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영국의 노르망디 왕조의 관계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프랑스왕에게 노르망디지역을 하사받아 살던 노르망디공이 바다건너 영국을 정복하면서 두개의 영지를 가지게 되었다. 영토가 넓어지고 세력이 커지면서 "왜 내가 너의 신하여야하지? 전쟁이다." 이렇게 되는 스토리..
4세기이전 전라도 남부(영산강 유역) 혹은 경상남도(가야,임나 지역)의 야마토세력이 실질적으로는 독립이지만 형식적으로 백제왕의 신하로 살고 있었다. (중국에서 흔한 조공 책봉관계)
그런데 고구려 혹은 신라의 압력에 의해 위기감을 느끼고 이들중 상당수가 일본열도로 이주하면서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걸쳐 두개의 영지를 가지게 되었다.
초창기에는 한반도에 거주하는 쪽이 우위였지만 외부의 침입으로 본국이 쇠퇴하니 자연스럽게 일본열도의 분국이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고 지리적요건으로 한반도의 영지를 유지하는게 어려워지자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포기하는 쪽으로 가게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영산강 유역 다큐멘터리에서 옹관묘의 인골 DNA를 분석하자 일본 북규슈인과 비슷한 유전자가 나왔다고 한다.
노르망디 왕조와의 차이점은 끝내 자기 영토를 지키기위해 백제와는 전쟁을 하지 않았다는 점인데 백제와의 국력차이가 심해서 그랬을수도 있고 아니면 혼인등으로 오랜 동맹관계가 쌓여 신뢰가 형성되다보니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방향이 되었을수도 있다.(일본서기에 보면 침미다례를 백제왕에게 줬다고 나온다.)
그리고 이들 한반도 남부의 야마토 세력들은 통일된 하나의 세력이 아니었을것이다.영산강 유역세력과 가야지역의 유물은 전혀 다르고... 최소 2~3개이상의 세력으로 나눠져있었고 그러한 이유로 백제 신라와는 국력차이가 컸다. 만약 하나의 통일된 세력이었으면 반대로 이들이 백제나 신라를 정복했을수도 있다.
일본서기에 보면 백제의 성왕과 신라의 진흥왕이 이들 야마토(가야)의 소국들을 병합하기 위해 공갈,협박하는 내용이 나온다. "신라(백제)는 승냥이처럼 흉악한 놈이니 자비로운 내가 너희들을 지켜주겠다"라고 하는데 야마토소국들은 심사숙고끝에 백제를 선택하게 되지만 관산성 전투의 패전으로 이들의 영토는 신라로 흡수되고 만다.