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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넷 중 하나가 죽었다,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국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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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49만명 중 12만명 희생... 무거운 6월 23일


오키나와시에 따르면, 전투 직전 오키나와 현의 인구는 약 49만 명으로, 그중 12만 여 명의 주민이 전투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주민 4명 중 1명이 희생된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아리메 씨 또한 오키나와 전투 희생자 유족이다. 군인으로 동원됐다가 전사한 증조할아버지를 비롯해, 그녀의 친가와 외가 양쪽에서 희생자가 발생했다. 아리메 씨뿐 아니라 오늘날의 많은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있어 오키나와 전투는 가족사를 뿌리째 뒤틀어버린 거대한 재앙으로 기억된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있어 오키나와 전투 전몰자를 추도하는 6월 23일 위령의 날의 의미는 형언할 수 없이 무거운 것이리라.

어째서 이토록 많은 주민들이 전투에 휘말려 생명을 잃게 된 것일까. 유혈이 낭자한 이 비극적 사태는, 주민의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일본군 수비대의 작전 방침으로부터 초래됐다.    
 

쇼와 천황을 우상화하는 전시간행물 천황은 일본 국체의 핵심이자 육해군의 통수권자로서 우상화되었다. 천황제 유지는 제국 일본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종전 조건이었다. ▲ 쇼와 천황을 우상화하는 전시간행물 천황은 일본 국체의 핵심이자 육해군의 통수권자로서 우상화되었다. 천황제 유지는 제국 일본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종전 조건이었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 말기,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도 제국일본의 지도부는 비합리적인 상황인식 하에서 "본토결전"과 "일억옥쇄"를 부르짖으며 전쟁완수를 결의했다. 그들이 논하던 전쟁완수의 궁극적 목적은 "국체의 보전"이었다. 국체의 보전,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일본 국민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만세일계"의 천황제(일왕제) 유지였다.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의 존재에 신성성을 부여함으로써 통치의 정당성을 획득했던 제국 체제는, 천황제 사수를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든 치를 심산이었다. 이미 가정과 학교에서부터 천황과 국가를 위해 목숨 바쳐야 한다고 교육 받았던 일본 국민들은, 이 "국체보전"을 위한 싸움에 동원돼 무의미한 희생을 강요 받았다(관련 기사: "가미카제"의 최후를 본 96세 일본 노인의 증언).

이렇듯 제국일본의 지도부는 국민들의 희생을 전제로 전쟁 완수를 추진했다. 하지만 이미 압도적으로 기울어진 전세를 뒤집을 방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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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본토로는 최초로 이오지마가 함락당한 데에 이어, 1945년 4월 1일에는 오키나와 본도(本島)에 미군이 상륙했다. 대본영(제국 일본의 전쟁지도부)에서는 오키나와 방어를 위해 전함 야마토(大和)를 출격시키는 한편 2000여 기의 가미카제 특공기를 투입했다.

그러나 이 같은 대본영의 무리수는 비극을 더욱 가중시켰을 뿐, 오키나와를 구원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미군의 공세로부터 오키나와를 방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처음부터 분명해진 상황에서, 오키나와 수비대를 책임진 우시지마 사령관은 작전의 주안점을 "전투에서의 승리"가 아닌 "미군에게 최대한의 출혈을 강요하는 지연전"에 맞췄다.

이 방침에 따라 일본군 수비대는 요새화된 진지들을 중심으로 미군에게 격렬하게 저항했다. 일본군의 저항에 다수의 주민들이 동원되었음은 물론이다. 심지어는 중학생들까지 이등병 계급을 부여받고 군복을 입었다. 여학생들 역시 동원 대상에서 예외가 되지 못했으니, 그것이 그 유명한 "히메유리 학도대"다.

그러나 이 같은 절망적인 항전에도 불구하고 전선은 미군의 압도적 화력 앞에 나날이 뒤로 밀렸다. 마침내 일본군 수비대의 사령부가 위치해 있던 슈리 성에서의 결전이 임박하게 된 상황. 그러나 일본군 사령부는 미군과 결전을 벌이는 대신 주력을 오키나와 본도 남부로 옮겨버렸다. 하루라도 더 저항해 미군의 발을 오키나와에 묶어둔다는 지연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피란민들로 가득 차 있던 섬 남쪽으로 일본군 병력들이 물러나고 곧이어 미군의 공격이 쇄도해오자, 재앙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오키나와에서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미군의 포로가 된 오키나와 소년병 일본군은 오키나와 현지의 중학생들까지 ▲ 미군의 포로가 된 오키나와 소년병 일본군은 오키나와 현지의 중학생들까지 "이등병"으로 전투에 동원하였다.

  

주민들을 보호하지 않았던 일본군 병사의 증언 전 일본육군 군조(중사)였던 오오바 소우지로씨가 주민들을 동굴에서 쫓아냈던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증언하며 죄책감을 드러내고 있다. 2008년 인터뷰 내용.▲ 주민들을 보호하지 않았던 일본군 병사의 증언 전 일본육군 군조(중사)였던 오오바 소우지로씨가 주민들을 동굴에서 쫓아냈던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증언하며 죄책감을 드러내고 있다. 2008년 인터뷰 내용. 

일본군 병력들은 동굴에 숨은 주민들을 쫓아내어 그곳을 은신처로 삼고, 필요에 따라서는 주민들을 약탈하거나 살해했다. 어디까지나 "작전"을 위해서였다.



어느 순간부터 일본군 수비대에 있어 주민들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작전에 걸리적거리는 의심스러운 존재에 지나지 않게 됐다. 일본군 수비대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주민들은 대책 없이 전장의 한복판에 내던져져 희생됐다. "국가"에 "국민"은 없었던 시대. 오키나와에서의 참극은 그렇게 연출됐다.

그로부터 76년이 흘렀지만, 당시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던 오키나와 주민들이 품고 있는 상처는 아직 선명하다.

아리메 씨는 "그나마 군인 유족들은 국가로부터 어느 정도의 수혜를 받을 수 있었지만 일반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에게는 그마저도 없었다"며 오키나와 전투의 뒷이야기를 풀어놨다. 그녀는 특히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 문제를 언급하며, 당시의 끔찍했던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이야기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비하면 오키나와에 대한 일본 본토 사람들의 관심은 옅은 편이죠. 그러나 오키나와에서의 전쟁은 진정한 의미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오키나와 전투의 결과 섬에는 미군기지가 들어섰고, 그곳의 주민들은 터전을 잃었어요. 전쟁으로 상처입은 주민들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많은 갈등과 혼란을 겪고 있어요. 그러나 일본 정부는 미국에 저자세를 취할 뿐, 주민들이 앓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죠. 전쟁 당시 오키나와 주민들을 버렸던 제국 정부가 연상되지 않나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시간만으로 모든 것이 치유되지는 않는 법이다.  여전히 끝나지 않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전쟁 이야기를 들으며, 국가의 책무, 평화의 의미, 문장으로 담지 못한 여러 화두들이 슬프게 뒤엉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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住民四つの中で一つが死んだ, 国家から捨てられた国民

住民 49万名の中で 12万名犠牲... 重い 6月 23日


沖繩の時によれば, 戦闘直前沖繩現の人口は約 49万人で, なかでも 12万名余の住民が戦闘に巻き込まれて命を失った. 住民 4人の中 1人が犠牲されたのだ.


インタビューに応じたアリメさんも沖繩戦闘犠牲者遺族だ. 軍人で動員されてから戦死した曽祖父を含めて, 彼女の親家と母方両方で犠牲者が発生した. アリメさんだけではなく今日の多くの沖繩住民たちにあって沖繩戦闘は家族史を根こそぎねじてしまった巨大な災いに記憶される. そうだから彼らにおいて沖繩戦闘戦歿者を追悼する 6月 23日違令の日の意味は形言することができなく重いことであろうだと.

どうしてこのように多くの住民たちが戦闘に巻き込まれて生命を失うようになったのだろう. 流血が散り乱れて乱雑なこの悲劇的事態は, 住民の安全を全然考慮しなかった日本軍守備隊の作戦方針から招来された.

昭和天皇を偶像化する展示刊行物天皇は日本国体の核心と同時に陸海君の統帥権者として偶像化された. 天皇制維持は帝国日本が終わりまであきらめなかった以前条件だった. ▲ 昭和天皇を偶像化する展示刊行物 天皇は日本国体の核心と同時に陸海君の統帥権者として偶像化された. 天皇制維持は帝国日本が終わりまであきらめなかった以前条件だった.

アジア太平洋戦争末期, 負け色が濃くなった状況でも帝国日本の指導部は非合理的な状況認識下で "本土決戦"と "イルオックオックスェ"を唱えて戦争完遂を決意した. 彼らが論じた戦争完遂の窮極的目的は "国体の保全"だった. 国体の保全, それの意味することは日本国民の生命を保護するのではなく "万歳日計"の天皇制(日王制) 維持だった.



明治維新以後天皇の存在に神聖性を付与することで統治の正当性を獲得した帝国体制は, 天皇制射手のためならどんな対価でも支払うつもりだった. もう家庭と学校から天皇と国家のために命を捧げなければならないと教育受けた日本国民は, この "国体保全"のためのけんかに動員されて無意味な犠牲を強要受けた(関連記事: "がミカゼ"の最後を見た 96歳日本年寄りの証言).

このように帝国日本の指導部は国民の犠牲を前提に戦争完遂を推進した. しかしもう圧倒的に傾いた前の勢いを覆す方法はなか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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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本土では最初でイオ誌馬加陷落されたことに引き続き, 1945年 4月 1日には沖繩本島(本島)に米軍が上陸した. 大本営(帝国日本の戦争指導部)では沖繩防御のために戦艦大和(大和)を出撃させる一方 2000余機宜がミカゼ特攻期を投入した.

しかしこのような大本営の無理数は悲劇をもっと加重させただけ, 沖繩を救援するには別に役に立つことができなかった. 米軍の攻勢から沖繩を防御するということは不可能だと言うのがはじめから明らかになった状況で, 沖繩守備隊を責任負った泣くな司令官は作戦の主眼点を "戦闘での勝利"ではない "米軍に最大限の出血を強要する引き延ばし前"に合わせた.

が方針に従って日本軍守備隊はこの頃化された陣地たちを中心に米軍に激しく抵抗した. 日本軍の抵抗に多数の住民たちが動員されたのは勿論だ. はなはだしくは中学生たちまで二等兵階級を受けて軍服を着た. 女学生たちも動員対象で例外にな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から, それがその有名な "ヒメユリ学徒台"だ.

しかしこのような絶望的な抗戦にもかかわらず電線は米軍の圧倒的火力の前に日々に後に押された. 遂に日本軍守備隊の司令部が位していたシュリ性での決戦が切迫するようになった状況. しかし日本軍司令部は米軍と決戦をする代わりに主力を沖繩本島南部に移してしまった. 一日でももっと抵抗して米軍の足を沖繩に縛りつけるという引き延ばし前の目標を果たすためだ. もう避乱民たちでいっぱいになった島南に日本軍兵力たちが退いて相次いで米軍の攻撃が殺到して来ると, 災いだと外に他に表現するあてがない阿鼻叫喚が開かれた.

"沖繩での戦争はまだ終わらなかったです"

米軍の虜になった沖繩少年病日本軍は沖繩現地の中学生たちまで ▲ 米軍の虜になった沖繩少年病 日本軍は沖繩現地の中学生たちまで "二等兵"で戦闘に動員こんにちはだった.

住民たちを保護しなかった日本軍兵士の証言の前日本陸軍郡鳥(中佐)だった呉オオバ小雨支路さんが住民たちを洞窟で追い出した自分たちの過誤に対して証言して罪責感を現わしている. 2008年インタビュー内容.▲ 住民たちを保護しなかった日本軍兵士の証言 前日本陸軍郡鳥(中佐)だった呉オオバ小雨支路さんが住民たちを洞窟で追い出した自分たちの過誤に対して証言して罪責感を現わしている. 2008年インタビュー内容.

日本軍兵力たちは洞窟に隠れた住民たちを追い出してその所を隠れ処で三考, 必要によっては住民たちを掠奪するとか殺害した. どこまでも "作戦"のためだった.



どの瞬間から日本軍守備隊において住民たちは保護の対象ではなく作戦に邪魔になる疑わしい存在に過ぎなくなった. 日本軍守備隊の保護を受けることができなくなった住民たちは対策なしに戦場の真ん中にほうり出されて犠牲された. "国家"に "国民"はいなかった時代. 沖繩での惨劇はそのように演出された.

それから 76年が経ったが, 当時国家から捨てられた沖繩住民たちが抱いている傷はまだ鮮明だ.

アリメさんは "それさえも軍人遺族たちは国家からどの位の受恵を受けることができたが一般民間人犠牲者遺族たちには彼さえいなかった"と沖繩戦闘の裏話を解いて置いた. 彼女は特に沖繩の米軍基地問題を言及して, 当時の無惨だった戦争は相変らず現在進行形だと話した.

"広島と長崎に比べれば沖繩に対する日本本土人々の関心は薄い方です. しかし沖繩での戦争は真正な意味でまだ終わらなかったと思います.

沖繩戦闘の結果島には米軍基地が立ち入ったし, その所の住民たちは基盤を失いました. 戦争で傷ついた住民たちは今に至っても相変らず多い葛藤と混乱を経験しています. しかし日本政府はアメリカに弱腰を取るだけ, 住民たちが病んでいる問題を解決するには関心がないですね. 戦争当時沖繩住民たちを捨てた帝国政府が連想しないんですか?"

時間が薬という言葉があるといえども, 時間だけですべてのものが癒されないものだ. 相変らず終わらない沖繩人々の戦争話を聞いて, 国家の責務, 平和の意味, 文章で盛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多くの話題たちが悲しくもつ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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