 내용 입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437499

다케다 교수는 문제의 신묘년 기사는 같은 해 광개토대왕의 치적을 기록한 본문 앞에 배치돼 있기 때문에 통상 전치문(前置文)으로 불린다면서 각 연도의 전치문은 “고구려에 있어 불리한 국제정세를 기술, 강조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예외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묘년 기사 역시 불리하고 곤경에 빠진 대외정세를 중심으로 기술한 기사로 보인다면서 “‘왜는 신묘의 년(年)에 바다를 건너 와서 백잔(백제)을 파(破)하고 동쪽에서는 신라를 □해서 신민으로 삼았다’와 같이 해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437499&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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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도쿄대 사학과 교수 武田幸男도 百殘의 다음 문자는 東으로 파악하고 있다.
가야라는 망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거야?


일본인가 나타나자 (고구려가 일본인와 동맹관계의) 백제를 渡海破하고 (동진하여) 신라를 신민으로 삼아 (보호 했다.)라는 한국의 해석은 교차검증이 되지만,
일본인는 무엇으로 망상하고 있어?
겨울 10월에 백제 (關彌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그 성은 사면이 가파른 절벽으로 바닷물이 둘러싸고 있어 왕이 군사를 일곱 길로 나누어 20일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삼국사기 고구려본기 391년)


증거가 없으면 고구려가 마음대로 착각한 이야기 w




391년은 광개토대왕의 즉위 원년 입니다. 즉위 원년에 최초로 시행한 부왕의 군사 원정은 꼭 기록하고 부왕의 공덕을 찬양하고 싶은 것.
그런데도 渡海破의 주체는 일본인라고 망상이 절호조 www
渡海을 하면 전부 주체가 섬나라 토인이 되는건가?w 삼국사기로 (392년 ==> 誤記 입니다. 광개토대왕릉비의 391년 = 삼국사기의 392년이라는 것을 즉위 원년을 비교하면 알수 있다) 백제의 요새를 수군으로 정복해
396년에는 비석에 한강 이남의 백제를 한강을 건너서 수군으로 정복 했다고 기록 되어있는데 www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