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나 가야에 비하여 일본 열도에서는 4세기대에 소급할 수 있는 금촉제마구가 한점도 출토되지 않았으며, 5세기가 되어서야 가야로부터 개별적으로 수용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일본 고분시대의 마구에 대한 연구로서 小野山節는 일찍이 편년 작업을 하여, "오로지 수입품에 의존한 시기"를 설정하고 발걸이 형태의 차이를 가지고 제1기를 구식과 신식으로 나누어 보았다.이에 대하여 中村潤子는 5세기 전반의 제1차 도입기 (구식)에 전해진 한반도 낙동강 하류욕 마구는 결국 일본에서 뿌리내리지 못하고 끝났으며 5세기 후반의 2차 도입기 (신식)에 검릉형 또는 편원검미형 말띠드리개와 f자형 재갈멈추개로 표상되는 川脥 玉田 계통의 마구가 들어와 그것이 비로소 일본에서 계승 발전되었다고 하였다. 즉 일본에 4세기대의 기마문화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략) 또한 왜는 4세기대에 단검,단도, 두께가 얇은 양날창과 쇠화살촉 등의 무기를 주로 사용하고 5세기에 와서야 공격구(攻擊具)의 주류로서 장검을 채택할 정도였다. 두께가 얇은 양날창과 쇠화살촉은 어느정도의 갑옷과 방패만 있으면 치명상을 입힐수 없을 정도로 가벼웠다. 그러므로 왜의 무장은 일부 射兵이 부가되어 있으나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短兵器가 주력이고, 실전적인 무기로서보다는 과시적인 威信財로서의 성격이 강하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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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고구려에 비하면 엄청 약한 국가였는데
그런 백제보다도 약했던 일본의 수준...
근초고왕 시절 규슈도 백제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야마토를 용병으로 써서 남방을 평정한 이후 백제에서는 구저를, 야마토에서는 지쿠마 - 노 - 나가히코를 보내 양국 사이에 사신 왕래가 이어지다가 372년에 이르러서는 칠지도와 "칠자경"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사기에 따르면 이 시기에 아직기와 왕인이 야마토로 건너와 천자문과 논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일본서기》에서는 자국중심주의 기록 특성상 이 당시 백제가 일본(야마토)을 섬긴 것처럼 기록되어 있지만, 근대에 발견된 칠지도에 적힌 문장을 보면 반대로 백제왕이 천황을 아랫 사람 취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